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2일 (토)
(녹)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강론자료

사순 3 주일-가해-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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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1999-03-06 ㅣ No.36

사순 제 3 주일 (가해)

        출애 17,3-7   로마 5,1-2.5-8    요한 4,5-42 (또는5-15.19b-26.39a.40-42)

     1999. 3. 7.

주제 : 물에 대한 관찰

 

한 주간 탈없이 잘 지내셨습니까?

물은 사람의 생명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람 몸의 70% 이상이 물의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없으면 산다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너무 많으면 그것을 막거나 피하지 못해서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이런 물에 대한 기억은 지난 해 8월 초순을 기억하시면 잘 아실 것입니다.  엊그제(금요일) 이른 새벽에 무지막지하게 비가 퍼부었습니다. 혹시 그 빗소리를 들으면서 지난해의 악몽을 떠올리신 분은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시간도 비슷했으니 말입니다.

 

오늘은 우리 생활에 반드시 필요하면서도 제대로 사용해야 하는 물이 우리 생활과 신앙생활에 관련된 요소를 생각해보는 날입니다.

 

오늘 출애굽기 독서는 물에 관련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비옥했고 물이 풍부했던 이집트를 벗어나 광야에 접어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으로 겪은 고통은 물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어쩌자고 우리를 에집트에서 데려내 왔느냐? 자식들과 가축들과 함께 목말라 죽게 할 작정이냐?" 그들은 노예 생활이 힘들어서 하느님을 향하여 처절하게 부르짖었던 기억은 까마득하게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부르짖기 얼마 전 그들은 홍해바다를 가로질러 건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때 홍해바다의 물은 그들에게 재앙의 근원이었다가 구원의 방패가 된 물이었습니다.

 

복음에는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 사이의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 역시 물을 소재로 해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나에게 물을 좀 주겠소?"  -- "당신은 유다인이고 저는 사마리아 여자인데 어떻게 저더러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 "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네가 나에게 달라고 했을 텐데". 소설 같은 이야기입니다.  이 자리에서 왜 이스라엘 사람들과 사마리아 사람들이 서로 대하기를 꺼려했는지 물을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더 궁금했을 제자들조차도 스승에게 그 질문하지 않은 내용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소재로 등장한 물에 대해서 공부할 것은 아니고, 성서에 우리 신앙에 등장하는 물의 역할을 한 번 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례 예절을 거행할 때, 물을 사용합니다.  물 자체가 특별한 힘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물이 갖는 상징성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이야기에서, 물은 세상을 덮어 온 세상의 죄악을 깨끗이 씻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바다를 건널 때, 물은 죽음과 생명을 구별짓는 경계선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착하려고 했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은 바로 그 물의 덕택으로 비옥한 땅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세례자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면서 물로 죄를 씻는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물이 그렇게 엄청난 힘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그런 힘을 갖게 하시는 하느님의 힘이 남다른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역할을 하는 물을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실 수 있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구약성서 1455면, 에제키엘 예언서 47장을 보면, 바로 이 성전에서 그런 역할을 하는 샘이 솟아난다고 전합니다. 그 샘에서 솟아나는 물은 생명수가 되고, 그 생명수 때문에 주변은 무성해진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을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샘은 보이지 않습니다.  바로 그러한 차이 때문에 사마리아 여인은 질문합니다.  "선생님, 우물이 이렇게 깊은데다 선생님께서는 두레박도 없으시면서 어디서 그 샘솟는 물을 떠다 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성전에서 솟는 샘, 그것은 우리의 생활로 보여야 하는 삶의 역할입니다.  도둑질 맞지 않을 자신이 있는 것이라면, 내가 가진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빛을 발하는 것이고, 그래야 좋은 삶의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끄러운 과거가 드러나긴 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마리아 여인은 동네로 들어가서 큰 소리로 자신에게 전해졌던 예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다시 사람들과 함께 예수님께로 나옵니다.  

 

어제, 토요일부터는 본당에서 예비자 교리를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사람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일과 더불어서 한 배를 타고 하느님을 향한 항해를 시작하는 사람들처럼 이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와 다짐도 필요합니다.  모세의 인도를 따라서, 갈대 바다를 건너 광야에 들어선 사람들 모두 올바른 정신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기에,  얼마의 사람들은 하느님과 모세를 향한 반항의 대열에 참가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는 지금, 하느님을 향하여 어떤 불만을 제기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그것을 올바로 구별할 수 있어야만 다시금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고, 삶의 고난에서, 절망에서 하느님의 도움으로 일어설 수도 있게 됩니다.

 

욕심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욕심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닙니다.  특히 하느님을 향하여 다가서겠다는 욕심은 권장할 만한 좋은 것입니다.  그 욕심은 우리가 올바른 길로 돌아오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게 해 줍니다.  하느님은 우리 앞에 많은 것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유의지로 그것을 선택하도록 맡겨두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행동에 대해서 책임질 수 있는 선택을 통해서 하느님이 준비하신 행복에 다가설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은 욕심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시기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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