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2일 (토)
(녹)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강론자료

부활 성야-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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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1999-04-03 ㅣ No.61

부  활  성  야

          1독서:창세 1,1-2,2     3독서:출애 14,15-15,1  5독서: 이사 55,1-11

          7독서:에제 36,16-17a.18-28   신약독서: 로마 6,3-11 복음: 마르 16,1-8

 1999. 4. 3.

 

알렐루야, 노래하자. 기쁜 때가 왔도다. !!!

교형 자매 여러분들에게 예수님 부활 인사 드립니다.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참으로 기쁘고 즐겁고, 유쾌한 일입니다.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던 상황에 살다가, 그런 엄청난 경험을 하고 있던 사람에게는 말할 것도 없겠거니와, 사순절시기를 통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준비해왔던 우리에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예수님이 부활도 같은 의미입니다.

 

부활은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부활은 우리가 사순절을 통해서 지내왔던 것처럼, 수난과 고통을 전제로 하고, 그것을 잘 이겨냈을 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경축하기 위해서 모이신 여러분께 너무나 무식한 질문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질문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부활을 믿으십니까?

 

제가 어디서 봤는지 기억하지는 못하겠습니다만, 엊그제 흥미로운 사실을 봤습니다. 내가 훗날 부활할 거라고 믿는가에 대한 설문조사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부활하신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88%가 부활을 믿는다는 통계가 있었고,  아직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은 비신자들의 약 30%가 부활을 믿는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보고 우리 고양동 신자들은 어떠한 삶의 모습을 갖고 살아가는가 싶어서 질문을 드립니다.  여러분은 부활을 믿으십니까?

 

우리 고양동 신자는 약 1500명정도 됩니다. 그리고 이 성당이 꽉 차면 300여명이 될까 말까합니다. 주일미사를 봉헌하면서 미사에 참여하는 신자들의 숫자는 한참 과장하면, 약 500여명이 될 정도입니다. 교적은 이곳에 두고, 다른 곳에 나가는 사람들을 감안하더라도, 우리 고양동 신자의 반 정도는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부활에 대해서 무관심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일에 대한 애석한 것은 접어두더라도, 오늘 만나시는 분들에게 부활을 바라고, 부활을 축하하는 인사를 하셨으면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함으로써, 아직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이 조금은 나은 삶의 모습을 갖게되지 않을까 합니다.

세상 창조의 모습을 제가 본 것은 아니지만, 오늘의 전례는 창조 다음가는 의미를 갖습니다.  창조 다음에는 인간들이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착각했던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세상의 모습을 어지럽게 했지만, 부활 이후에는 이미 이 세상에 횡행하던 악한 힘이 부활초가 상징하는 하느님의 빛으로써 사라져 버렸기에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는 참으로 깨끗한 때가 되었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그 깨끗함을 유지하고 그 깨끗함을 더 널리 펼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간 파스카 축제, 부활의 기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부활초가 행진해 들어올 때, 그리고 그 기쁨을 노래로 표현하는 부활찬송을 들으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시고, 어떤 기도를 하셨습니까?  저는 가끔씩 가슴 뭉클한 느낌을 받곤합니다.  인간으로서 하느님의 위대한 일을 보여주는 일을 한다거나, 다른 사람들이 저의 움직임으로 그 영광을 느낀다는 사실에 대해서 특별한 느낌을 갖곤합니다. 비록 혼자서 하는 부활찬송이 박자도 맞지 않고, 곳곳에서 헤맨다고 하더라도 그 느낌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거나 믿지 않거나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우리가 믿고 믿지 않는 행동에 따라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부활은 하느님께서 인간과 그 사랑을 나누시고자 보여주시는 특별한 사건이요, 업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일년 중 미사에서 유일하게 독서가 8개가 있는 날입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에 따라서, 우리는 그 가운데 구약에서 4개와 신약에서 1개를 읽습니다.  창세기 독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가장 잘 보여주는 세상의 창조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세상이 존재하게 된 것이 그저 우연하게 생긴 일은 아니라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했던 믿음의 고백입니다.

 

출애굽기 독서의 말씀은 고난과 고통의 상태에서 기도했고, 하느님의 응답으로 곤경을 탈출하게 된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느님은 인간이 절실하게 청하기만 하면, 그리고 아주 작은 소리로 응답하는 하느님의 소리를 우리가 무시하지만 않는다면, 구원을 얻게 된다는 말씀을 들려줍니다.

 

이사야서와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은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느님, 그래서 그 사람들 옆에 항상 머물러 계시는 분이니, 우리가 돌아서기만 한다면 응답해주실 것이라고 애타게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느님, 사람이 바른 자세로 살아가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느님이 오늘 기억하는 부활의 주인공, 사람이 되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주신 분입니다.  이러한 하느님을 우리가 오늘 처음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부활절을 여러 차례 맞은 사람들은 그런 기회를 맞을 기회가 많았을 것입니다. 부활의 기쁨은 수난이 있어야만 의미가 있는 법입니다.  우리가 지난 기간을 어떻게 지냈는가에 따라서, 우리에게 기쁨이 다가오는 모습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우리가 이웃들에게 전하겠다는 자세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하느님 부활의 은총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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