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2일 (토)
(녹)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강론자료

연중 28 주일-가해-2002

스크랩 인쇄

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3-02-28 ㅣ No.372

연중 28 주일 ( 가해 )

 

          이사야 25,6-10ㄱ 필립비 4,12-14.19-20  마태오 22,1-14

     

    2002. 10. 13.

 

주제 : 하느님의 초대

 

한 주간 안녕하십니까?

사람들의 삶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초대와 응답으로 이루어집니다.  사람들 모두 다 긍정하는 것은 아니겠습니다만, 아침 일찍 일어나고 움직일 수 있는 것도 뜻있는 결실을 남겨 활력을 남겨야 한다는 의미에서 삶의 초대라고 해석할 수 있고, 음식이 차려진 자리에 앉는 것도 하루 동안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얻으라는 초대로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의무라고 해석해서 안타깝기는 합니다만 주일이면 성당에 와서 하느님의 말씀을 다시 새기는 것도 우리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지기를 바라는 하느님의 초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비롯하여 우리 삶에는 수많은 초대가 있는데, 우리가 그 초대에 어떻게 응답하는지 돌이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입니다.

 

오늘 하느님의 말씀은 잔치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복음에는 하느님 나라의 모습을 혼인잔치를 차리고 거기에 손님을 초대하는 것에 비유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나오고, 이사야예언서 독서에는 사람들이 겪은 삶의 수고를 계산해주시는 의미로 장차 벌어질 하느님 나라 잔치 상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잔치 상에 초대하지만 그 잔치 상에 대한 자세는 사람마다 다른 듯 합니다.  

 

시대가 어려우면 세상을 풍자하듯이 등장하는 것의 하나로 ‘각설이 타령’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언젠가 들었는데 잊혀지지 않는 내용이 있습니다.  각설이가 어느 날 무척 배가 고팠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고픈 배를 위로하려고 자기의 비밀장부를 꺼내어 동네사람들이 앞으로 벌일 잔치 집 기록을 살핍니다.  ‘모레는.....언덕 너머 김 영감네 환갑!....야 벌써 침 넘어가네!..... 내일은 앞마을 황부자네 아들 백일잔치.....이것도 좋네!....’  그런데 문제는 오늘이었습니다.  ‘오늘은.........맹탕’  참으로 황당하고 당황스럽고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우리 삶에도 이런 일은 반복됩니다. 철들어 부모님의 은덕을 조금이나마 갚으려고 뒤돌아보았더니 찾는 부모님은 아니 계시는 상황,  지금은 힘들어서 세상을 확 바꿔버리고 싶은 마음 간절해서 바꾸고 나니 ‘구관이 명관’이라고 뒤늦게 후회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 사람들의 생활입니다.  이런 일을 누구나 다 겪는 것은 아닙니다만, 신앙인의 길에 들어선 우리 삶도 결국 하느님께서 준비하시는 잔치 상에 참여할 날을 기다리며 그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는 과정이 현세의 삶이라고 생각한다면 매일매일 삶을 소홀히 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복음의 비유에 나오는 임금은 참으로 이상한 사람입니다.  그가 하는 말의 힘이 약했는지, 좋은 소리로 할 때 임금아들인 왕자의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요즘 세상처럼 ‘혼인잔치에 오라는 것이 과거에 투자한 돈을 회수하는 방법’도 아니었을 텐데, 잔치에 초대받았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신만 이해할 수 있는 합당한(?) 이유를 들어 임금의 초대를 거부합니다. 그러자 처음에는 온건하게 행동했던 임금은 다음 순간 군대를 풀었고, 그 군대들은 적대적이었던 살인자들을 모조리 처단하고 그들이 살던 동네를 불사릅니다.  임금으로 등장한 사람이 왜 자비롭지 못한 일을 했을까, 그 임금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오랜 세월 후에 사는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다만 한 가지, 내게 다가온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다면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내게 닥친 어려움에 후회한들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현실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더불어 수많은 초대를 받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그 하느님의 초대에 합당하게 살아가는지 자신의 삶을 돌이켜봐야 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이 계절의 변화에 따라 우리더러 삶의 여유를 가지라는 초대, 적어도 주일이면 하느님의 말씀을 새기고 그 안에서 양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는 초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삶에서 많은 초대를 경험합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내가 현재 보이는 삶이 과연 하느님의 잔치 초대에 합당하게 참여할 수 있는지 그 판단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정하신 성소에 자리를 잡고 우리를 위한 잔치를 베풀겠다고 이사야예언자는 선언하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하느님의 초대에 겸손하게 응대하면 되는 일이라고 합니다.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출발점인 세례는 그 초대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느님의 초대를 주일이면 반복해서 듣게 됩니다.  이러한 뜻이 있기 때문에 주일미사에 내가 내 발로 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사에 내가 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부르셨다는 의미로 ‘이 성찬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복되다’고 하는 낯 선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를 얻고자 한다면 그 방법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다 아시는 것처럼, 조금 얄팍한 마음자세가 있기는 합니다만 내 기준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기준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 기준을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환경에서든지 적응하는 방법을 배운 사람으로서 자신은 하느님의 은총을 힘입어 그분이 원하시는 일이면 어떤 일도 하겠다’는 자세로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살고자 한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첫 번째 마음의 자리를 하느님께 봉헌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느님의 초대를 받고 이 자리에 함께 한 여러분들에게 하느님의 축복과 자비가 함께 하기를 빕니다.



250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