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자] 하늘의 큰 광채에 둘러싸여 순교한 이도기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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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0-31 ㅣ No.272

하늘의 큰 광채에 둘러싸여 순교한 이도기 바오로

 

 

1797년, 충청감사 한용화(韓用和)는 공주에서 도내의 모든 수령에게, 천주교인들에게 체포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천주교를 없애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난폭한 조처로 충청도의 많은 천주교 신자가 체포되어 순교의 피를 흘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 희생된 증거자들에 대한 시록은 단 한 사람 정산일기(定山日記)의 주인공 이도기(李道起, 1743-1798년) 바오로의 것이 있을 뿐, 오직 주님만이 당신의 영광을 위해 고통 당한 사람들을 알고 계신다. 그때 순교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이도기 바오로의 행적으로 보며 그 동료 무명 순교자들을 함께 기리고자 한다.

 

충청도 청양 고을에서 태어난 이도기는 글을 많이 배우지는 못했으나, 천주사랑의 덕행을 실천에 옮긴 사람이었다. 그는 얼마 안 되는 재산을 모두 외교인을 입교시키는데 썼으며, 박해를 피해 대여섯 번씩이나 이사를 하면서도 가는 곳마다 열심한 신자들이 생기게 했다. 그렇게 옮겨다니다가 마침내 정산(定山)고을의 한 옹기촌에 자리를 잡고 장사를 하며 살게 되었는데 그 고을에서도 많은 사람들을 입교시켰다.

 

그러던 1797년 6월 8일, 갑자기 무장한 포졸들이 들이닥쳐 가택을 수색하고 집에서 일하던 그를 마을 근처 숲속으로 끌고 가 매질하였다. 그는 다른 신자들과 함께 쇠사슬에 묶인 채 관장 앞에 끌려가 심문을 받고, 읍내 저잣거리를 돌며 군중들에게 모욕을 받는 조리돌림을 당했다.

 

이도기는 공맹의 도에 젖어 편견에 찬 관장의 심문에 지극히 겸손하고도 간절한 태도로 주님의 진리를 증언하였다.

 

"너는 성현의 도를 아는 자로서 어찌 사교를 믿는단 말인가!" "저는 사교를 믿은 적이 없습니다. 제가 믿고 있는 것은 천주교인인데 천주교는 사교가 아니라 만인이 믿어야 할 참 종교입니다." "그래, 공맹의 도를 버리고 거짓을 따름이 옳단 말인가?"

 

관장이 거듭 다그치자 이도기는 간절하고도 열렬한 태도로 "저는 무식한 탓으로 선비들의 몫으로만 되어 있는 공자와 맹자의 도는 알지 못합니다. 불도는 스님들에게 관계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전해진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 몇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고 창조주와 창조질서 그리고 십계명 등 천주교의 기본 교리에 대해 차례로 설명했다.

 

관장은 빈틈없고 조리 있는 이도기의 흐르는 물 같은 논설에 속으로 크게 놀라워하면서도 따져 물었다. "너의 말에 일말의 진실이 있기는 하다마는 너는 결국 속았다. 중국에서 리마두(마태오 리치 신부)는 자신의 놀라운 지식으로 백성을 속였다. 너는 어째서 그 속임수를 보지 못하느냐!"

 

"리마두가 비록 박식하다고는 한 그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중국에서 전파한 도리는 그의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지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천지대군의 도리요, 천주님의 가르침에서 나온 진리인 것입니다. 임금님의 말도 지극히 조심하여 전하고 따라야 하거늘 하물며 이 세상 임금과는 비길 수도 없는 천주님의 말씀이야 어떠하겠습니까!" 하며 이도기는 그가 믿고 있는 리마두의 지식이 아닌 '하느님의 구원의 진리'임을 분명히 하였다.

