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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교회: 교회는 민족을 위해 봉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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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1 ㅣ No.11

[세계 교회는 지금] 베트남 교회 : 교회는 민족을 위해 봉헌한다

 

 

가톨릭 교회의 주교들은 만 75세가 되면 교회법에 따라 교황에게 은퇴를 청하게 된다. 그러나 중국과 베트남 등 주교 임명이 매끄럽지 못한 특수한 환경에서는 이러한 의무 규정이 별 의미가 없다.

 

1999년 12월 14일 부이추 교구의 부두이낱 주교가 88세로 죽었다. 당시 그는 베트남에서 최고령 현역 주교로서, 교황청과 베트남은 몇 년 동안 그의 후임자에 대해 협상해 왔으나 합의를 보지 못한 상태였다.

 

베트남 교회에서 가장 큰 현안은 나이든 교구장을 대신하거나 자리가 빈 교구를 맡을 새 주교를 임명하는 문제와 신학생 양성 문제이다. 신학교는 전국에 6개 있지만, 신학생 입학은 정부가 2년마다 한 번씩만 허가한다. 신학생 지원자들은 정부가 치르는 시험도 통과해야 하는데, 주로 지원자들의 정치관, 사회관, 민족관을 묻는다.

 

한편 교황청은 1990년 이후 자주 대표단을 파견하고 있다. 늘 주교 임명 문제가 주된 관심사인데, 지난 몇 년 동안 교황청과 베트남 정부는 “교회가 내세운 후보자에, 정부가 비토권을 가지는” 방식을 실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올 6월의 방문에서는 부이추 교구에 주교 한 명, 판티엣 교구에 부주교 한 명, 가장 중요한 하노이 대교구에 보좌주교 한 명을 임명하기로 합의했다. 지난 몇 년 동안 교회측은 현 나트랑 교구장으로서 작년에 주교 수품 은경축을 지낸 누옌반호아 주교를 하노이 대교구 부주교 후보로 내놓았지만, 정부는 그를 완강히 거부해 왔다. 때문에 이번에 교황청은 부주교 임명은 유보하고 보좌주교만 임명하기로 한 것이다. 또한 10년째 교구장이 없는 홍호아 교구는 이번에도 합의를 보지 못했다.

 

이러한 ‘베트남 방식’은 교황청과 주교 임명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한 대안으로도 제시된다. 그러나 교황의 주교 임명권에 국가가 개입할 가능성을 인정한다는 점 때문에 교황청은 공식적으로는 이를 언급하지 않는다.

 

베트남 교회에는 현재 추기경이 2명 있다. 하노이 대교구의 팜딘퉁 추기경(82세)이 있고, 지난 2월에는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위원장인 누옌반투안 대주교가 추기경이 되었다.

 

1975년에 남베트남이 공산화되기 겨우 7일 전에 사이공 대교구 부주교로 임명되었던 투안 대주교는 1975년부터 1988년까지 9년 동안의 독방생활을 포함해 모두 13년을 감옥에서 지냈다. 그뒤 그는 1994년 로마방문 중에 귀국 금지를 당해 로마에 머무르게 되었다. (베트남인의 이름은 중국이나 우리처럼 한자 음절 세 개로 이루어진다. 누옌-반-투안 대주교는 성이 누옌[阮]이다. 그러나 베트남에서는 이름 끝 자로 사람을 더 많이 부른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각별한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알려진 투안 추기경은 그의 감옥생활 동안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를 엮어 「희망의 길」을 냈다. (이 책은 우리말로도 번역되었다.) 그가 추기경에 서임되자, 일부 이탈리아 언론은 그가 다음 교황으로 유력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베트남인은 한국 사람들처럼 떠벌리지는 않지만 실제 민족적 자존심은 훨씬 더 강하다. 우리 나라의 ‘민족종교’인 천도교와 비교되는 카오다이교가 신자수 110만 명으로 불교와 가톨릭에 이어 베트남에서 세번째로 큰 종교다.

 

공산당이 1997년에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정부가 승인한 여러 종교의 ‘실제 신자’ 수는 1,52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0%다. 이 가운데 불교가 738만 명으로 제일 많고 가톨릭인은 495만 명으로 두번째로 많다. 이는 전체 인구의 6% 남짓 된다. 비슷한 시기 교회의 자체 통계에 따르면 신자는 508만 명이었다. 또한 주교 35명, 수녀 9,739명, 교구와 수도회 사제 2,303명, 대신학생 1,036명이 있다. 개신교는 50만 명에 지나지 않는다.

 

베트남 공산당 창설자인 호치민이 전쟁터에서도 우리 나라의 정약용이 쓴 「목민심서」를 곁에 끼고 살았다는 설에서 보듯 베트남은 유교 전통이 강한 나라다. 교회 또한 제사 문제와 박해를 똑같이 겪었다. 따라서 베트남에서 서양 종교의 대표자인 가톨릭 교회는 베트남 사회의 한 가족으로 정체성을 확보하려 애써왔다.

 

이러한 교회의 노력에 큰 도움을 주는 것은 현대 베트남에서 일상에 쓰는 베트남어 표기법을 바로 프랑스인 가톨릭 선교사가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서양식 알파벳에 약간의 특수부호를 덧붙여 쓰는 이 베트남 알파벳은 우리의 한글에 비교된다. 그 이전에는 모든 문자생활은 한자로만 해야 했다. 공산당조차도 이따금 이 사실을 공개적으로 높이 평가하며, 베트남 교회가 민족을 위해 더욱 헌신할 것을 기대하곤 한다.

 

베트남 교회에서 토착화 노력은 선교사들이 특히 교회건축과 예술에서 베트남식 양식을 받아들이는 식으로 시작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직후인 1970년대 초반에는 후에에 있는 베네딕도회 대수도원에서 전례와 미사에 징을 쓰고, 향을 피우며, 무릎을 꿇는 대신 절을 하고, 우리 한복과 비슷한 전통 예복을 입는 방식 등을 시도했다.

 

이에 대해 푸쿠옹 교구의 트란딘투 주교는 「교회와 민족」 2000년 3월호에서 “이것들은 단지 지역 문화 환경에 대중 신앙 표현을 적용한 초기의 노력”이라고 평가하고, “가톨릭 교의와 신앙실천의 제시뿐 아니라 공식 전례행사에서도 토착화는 별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투 주교는 성체성사와 다른 성사들, 특히 가톨릭의 혼인과 장례 예식 등의 중요 영역에서 토착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토착화는 겉으로 보이는 민족문화 양식을 택하는 것만이 아니다. 투 주교는 같은 글에서 베트남 교회를 비롯한 아시아 교회는 본질적으로 “복음화하는 교회”이자 동시에 “낮은 데로 임하는 교회”라고 말하고, 베트남 교회가 아시아의 삶의 가치와 전망, 특히 내면세계와 화합, 삶의 모든 영역에 대한 전체적 포괄적 접근을 구현하려 애쓴다면 “베트남다운 특성을 지닌 교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해선지 요즘 베트남에서는 성당 시설과 마당을 마치 공원처럼 지역 주민들에게 개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성전은 2층에 두고 1층은 강당이나 회합실로 설계해서 주민들이 쉽게 이용하게 하는 것이다.

 

[경향잡지, 2001년 8월호, 박준영 요셉(아시아 가톨릭 연합통신(UCAN) 한국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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