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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인도네시아 교회: 피와 종교가 한 몸이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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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1 ㅣ No.18

[세계 교회는 지금] 인도네시아 교회 : 피와 종교가 한 몸이 될 때

 

 

2001년 11월 9일 인도네시아의 수도인 자카르타의 한 개신교회에서 폭탄이 터졌다. 이 사건으로 죽은 사람은 없었지만 여러 명이 다쳤다. 무엇보다도 한 나라의 얼굴인 수도에서 이런 사건이 터진 데서 인도네시아 전반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지난해 12월, 술라웨시 섬에 있는 마나도 교구의 조세푸스 수와탄 주교(성심회)는 유엔이 술라웨시에서의 종파분쟁에 개입할 것을 요청했다. 그는 인도네시아 주교회의 전임 의장이다. 주권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 민간에서 자기 정부를 제쳐놓고 유엔에 평화유지군 파견을 요청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는 자칫 주류 이슬람이 그러잖아도 그리스도교를 ‘외부세력’으로 보는 편견에 기름을 붓는 위험이 있긴 하지만 그만큼 민중의 생존 문제가 절실하다는 뜻이다.

 

가톨릭 주교가 유엔의 개입을 요청한 것은 말루쿠 섬 암본 교구의 만다기 주교에 이어 두번째이다. 말루쿠에서는 1999년 1월부터 이슬람인과 그리스도인 사이에 분쟁이 일어난 뒤 약 3000명이 죽었다.

 

지금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지는 이슬람교와 그리스도교 사이의 충돌은 이슬람 근본주의가 극성을 부린다는 파키스탄 같은 곳보다 그 폭력성이 더 심하다. 왜 그럴까?

 

인도네시아의 종파분쟁은 단순한 종교 갈등만은 아니다.

 

2000년 3월 3일에 개신교의 마카사르 신학교는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교와 그리스도교의 만남”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다니엘 수파케나 목사는 “현재 암본과 말루쿠에서 일어나는 분쟁은 그리스도인이 테르네이트 술탄을 죽인 뒤 1624-34년에 일어난 테르네이트 폭동과 매우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도네시아인들이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추구한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식민주의자들의 책략에 교묘하게 속아 넘어갔다.”고 말했다.

 

이슬람 학자인 샬리 푸투헤나도 이 세미나에서, 이런 충돌은 이슬람인들이 그리스도교를 ‘이교도’로 여기는 식민주의자들의 종교로 보는 편견 때문에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지금의 인도네시아 대부분은 포르투갈이 말루쿠 섬을 중심으로 한 후추 무역을 위해 식민지로 삼았으며, 그뒤 네덜란드가 이어받았다. 종교는 식민정책의 아주 중요한 일부였다. 인도네시아의 중심이라 할 자바 등은 식민지화 이전에 이미 이슬람화되었고, 그 때문에 그리스도교 전파는 이슬람이 아직 미치지 못한 변방과 오지의 ‘미개인’ 수준의 종족에 집중되었다. 이러한 종족별 종교분할 통치는 동남아시아 여러 곳에서 엿보인다.

 

우리가 잘 아는 보르네오 섬의 인도네시아 영역은 칼리만탄이라고 불리는데 이곳의 주요 종족 가운데 하나인 다약족은 과거에 ‘식인종’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지금도 적의 ‘목 베기’를 자랑으로 안다. 일제 오토바이 뒤에 목 잘린 시체를 줄로 매어 자랑스레 소리치며 아스팔트 도로를 달리는 사진, 그 현대와 야만의 공존을 본 적이 있는가?

 

칼리만탄에서는 가톨릭인 다약족이 같은 종족인 비가톨릭 다약족과 합세해서 대부분 이슬람 이주민인 마두라족을 공격하는 일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약 1000명이 죽었다.

 

이에 수트리스나아트마카 주교(성가회)는 토착민인 다약족이 이주민인 마두라족에게 정치, 경제적으로 ‘억압’받았다고 느끼는 것에는 공감했지만, 이런 공격행위는 가톨릭의 윤리적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지적하고, 이 폭력사태에 참가한 다약족 가톨릭인들의 회개를 요구했다. 중앙 칼리만탄 주의 인구 180만 명 가운데 다약족은 약 70%를 차지한다.

 

인도네시아의 주류인 자바족은 자바 섬의 인구과밀도 해소할 겸 변방에 자바인의 이주를 장려했다. 이를 통해 ‘국가 통합’도 추진했다. 이슬람 지역인 마두라 섬의 마두라 족이 칼리만탄에 이주한 것도 이런 물타기 정책의 한 방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토착민과 이주민의 사회경제적 갈등은 곧 종족 분쟁이 되고, 각 종족에 따라 종교가 다른 상황에서 이 종족 분쟁은 곧 종교 분쟁이 되고 만다.

 

한편으로 인도네시아에서의 이슬람-그리스도교 사이의 갈등이 커지는 데에는 일부 개신교의 공격적인 ‘예수천당 불신지옥’식 선교 행태도 한몫을 했다. 여기에는 일부 한국 개신교회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한편 인구 2억의 인도네시아는 나라가 넓다 보니, 동부의 말루쿠 같은 곳에서는 그리스도교인이 절대 다수인 지역도 있다.

 

이런 곳에서는 일부 개신교회의 공격적 신앙관과 다른 지역에서 이슬람인이 그리스도교를 공격하는 데 대한 반발이 어우러져서, 거꾸로 이슬람인들이 그리스도교인에게 공격받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면, 자바 섬 같은 데서는 이들 “박해받는 형제 이슬람”을 구하기 위한 의용대가 결성되어 말루쿠 같은 곳으로 간다. 이슬람이 다수인 군과 경찰은 이들을 못 본 척 눈감아 주고, 이번에는 이들에 의해 이슬람 박해의 뿌리인 “그리스도교 다수 상황”을 없애버리기 위한 종교 청소, 강제 개종이 벌어진다.

 

이 지역에서 원래 가톨릭은 개신교와 이슬람의 분쟁에서 좀 비껴 서있었다. 말루쿠 섬 암본 교구의 페트루스 만다기 주교에 따르면, “과거에는 이슬람인이 개신교인을 공격할 때에도 가톨릭인의 재산에는 손대지 않았다.” 가톨릭의 종교관용적 입장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부에서 이슬람 민병대가 들어와 개입하면서 이런 ‘작은 차이’는 사라져버렸다. 이들에게는 그저 가톨릭도 개신교와 똑같은 그리스도교일 뿐이었다. 2000년 성탄 전야에 인도네시아 전역에서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폭탄 공격이 15건이나 터졌다. 이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성탄을 맞아 발표한 메시지 ‘전세계와 도시에게’에서 “특히 우리 형제자매들이 이 성탄절에도 시련과 고통의 어려운 시간을 맞고 있는 인도네시아를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에서의 종교분쟁은 단순한 종교와 종교 사이의 증오와 반목이 아니다. 종족별로 종교가 갈라져 있지 않다고 해도 지금 같은 사태가 일어났을까?

 

크게는 한 종족이나 작게는 한 씨족, 가족 단위로 선교하는 것은 여러 면에서 매우 효율적이다. 그러나 길게 볼 때, 이러한 선교정책은 그 집단 안에서는 평화와 화해를 이루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사회 전체로 볼 때는 더 큰 불화와 분쟁의 씨를 뿌리기도 한다.

 

[경향잡지, 2002년 3월호, 박준영 요셉(아시아 가톨릭 연합통신(UCAN) 한국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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