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2일 (토)
(녹)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강론자료

부활 2 주일-가해-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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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1999-04-11 ㅣ No.75

부활 제 2 주 (가해)

           사도행전 2,42-47  베드로1서 1,3-9   요한 20,19-31

       1999. 4. 11.

주제 : 세상에 참으로 필요한 것

 

우리가 사는 세상에 참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질문으로 이렇게 시작한다면,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필요한 것 여러 가지를 기억해 낼 것입니다.  넓은 집, 편안한 가구, 빚 없는 생활, 맘껏 쓰고 싶은 돈, 자녀의 혼인이나 직장 취직, 관계가 불편한 이웃과의 화해 등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 생활이 좀 더 행복해지는데 필요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라는 것처럼, 이것들만 구비된다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채웠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부활시기 두 번째 주일입니다.  부활대축일이 첫 번째 주일이었고, 그로부터 8일째 되는 오늘은 부활 2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 세상에 참으로 필요한 것을 주시듯, 부활하신 주님은 당신의 입장에서 참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신 선물, 평화를 주십니다.  부활하신 분이 주시는 선물은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하는 인사에 포함되어 있는 평화입니다.

 

요즘 세상처럼 평화가 필요한 때는 없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지내고 있는 세상은 많은 사람들이 실직을 하고, 가정에 검은 먹구름이 끼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것이 힘들다는 생각이 들고, 세상일에는 웬 제약이 그리도 많은지 짜증은 날이 갈수록 늘기만 하고, 밥을 먹으면 살로 가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지금 무슨 정신으로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현실을 이렇게 바라본다면 그것은 평화가 필요한 시대라는 이야깁니다.

 

우리 나라와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요즘 텔레비전의 첫머리와 세계 기사의 처음을 장식하는 것은 유고라고 하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민족청소와 그 반대 대응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와는 멀리 떨어져 있기에 상관없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1950년에 이 땅에서 발생한 민족의 비극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우리 민족의 체험은 더한 것입니다. 다른 나라의 사건은 그래도 민족이 다르다는 명분이라도 있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같은 민족안에서 일어난 싸움이었기에 더 아픈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한 일들은 평화가 절실히 필요한 우리 현실의 모습입니다.

 

평화는 어디에서 오겠습니까?

예수님은 부활하신 뒤, 제 일성(一聲)으로 평화를 말씀하셨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가 여러 차례 듣는다고 해서 없던 평화가 우리에게 갑자기 그리고 저절로 오지는 않습니다.  이 평화의 시작은 어디겠습니까?

 

이 문제를 올바로 알아보려면,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불화(不和)와 반목(反目)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찾아보고, 그 반대의 모습으로 실천하면 가능한 일입니다. 불화와 반목은 두려움, 그리고 우리의 욕심에서 찾아오는 필연적인 것들입니다.

 

제자들은 스승의 육신이 무덤 속에 감춰지고 난 다음 무서움에 떨었습니다.  자신들의 생명에 위협이 가까이 다가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눈을 무서워하지 않고 살 것인가?  많은 고민도 했을 것이고, 걱정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걱정과 고민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들은 어미 닭을 잃어버린 병아리처럼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 자리에 예수님께서 등장하시어 그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고 평화가 함께 하기를 바라십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이 말을 할 때 예수님이 가지셨던 마음은, 제자들이 갖고있던 두려움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이 말로써 제자들에게 참으로 참된 평화가 다가왔는지, 아니었는지를 우리가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방문과 그분의 위로에 따라서 제자들의 마음에는 새로운 희망의 싹이 돋아났을 것입니다. 마치 비 온 다음 새로운 싹이 두꺼운 땅을 비집고 올라오듯이 말입니다. 불안과 죽음의 위협에 떨면서 고생했을 제자들에게는 평화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바라던 것은 엄청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활발한 마음으로 대중들에게로 돌아갈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자신들이 보고 느낀 것을 사람들에게 거리낌없이 전할 수 있을까? 오로지 그것이었을 것입니다. 그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제자들에게 평화는 참으로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험난한 과정을 통해서 얻어야 하는 평화는 어떻게 하면 지킬 수 있을까?  부활시기를 지내며 우리가 한가지 더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세상일에 때로는 얻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힘든 일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 한 가지는 신앙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신앙을 내 삶의 한 부분으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삶의 한 부분으로 만들어가던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이 첫 번째 독서 사도행전에 나오는 모습입니다.

 

2000년 대희년을 맞이하면서, 교회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렇게 돌아가는 것은 단순히 역사를 2000년 되돌리자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사도행전 독서에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살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역사는 지나쳐서 독서에 나오는 말씀 그대로 산다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가르침을 내 삶의 중심에 두고, 도움을 주는 일에 앞장서고, 하느님을 공경하는 제사에 자주 참여하고, 기도한다는 일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든지 그것은 해야 할 일입니다.

 

사람은 모름지기 목적 없는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초대교회의 삶을 알기 위해서는 성서에 대한 자세도 달라져야 하겠고,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 생활 가운데서 자꾸만 울려 퍼지게 하는 일에도 시간을 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일에 우리가 성심성의껏 참여한다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시는 몫은 더 커다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세상일에 공짜는 없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없는 시간을 쪼개어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고 그 시간을 내어 하느님의 일에 참여하는 그만큼 우리에게 다가올 하느님의 축복은 영광스러운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지내는 시기는 부활주간입니다.  부활은 하느님이 우리를 당신의 역사에 초대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주시려고 간절히 원하신 선물인 ’평화’를 받아서 우리 삶도 풍요롭게 하고,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도 풍요롭게 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 참된 하느님의 평화가 다가오게 하려면, 우리는 어떠한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까?  잠시 하느님의 지혜를 청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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