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토)
(홍)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강론자료

2015-0402.....주님만찬 성목요일

스크랩 인쇄

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4-02 ㅣ No.1741

                                           주님만찬 성목요일

탈출기 12,1-8.11-14        1코린토 11,23-26       요한 13,1-15(성찬례!!!)

2015. 4. 2. 이태원

주제 : 빠스카는 봉사를 위한 삶

사람은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이 말이 조금 진부하다면, 다른 표현으로 바꿀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일을 어떤 표현으로 하든지, 사람에게 먹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사람만이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이 세상에 창조해주시고 살게 하신 하느님께서도 그렇게 판단하신 일입니다. 그런 의미가 오늘 예수님의 최후만찬식사에는 담겨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제가, 하느님께로부터 직접 그에 관한 말씀을 들었기에 대신해서 여러분에게 전해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주님만찬 성목요일의 전례의미가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사람에게 먹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먹는다는 일은 생명을 유지하는 일에 얼마나 중요한 것이겠습니까? 사람은 먹어야 산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그 의미를 설명하지는 못하더라도 먹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누구나 아는 사람들이라고 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다락방에서 하신 마지막 식사는 하느님의 사랑이 가득 담긴 놀라운 사랑을 드러내는 행동이었습니다. 그 옛날, 모세가 히브리민족의 백성들을 이끌고 이집트땅을 탈출하던 날을 그들의 역사에, 그들의 삶에 되새기게 하는 것이었기에 때문입니다. 그네들의 말로 하면, 빠스카식사였고, 빠스카제사용 어린양을 잡아 함께 식사하는 것이었습니다.

히브리민족의 백성이 이집트땅을 탈출해서 가나안땅에 정착하게 된 것을 우리는 흔히 40년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표현을 우리가 잘못 안다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히브리민족이 이집트땅을 탈출해서 가나안땅에 정착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한달 안쪽이었습니다. 20일이면 가는 거리였고, 히브리민족의 백성이 갈대바다를 건넌 다음, 아무리 많이 걸려도 한 달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있었던 곳이 가나안땅이었기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빠스카축제를 위하여 어린양의 고기를 한번쯤 확실하게 먹는 것으로 광야를 가로질러갈 수 있는 힘을 모으는 방법으로 만든 축제가 오늘 기억하는 최후의 만찬이 가리키는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사람은 쉬운 길을 쉽게 가지 않습니다. 쉬운 길이니 쉽게 가면 참 좋겠지만, 그렇게 하면 누구나 다 그 길을 갈 듯하여, 앞서간 사람들이나 정책을 만드는 사람은 그 길이 힘들다는 것을 보이기 위하여 일부러 돌아가는 길을 만듭니다. 20일이면 도착할 수 있는 길을 40년이나 되는 많은 시간을 들여서 가게 만든 사건이 그 대표적인 일일 것입니다.

히브리민족의 역사에 드러난 40년의 시간이 그들의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선택은 하느님께서 준비해놓으신 일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자기들의 생각을 덧붙여서 일을 만들지만 결국에는 그것이 자기들의 삶에 손해로 다가오는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일도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평가와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 달 정도의 짧은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기에 한 번의 빠스카축제로 충분했다는 것이 하느님께서 처음에 계획하신 놀라운 일의 전체 모습일 것입니다. 이러한 일처럼, 세상에서 신앙인으로 산다는 우리가 세상의 일을 어떤 자세로 대하고 있는지도 돌아봤으면 좋을 것입니다. 혹시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면서, 각자의 삶에서 하느님을 몰아내고, 하느님을 밀어내고, 그저 인간을 최고라고하면서 만들어내는 일들이 정말로 인간의 삶에 손해와 피해로 오는 것은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경험론을 우선으로 합니다. 사람은 이론보다는 경험을 해야 뭔가를 더 잘 깨닫는다고 주장하는 독특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하느님께서 세상에 만드신 모든 존재가 다 경험론을 기준으로 살지만, 그 삶의 영향이 자기 자신을 떠나 다른 존재들에게도 영향을 남기는 것은 사람이 유일한 존재일 것입니다. 이렇게 독특한 것이 정말로 개인의 삶에 도움이 되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을 때가 문제입니다.

입으로 음식을 먹는 것이 사람의 목숨을 유지시키는데 필요한 일이었다면, 오늘 복음에서 들은 봉사를 기본으로 하는 자세역시도 그의 생명을 유지하고 연장시키는데 반드시 필요한 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하신 최후만찬의 식사얘기를 전하지 않습니다. 공관복음서에서 그 얘기를 전하는 부분에, 오늘 복음으로 들은 세족례의 일을 전합니다. 올해 우리본당에서는 몇 가지 특수한 사정을 생각하여 제가 세족례예식을 거행하지는 않습니다만, 이렇게 전례에서 거행하는 일의 의미는 함께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제가 발을 닦아주는 것이 중요한 일은 아닙니다. 1년에 한 번씩 하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그 일만큼은 형태를 달리하더라도 의미만은 매일, 매 순간 반복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의 의미를 깨달은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베드로사도는 겸손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는 그렇게 드러냈습니다만, 그런 겸손은 예수님께서 하시려는 일의 의미를 거절하는 독특한 행동이 되고 맙니다.

요한복음은 뭔가 좀 안다는 희랍문화의 지식인층들을 상대로 쓰였다고 합니다. 이들이 살던 곳에서 발을 닦아주는 것은 스승의 직함이 아닌 노예가 하던 일이었다는 것을 잘 새겨야합니다. 물론 요즘의 시대에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이 합당치는 않더라도, 우리가 올바른 신앙인으로서 가져야 할 참된 자세를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은 내가 다른 사람을 좋게 보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좋은 일을 만드는 일로서 더 밝고 좋은 곳이 되게 합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주시려고 했던 생명의 힘이 바로 빠스카축제였음을 기억하고 우리는 삶에서 그 일을 어떤 방법으로 반복하고 있는지 살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빵을 예수님의 몸인 성체를 받아먹고, 포도주를 예수님의 피인 성혈로 대하면서 우리가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는 무엇이겠는지 잠시 되새길 시간입니다.



749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