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2일 (토)
(녹)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강론자료

연중 30 주일-가해-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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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3-02-28 ㅣ No.373

연중 제 30 주일 (가해)

  

        출애굽기 22,20-26    1데살로니카 1,5ㄷ-10    마태 22,34-40

     2002. 10. 27.

 

주제 : 가장 큰 것을 찾는 어리석음(!)

 

한 주간동안 안녕하셨습니까?

한 주간 여러분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마당에 새로 짓고 있는 건물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에 시작하여 3달 가까이 되면서 내부적으로는 해결해야 할 일은 아직 산더미이지만 겉모양은 꼴을 갖춰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우리의 현실을 살핀다면 겉으로 괜찮아 보인다고 속까지 괜찮은 것은 아니라는 소리도 가능할 것입니다. 애석하게도 사람의 눈은 속을 꿰뚫어볼 수 있는 능력이 없으니 겉모습만 보고 감탄하는 오류를 범하지만 말입니다.

 

오늘은 연중 30주일이고 시월의 네 번째 주일입니다.  전례력으로 계산하는 올 한해도 이제 한달하고 조금 더 남았을 뿐입니다. 삶을 반성하고 그 결과를 돌이키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일은 사람만이 하는 특별한 일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특별한 일을 하는 존재인 사람이 늘 자신의 삶을 돌이키고 계획을 세우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계획을 세운다고 말은 해도 과거의 일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또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미래를 향하여 계획을 세우고자 할 때는 올바른 방법으로 제대로 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어리석은 질문을 하는 율법학자의 자세’를 버리지 못한다면 똑같은 시간을 지내고 나서도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로마제국의 세력을 등에 업고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나서서 정치를 담당하던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부활에 관한 문제로 예수님과 붙었던 담판에서 패배했습니다.  그러자 초록(草綠)은 동색(同色)이라고 그 소식을 들은 바리사이파 사람들, 이스라엘 사회에서 비슷한 역할을 담당하던 그들이 몰려왔고 그 가운데 율법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어리석은 질문을 던집니다. 자신의 전공분야인 율법, 자신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율법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이냐고?’

 

사람들은 자주 큰 것을 따집니다.  집도 큰 것으로 마련하려고 하고, 건물도 크게 지으려고 합니다. 드러나지는 않습니다만, 큰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마음 안에는 작은 것은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이 있을 것이고 작은 것은 피할수록 좋다는 생각이 있었다면 그 질문은 어리석은 질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은 큰 것과 작은 것의 구별이 따로 없이 ‘사랑하라’는 것이었는데 인간이 자기 생각을 집어넣어 구별합니다. 큰 것을 알거나 지키면 작은 것은 몰라도 괜찮다거나 무시해도 좋다고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생각은 세상에 따로 없습니다. 전쟁을 하더라도 대포나 비행기가 갖는 화력은 소총보다 월등히 셉니다. 하지만 진정한 승리는 소총을 쥔 보병이 지나가야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내 땅이 되는 것이고 그래야 진정으로 내 힘이 닿는 곳이 됩니다. 머리로 큰 것을 알아듣는 일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신앙에서 하느님을 여러 가지 방법과 모양으로 설명하더라도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면서 그분의 뜻을 찾을 때 큰 것만 찾고, 작은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 이웃에 대한 실천을 무시하면 잘못이라는 뜻으로 예수님은 복음에 나오는 어리석은 사람의 질문에 맞춰 응답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몸과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이고, 둘째는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일이라고.

 

살아가는데 영양분을 충분히 얻고 싶다면 밥과 반찬을 따로따로 먹으면서 소화시켜야 할 일이지 한꺼번에 뱃속에 집어넣고 몸을 좌우로 굴린다고 해서 되는 일은 아닙니다. 비효율적이고 쓸데없는 시간 소비가 많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순서를 지켜야 할 일은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올바른 실천 없이 하느님께 간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소리이기에 예수님께서는 큰 계명이 무엇인지 묻는 어리석은 질문에 두 가지로 설명하시면서 두 번째의 중요성도 첫 번째 못지않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이웃을 내 몸처럼 대하는 일이겠습니까?  그 응답은 첫 독서 출애굽기의 말씀에 나옵니다.  자기 고집대로 살아왔던 자세를 버려야한다는 뜻으로 하느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그 율법 가운데 이웃에 대한 이야기의 한 가지가 오늘 독서 말씀입니다.  ‘너희 이스라엘 백성들의 과거 생활이 힘들었을 때 나, 하느님을 향하여 기도했기에 해방의 선물을 준 것처럼, 자기 힘이 세다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을 억압한다면 하느님은 억압당하는 그들의 청원을 들어줄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나에게 편리할 때만 하느님을 이용하지 말라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이 소리는 신앙인들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는 말입니다. 내가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사는 신앙인이라고 말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기는 하되 실천하기를 게을리 한다면 내가 원하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큰 것만을 찾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큰 것이 우리 삶을 항상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혹시라도 우리가 큰 것을 찾을 때라도 그것보다 조금 못한 것, 조금 작은 것이라고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큰 것과 작은 것을 내 맘대로 정하는 일도 문제이지만 바로 그 자세가 내 삶을 힘겹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을 활기 있게 만들고 마음 뿌듯함을 가져오는 일은 엄청나게 큰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일에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우리 생활을 숨길 수 있는 가능성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갖는 생각과 그 생각에 따른 실천은 언젠가는 하느님의 판단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을 올바로 믿고 하느님을 올바로 따르는 사람이라면 인간에 대한 사랑자세도 남다를 것이고 그 일로써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공경하는 무리에 들 것입니다.  사랑은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지 내가 나서지 못할 어려운 일을 하라고 지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하여 되새길 내용은 ‘어리석은 바리사이파 무리의 율법학자’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알아들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려고 애써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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