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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카스트의 나라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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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1 ㅣ No.12

[세계 교회는 지금 ] 카스트의 나라 인도

 

 

필자는 지난 7월 21일부터 26일까지 인도의 마드라스에서 개최된 ‘인종주의와 인종차별에 관한 인권 워크숍’에 참석했다. 이 워크숍은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 가톨릭 지식인 문화운동'(ICMICA, www.pax-romana.org)이라는 단체에서 주관한 것인데, 전세계 70여 개 회원국의 교회단체들이 모여 결성된 국제적인 규모의 가톨릭 NGO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사단법인 우리신학연구소와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공동체가 이크미카의 회원단체로 활동하고 있어, 회원 단체 자격으로 참가하게 된 것이다. ‘콩글리쉬’ 수준의 영어실력 때문에 워크숍의 상세한 내용들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현장체험을 통해 눈으로 확인한 현실과 모아온 자료에 의지하여 인도와 인도교회에 대한 정보를 독자들과 나누어볼까 한다. 워크숍 참가자들의 설명을 근거로 쓴 부분도 있어 실제 현실과 약간 차이가 있는 부분들은 이해를 바란다.

 

인도는 힌두교(87%), 이슬람교(10%), 그리스도교(2.5%), 불교(0.5%)의 종교인구 분포 순에서 보는 바와 같이 힌두교 국가로 이해해도 큰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워낙 인구가 많아 2%가 채 안되는 가톨릭 신자의 수가 2천만에 육박하고, 예수회 사제수만 해도 3,000명이나 된다고 한다. 아시아 교회에서 잘 나간다(?)는 한국교회 신자수의 5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카스트!’ 이 말은 인도를 대표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이며 힌두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제도이다. 그러나 워크숍과 인도를 여행하는 동안 접한 카스트의 심각성은 과거 학창시절 세계사 시간에 배운 카스트 제도처럼 단순하지가 않았다.

 

카스트란 원래 포르투갈어의 혈통(Casta)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이 제도는 출생과 더불어 신분 소속을 고정시키는 인도 특유의 신분제도로 고대 인도 문헌에서는 바르나(산스크리트어로 ‘색<色>’이라는 뜻), 또는 자티(‘종족’, ‘고유특성을 가진 집단’이라는 뜻)라 한다.

 

기원전 10세기경 인도에 침입한 아리아인과 원주민들의 부족제도가 함께 분해되어 각 혈족집단이 지역·직능별로 폐쇄 신분을 형성, 브라만(승려), 크샤트리아(왕족, 군인), 바이샤(상인, 농민), 수드라(노예) 4계급의 카스트가 성립되었다.

 

초기 4계층의 카스트는 후대에 구카스트, 신카스트로 점차 세분화되어 계급 상호간의 교류를 엄격히 금하였고, 1947년 법적으로 금지될 당시까지만 해도 존속하는 카스트의 수가 2,000∼3,000이었다고 하니 이방인의 눈으로 인도의 카스트를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 가운데 이 주요 4계급 외에 또 하나의 특이한 계급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불가촉(不可觸) 천민이다. 이들은 그들 스스로를 ‘달리트’라 부르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계급이라 할 수도 없다. 그들은 어느 4계급에도 속하지 않는 부류를 일컫는 말이니까.

 

인도 땅에는 이러한 불가촉 천민이 무려 1억 6천만 명이나 있다. 남한 인구의 4배인 셈이다. 마드라스에 본부를 둔 비정부기구(NGO)인 인도 인권교육운동(HREMI)에 따르면 달리트들은 매시간 2명이 공격당하고, 여성 3명이 강간당하며 2명이 살해되고 집 두 채가 불탄다고 한다.

 

힌두교가 신성시하는 제도를 바꾸는 일은 의회에서 법을 고치는 것처럼 간단하지가 않은 모양이다. 이런 이유 탓인지 수백만 명의 달리트들은 회교·그리스도교·불교 등으로 개종하여 카스트 제도로부터 벗어나려 했다.

 

1956년 사망한 달리트 출신 판사이자 사회운동가로 인도 헌법의 제정 과정에 참여한 B.R. 암베드카르가 실제로 수백만의 달리트들을 이끌고 불교로 개종한 역사적 사실이 존재한다.

 

그는 사망했지만 그의 동상은 수많은 달리트 마을에서 영광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한다. 인도 가톨릭 교회 평신도의 절대다수가 달리트 출신이라는 사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나 회교도 집단에도 카스트 제도는 엄존한다. 워크숍 기간 동안 1박 2일의 달리트 마을 현장체험에 동행한 인도 참가자가, 달리트 출신의 신자는 고위성직자가 될 수 없다고 하는 이야기에서처럼 카스트는 힌두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도 전체의 문제로 이미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인도의 가톨릭 교회가 카스트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워크숍 참가자의 이야기와 달리 현장체험을 통해 돌아본 달리트 신자 마을에서 필자는 사뭇 고무적인 풍경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달리트들의 권리회복을 위한 여러 종류의 NGO들과 연대해 각종 교육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있었고, 이를 통해 달리트들은 그들 선조들이 아리안계 힌두족이 인도를 지배하기 전부터 살아온 이 땅의 주인임을 자각해 가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들을 힌두 사회의 소외자로만 알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아프리카의 인종차별이나 회교권의 성차별과 달리 카스트 제도는 여태껏 서구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변화의 싹이 트고 있는 듯하다. 지난해 봄 ‘달리트 인권 전국운동’은 올해 남아프리카 공화국 더번이라는 도시에서 열릴 유엔 인종회의에 카스트 제도를 의제에 포함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크미카(ICMICA) 주최의 이번 워크숍도 가톨릭 교회 차원에서 ‘더번 회의’를 준비하기 위한 대륙별 워크숍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이크미카는 이번 워크숍 이전에 아프리카와 유럽에서 해당 지역의 인종문제를 주제로 이미 두 차례의 워크숍을 개최한 바 있다).

 

1998년의 선거는 달리트들과 여타 소수 민족들의 연대로 막강한 투표집단을 형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달리트 출신 여성 마야와티는 우타르 프라데시주 장관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또한 인도의 가톨릭 교회는 지난해 봄에 첫 달리트 출신 주교를 배출했다고 한다. 달리트 출신인 한 의원은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자유를 쟁취할 수 있었다면 달리트가 카스트 제도의 신봉자들로부터 독립을 쟁취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변화의 흐름에서 인도 가톨릭 교회의 눈부신 역할을 기대해 본다.

 

[경향잡지, 2001년 9월호, 경동현 안드레아(사단법인 우리신학연구소 사목조사 컨설팅 센터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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