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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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자료

2015-0326.....사순 제5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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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3-25 ㅣ No.1735

사순 제5주간 목요일

창세기 17,3-9         요한 8,51-59

2015. 3. 26. 이태원

주제 : 하느님의 선택에 대하여.....

사람의 삶을 잘 표현하는 말의 한 가지가 선택이라는 용어일 것입니다. 이 선택이라는 말은 둘 중에서 하나를 가리킬 수도 있고, 셋이나 그 이상 중에서 하나를 가리킬 수도 있는 표현입니다. 보통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일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선택이라는 용어를 선택한다면, 우리는 내 씀씀이를 다른 사람이 인정해줄 때를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게만 늘 맞이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수 있겠지만, 그것은 꿈으로만 남고 그렇지 않을 때를 생각한다면, 어떤 판단이 들까요?


내가 하는 선택이나 판단은 당연한 논리와 이론이 있다고 하지만, 다른 대상의 같은 판단이나 선택은 흔히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인간이 드러내는 모습일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가끔씩 그렇게 삽니다. ‘내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데, 다른 사람은 왜 나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내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 너희들은 분명히 손해를 입는 사람이 될 거라는 식입니다. 내가 참으로 중요한 대상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알려줄 수 있을까요?


오늘 독서말씀은 하느님께서 아브람을 귀중하게 여기시고 그의 진가(眞價)를 인정하시어 그와 특별한 계약을 맺는 모습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람의 어떤 모습이 눈에 들어 그렇게 하셨는지 알 재간은 없습니다. 그저 우리 앞에서 진행되는 일을 보면서, 그와 같은 축복에 참여할 방법은 과연 무엇이겠느냐고 질문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는 삶을 하고 있다면 내가 그 대답을 들을 수 있겠지만, 어떤 일을 하면 그런 확실성이 생기는 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브람과는 달리, 예수님을 대적했던 사람들처럼, 자기 삶에 분노를 드러내는 사람들이라면 그 안에 과연 하느님의 선택이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요?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하시려고 한다고 해도, 아마 인간이 그 결과를 거부할 것입니다.


사람이 삶에서 분노를 드러낼 때, 내 삶을 찾아올 좋은 것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그 안에는 논리의 모순이 들어있으니, 그렇게 좋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모습을 찾는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내가 원한다고 해서 하느님의 선택이 내게 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내가 거부한다면 내게 오려던 하느님의 선택도 당연히 나를 비켜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라고 해도 네모난 동그라미는 만드실 수 없다는 논리를 알아야 합니다. 사순절의 끝을 향하면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뜻에 나는 과연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지도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찾아오시는 하느님의 선택에 나는 어떻게 응답하는 사람들이어야 하겠습니까? 그 응답의 모양에 따라 내 삶의 모습은 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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