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4일 (금)
(녹) 연중 제10주간 금요일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간음한 것이다.

강론자료

2015-0401.....성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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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3-31 ㅣ No.1740

성주간 수요일

이사야 50,4-9ㄱ              마태 26,14-25

2015. 4. 1. 이태원

주제 : 내 삶을 담는 소리

오늘은 사월의 첫째 날입니다. 흔히 만우절(萬愚節,=41. 서양풍습에서, 악의는 없는 거짓말로 서로 속이면서 즐거워하는 날임)로 아는 날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얼마나 많이 황당한(?)거짓말을 하겠습니까? 비록 악의는 없고 장난만 잔뜩 담은 것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 손해가 될 수 있는 거짓말(!)은 하지 않는 것이 만우절을 지내는 본래 의도와 일치할 것입니다.

사람이 늘 진실하게 사는 일은 어렵다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사실은 진실하게 사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워낙 많은 사람이 거짓들 속에 살고 있으니, 그렇게 똑같이 살지 않으면 뭔가 손해를 입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그 옛날에 노아의 홍수를 통해서 세상의 죄악을 없애시려고 했던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되지는 않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사람이 해야 하는 일 혹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의 본보기를 들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세상에 실천하는 종의 세 번째 노래가 첫 번째 독서말씀이었고, 제자가 스승을 은전 몇 닢에 배반하는 이야기가 복음에서 들은 내용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가 세상 삶에서 가질 수 있고, 가져야 하는 올바른 태도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지만, 사람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외형은 바꿀 수 있어도, 그 머릿속의 자세와 판단은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결국 뭔가를 바꾼다는 것은 각 개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에 두려움을 모르고 다가서야 한다는 것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종의 올바른 자세라고 한다면, 복음에서 들은 유다의 자세는 어떻게 볼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인류의 구원사업을 이루시기 위해서는 유다의 배반이 있었어야 했으니, 유다는 자신을 희생(??)하여 인류구원에 협조했다고 해석한 어떤 글도 있습니다만, 우리가 가질 올바른 자세는 과연 어떤 것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다가올 미래를 말씀하시는 소리에, 유다는 자신감을 담아 대답합니다. 유다가 말한 <메띠, 에고 에이미, 랍비?>라는 희랍어를 우리말에서는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물은 것으로 번역하지만, 영어에서는 저는 아닙니다. 랍비여, 그렇지요?’하고 묻는 것으로 번역합니다.

Μητι εγω ειμι, ραββι / (Not I, Rabbi, surely?)

사람이 삶에 자신의 뜻을 담는 것은 좋고도 권장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산 삶의 결과가 과연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인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법입니다. 유다가 한 소리에 예수님은 그건 너의 말이라고 판단하십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자신이 하는 말에는 자신의 전존재가 담기는 법입니다. 나중에 가서 변명하고 말을 돌리더라도 그것은 변함이 없는 일입니다. 신앙을 대하는 우리의 올바른 자세는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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