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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시복시성에 대한 몇 가지 질문 (2) 배교 후 순교한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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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9-21 ㅣ No.962

[순교자성월 특집] 시복시성에 대한 몇 가지 질문 (2 · 끝)


한국 성인 중에 배교 후 순교한 사례 볼 수 있어

 

 

무엇이 ‘배교’인가?

 

“배교만 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당시 많은 박해자들은 신앙인을 ‘배교자’로 만들어 죽이려는 계책을 세웠다. 시복시성을 위한 조사과정에서도 명백히 드러나는 사실이다. 가뜩이나 숨어 지내느라 풍부하지 못한 자료마저 불태우고 없애버리다 보니, 그 가운데 밝혀지지 않은 우리 신앙선조들의 ‘억울함’도 많을 듯하다.

 

법적인 심사를 위해 교회법 학자들은 목격 증인의 진술을 통해 순교자가 죽는 순간까지 항구한 은총을 지녔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어떤 이들은 순교 자체가 그 항구함과 인내를 포함한 것이기 때문에, 목격 증인의 진술은 불가능하고 단지 추정될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배교’를 우리는 과연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베네딕토 14세 교황은 이 항구함을 확인하기에 실제적으로 불가능한 경우들을 분석하면서, 가능한 정도까지 항구함을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한 어려움이 뒤따른다.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위원장 박정일 주교)가 펴낸 「시복시성절차 해설」은 “신앙에 대한 박해자의 증오와 이에 따른 죽음의 의지는 있지만 인간적인 나약성이 있을 수 있는데, 이것은 자연적인 것”이라며 “죽음의 수락에 관한 판단의 어려움은 특별히 죄 없는 아기들의 순교를 다룰 때 나타난다”고 전하고 있다.

 

아기들에게는 순교의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대신해 죽임을 당한 아기들을 교회는 순교의지가 드러나지 않음에도 순교록에 올렸다.

 

또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고 영위할 천부적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본연의 약함도 가지고 있기에 신앙을 거부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러한 인간의 나약함 때문에 신앙을 배반했다가 회개 후 죽음을 수락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시복시성절차 해설」은 이러한 박해의 첫 번째 단계에서 동요돼 자신들의 신앙을 배반했다가 뒤에 자발적으로 신앙을 고백하기도 한다며, 베드로 사도가 대표적인 예라고 전했다. 한국의 성인들 가운데서도 자신의 배교를 뉘우치고 다시 순교를 향해 나아가는 많은 사례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교회의 목자가 신자를 돌보는 것을 포기하고 행한 피난이나, 추문에 의한 피난은 교회법적으로 볼 때 죽음을 수락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한다.

 

「시복시성절차 해설」을 지은 최인각 신부(수원가톨릭대 학생처장)는 “신앙선조들 가운데 제사문제 때문에 일부를 보류했던 사람들도 있었으나 그들도 가톨릭 신앙 전체를 포기하지는 않았다”며 “여러 가지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잠깐의 흔들림만으로 배교자라고 말하는 것은 일방적인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했다.

 

 

평신도도 청원인이 될 수 있다?

 

시복시성을 준비하는 청원인을 떠올리면 대부분 꼭 ‘사제’여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들도 청원인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1917년 법전 제2004조 2항에서는 사제들과 남녀 수도자들이 청원인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평신도들이 청원인의 임무를 수행하는데 자신의 가족과 일 등 여러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신학과 교회법, 교회사에 정통할 뿐만 아니라 시성성의 간행에도 익숙한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에 사제가 그 역할을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청원인은 대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아야 하고, 신중함과 근면함, 자신의 임무수행에서 열정과 성실함을 갖추어야 한다. 또 개인적으로 안건에 대한 충분한 숙지가 돼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청원인은 한 안건을 위해서만 선임되며 여러 안건이 하나로 합쳐진 경우에는 단일한 안건으로서 한 사람에게 위임돼야 한다.

 

 

시복시성에서 요구되는 기적이란?

 

얼마 전 시복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에 결정적 근거가 된 것은 프랑스 마리 피에르 수녀가 체험한 기적이었다. 2001년부터 파킨슨씨병으로 고생하던 그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 후 전구를 청했으며, 2005년 6월 예수 성심 대축일에 완치됐기 때문이다. 2년간 기적에 대한 침묵을 지켰던 수녀들은 감사기도를 바치며 그의 시복시성을 진심으로 기도했다.

 

새로운 법에서 기적으로 추정되는 심사는 영웅적 덕행이나 순교에 대한 예비심사와는 별도로 진행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교구 심사에서 두 개의 절차는 매우 유사하게 진행된다.

 

기적에 관한 심사의 특별한 요소만을 놓고 보았을 때, 「시복시성절차 해설」은 기적을 “하느님의 종의 사망 이후 하느님의 종의 중재로 인한 기적으로써 신자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지고 널리 전파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청원인의 역할은 더욱 무거워진다. 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기적으로 주장되는 증거를 심사하기 위한 안건을 착수하기 전에, 기적에 정통한 전문가를 적절하게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기적이 일종의 환상이나 편견에 의한 결과인지, 또는 사실 인식 부족에 의한 결과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시성성에서는 지금까지 급작스러운 회개, 악습의 고침, 마약이나 알코올 환각제의 중지 등의 윤리적 기적들은 ‘기적’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신체조직에 나타난 특이한 현상들, 자연법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체상의 치유와 다른 현상들(음식물을 기적적으로 많게 함, 범람의 중지, 화재의 소방 등)은 기적 조사에 포함돼야 한다.

 

시복시성을 위한 이러한 기적의 확인은 8세기부터 교회에서 행해졌으며, 베네딕토 14세 교황 시대에 분명한 증인의 증언이 있다면 시복을 위해 두 개의 기적을 요구했고, 청취를 통한 증언이라면 네 개의 기적이 요구됐다고 전해진다.

 

현행법에서도 시복시성을 위해 기적의 필요성을 전제하고 있는데 특별한 기적의 숫자를 규정하고 있지 않아 하느님의 종 사망 이후 발생한 하나의 기적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으면 충분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1년 9월 11일, 오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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