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2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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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자료

[평화신문]예수 부활대축일-최기산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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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goodnews] 쪽지 캡슐

1999-04-05 ㅣ No.63

 

[평화신문] 예수부활대축일, "알렐루야"

최기산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 <마태 28, 1―10>

 

목련과 부활꽃

 

아름다운 봄에 부활절을 맞았다. 온갖 식물이 소생하는 싱그러운 봄이다. 성급한 꽃망울은 만개한 지 이미 오래다. 목련도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다. 나무에 목련꽃이 피었다고 생각해보면 목련은 부활절과 너무나 상통하는 바가 많은 것 같다. 십자나무에서 꽃이 피었으니 아름답게 피어난 그 꽃을 부활 꽃이라 할까? 예수님은 꽃이 되어 피어나셨다. 특히 더러운 물에서 수면 위로 아름답게 피는 연꽃처럼 예수님은 피묻은 십자가의 더러움에서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셨다.

 

예수님 부활의 의미

 

각 복음서들은 예수님의 부활이야기를 각기 다른 형태로 전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하나다. 로마인들이 처참하게 못박아 죽인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2000년 전에 돌아가셨고 부활하셨다. 그분의 부활은 라자로의 부활이나 회당장 야이로의 딸의 부활과는 다른 부활이다. 라자로나 야이로의 딸은 다시 죽었으나 예수님의 부활은 영원하며, 그분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있는 이 세상의 삶과 전적으로 다른 차원의 삶으로 부활하셨다. 그분은 다시 죽지 않으셨다. 그분은 생성소멸의 법칙에서 해방되시어 영원히 사신다.

 

예수께서 부활하셨기에 우리도 영원히 부활하리라는 희망으로 가득 차있다. 그 희망은 죽음도 두렵지 않게 만드는 벅찬 희망이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전한 것도 헛된 것이요, 여러분의 믿음도 헛된 것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I고린 15, 14)고 말씀하였다.

 

부활하신 주님은 엠마오의 길에서(루가 24, 15), 티베리아 호숫가에서(요한 21, 1), 막달라 여자 마리아에게(요한 20, 14),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요한 20, 19) 나타나신다. 그리고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요한 20, 21)하고 축복해 주시며 이 기쁜 소식을 모든 민족에게 전하라(루가 24, 47)고 말씀하셨다.

 

오늘은 기쁜 날이다. 신자들에게 아마도 오늘은 최대의 명절이다. 우리에게 부활의 희망을 주셨기 때문이다. 과연 나는 오늘이 기쁜가? 기쁘다면 얼마나 기쁜가! 기쁘지 않고 그저 그런 날로 여겨진다면, 혹은 나와는 별로 상관없는 날이라 여겨진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 속에 바벨탑을 열심히 쌓는 사람들은 즉 물질과 명예의 탑을 쌓느라 정신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오늘이 그저 그런 날일 것이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하루요, 미사전례가 길고 성가대가 길게 성가를 부르는 진력 나는 그런 날일 것이다. 과연 나는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가? 가슴에 손을 얹고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어봐야 할 것이다.

 

예수님 부활에 즈음하여 막달라 마리아의 역할은 돋보인다. 당시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특권을 주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첫 번째로 뵙는 특권은 대단한 특권이다. 그는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남정네들에게 전하는 특권도 받았다.

 

아직도 이 세상은 남성의 권위가 여성보다 우월하다. 그런 의미에서 부활절은 여성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주는 날이기도 하다.

 

복음의 메시지

 

만일 오늘 예수님이 부활하시면 누가 제일 먼저 그분을 만날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 특권을 주실까? 성직자일까? 수도자일까? 평신도일까? 아니면 이 세상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일까? 혹은 어쩔 수 없이 거리의 여인이 되어 매일 매일을 눈물로 살아가는 가련한 여인일까?

 

오늘은 기쁜 날, 주님을 찬양하는 날이다. 그러기에 부활찬송에는 "용약하라, 하늘나라 천사들 무리,…"라고 노래한다. 천사들도 용약하는 오늘은 내 인생의 해답을 얻은 날이다. 나도 부활하리라는 확신 때문이다. 부활찬송에는 또 "오, 복된 탓이여! 아담이 지은 죄…"라고 하였다. 인간의 죄로 그리스도가 오셨고, 부활도 맞이하게 되었음을 역설로 표현한 것이다. 이날을 슬퍼할 수 없다. 근심·걱정을 제쳐두고 우리의 부활을 묵상하면서 주님을 찬양하자. 모든 어려움을 몰아내시고 광명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본받아 우리의 마음 속에 혹시라도 맺힌 것들이 있다면 모두 풀고, 용서하고 이 기쁜 날을 경축하자.

 

오늘은 온 가족이 별스런 음식을 장만하여 함께 나누며 알렐루야를 불러보자. 끝이 안 보이는 어려운 경제여건을 타개하는 길은 주님의 부활을 믿고 그분으로부터 힘을 얻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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