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6일 (일)
(녹) 연중 제11주일 어떤 씨앗보다도 작으나 어떤 풀보다도 커진다.

강론자료

2015-0316.....사순 제4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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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3-15 ㅣ No.1726

사순 제4주간 월요일

이사야 65,17-21         요한 4,43-54

2015. 3. 16. 이태원.

주제 : 하느님의 은총은 누구를 구별하는가?

사람은 때때로 자기 맘에 드는 사람의 편을 들고, 때때로 생각이 같은 사람끼리 모여서 무리를 지어 삽니다. 물론 이렇게 살기 시작한 무리가 공동체로 바뀌는 경우도 있고, 말 그대로 처음 시작해서 다른 모습으로 바뀌기 전인 그 모습으로 삶을 끝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낱말의 뜻을 아는 경우라면, 당연히 무리보다는 공동체가 더 낫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이렇게 의미가 좋다는 낱말대로만 사는 것은 아닙니다. 이론과 현실에는 차이가 있다고 말하는 경우가 이런 것을 가리킬 것입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의 뜻이 세상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좀 더 쉽고도 정확하고 분명한 표현입니다. 이 말이 정답이고, 이 말이 옳은 표현이기는 하지만, 세상에 신앙인으로 자기 삶을 소개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누구나 다 완벽한 자세를 드러내고 사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그다지 편하게 해주신 분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그렇게 움직이면서 반대급부로 뭔가를 챙긴 분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 우리가 직접 예수님을 만날 수도 없지만,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모습이고, 신앙에서 가르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지연이나 지방색을 따진 분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복음말씀이 말해주는 것처럼, 박대당한 경험이 있던 갈릴래아에 가셔서, 갈릴래아에 살던 사람들을 위해서 특별한 일을 하신 것이 아니라, 이방인에 속했을 왕실관리를 위해서 움직이셨다고 전합니다. 그 존재와 삶을 잘 안다고 생각했을 갈릴래아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예수님이라고 해서 사람들의 인기를 가져오는 방법을 모르는 분으로 사셨을까요? 아마 아니었을 것입니다. 당신이 인류의 구원이라는 큰일을 이루기위해서는 어떤 분으로 모습을 드러내야 하시는지 아셨을 것이고, 그에 따라서 철저하게 사신 분이라는 소리가 옳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드러내신 삶의 모습은 아마도 올바른 신앙인이 드러내야 할 모습이라고 제가 말씀드린 대로일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이사야예언자를 시켜서 선언하신 것처럼, 새롭게 창조된 세상에 살 자격을 갖춘 사람이 드러내야 할 모습이라고 해도 지나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사람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구별한다고 굳이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은총을 얻을 대상이 드러내는 삶의 모습에 따라 달라진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미사에 함께 하는 모든 사람에게 기회는 같을 수 있습니다만, 그 결과까지 똑같다고 자신하여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방인이었던, 왕실관리가 가졌고 드러냈을 삶의 자세를 얻고 드러낼 수 있도록 청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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