 

관장과 포졸들은 이도기 바오로의 겸손하고도 열절한 신앙고백에 깊이 감동하여 어떻게든 이도기를 풀어주려고 하였다. 그들은 이도기가 도망가기를 은근히 바라 옥문도 잠그지 않고 한눈을 팔며, 밤사이 도망칠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날이 하얗게 밝아 포졸들이 와보니, 옥문이 절반이나 열려있었는데도 이도기는 옥중에 그대로 앉아있는 것이었다. 옥쇄장이 매우 딱하게 여겨 물었다.

 

"여보시오, 어찌 그리 물정도 눈치도 없단 말이요? 참으로 딱하시오. 보면 몰라서 그렇게 버티고 앉아 계시는 거요?" "이보오, 옥쇄장. 당신은 죄수를 지킴으로 국록을 먹는 사람이 아니요? 당신은 당신이 할 일이나 하시오. 나는 내가 옥안에 있든, 옥 밖에 있든 주님의 진리만 증거하면 그만이요."

 

옥쇄장이 더욱 안타까워하며 말하였다. "우리가 모두 당신을 동정하고 있음을 그렇게도 모르시오. 겉으로 한번만 주를 모른 척하면 될 일을 그렇게 고집을 피우시오. 고집을 피우니 우린들 어찌하겠소. 그러다가는 매맞아 죽기 꼭 알맞소." 이도기는 이 유혹을 준엄히 물리치며 답했다. "이보시오, 내가 매를 맞아 죽을 지, 굶어 죽을 지, 혹은 어떻게 죽을 지 그것은 오직 주님만이 아실 일이요, 나는 내가 어떻게 죽든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다만 기뻐할 뿐이요."

 

그는 유혹을 물리치고 모진 매를 맞으며 비참한 옥고를 치르면서도 아내에게 자신의 결연한 의지를 보이고 면회 오지 말도록 부탁하였다.

 

"앞으로 누가 당신더러 무슨 말을 내게 전해달라 하더라도, 내 마음을 흔들리게 할 성질의 것이라면 내게 전하지 마시오. 마음이 약해질지 모르니까 말이요. 그 동안 나 때문에 수고가 많았소. 이제 내일부터는 면회 오지 마시오."

 

아내는 남편의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알 수 없었으나 옥바라지해온 수고에 대한 인사말로 생각하고 다음날도 조심스레 먹을 것과 갈아입을 옷을 들고 면회를 갔다. 이도기는 아내가 계속 면회 오는 것을 보고 다시 아내를 불렀다.

 

창살을 가운데 두고 부부가 마주앉았을 때, 이도기는 옷자락을 펼쳐 살이 터져 으깨어진 참혹한 상처를 보여주며 말하였다. "부인, 보시오 나도 사람인데 어찌 이 상처가 아프지 않겠소, 내가 단지 주님만을 향해 있을 때는 이 고통을 이길 수가 있고 그러나 부인께서 오시면 내가 어찌 부인을 바라보지 않을 수 있겠소. 내가 부인을 보게 되면 사랑하는 아내를 보는 기쁨은 누리지만 이 상처의 고통은 이길 수가 없고, 그러니 면회를 오지 마시오."

 

아내는 남편이 왜 면회를 오지 말라는지 그제서야 알아듣고 면회를 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도기의 옥고는 계속되었다.

 

사형집행일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기쁨으로 가득차 창백하던 얼굴이 환한 얼굴로 바뀌었다. 그 밝은 얼굴을 보고 포졸들은 감탄하였다. 모진 매를 맞고도 그는 합장하여 기도하며, "주님께서 내 마음이 약해지지 않게 매를 쳐서 뜨겁게 채주신다"고 오히려 감사했다.

 

더 견딜 수 없는 고문으로 기진했을 때, 포졸이 마지막으로 배교를 권하며 유혹하였다. "아직도 때는 늦지 않았다. 배교하겠느냐?" 순교자는 외쳤다. "결코 할 수 없소." 그의 입술은 새카맣게 타고 생명의 입김도 겨우 붙어있는 것 같았다. 가까스로 머리를 쳐들고 하늘을 우러르던 그는 "성모 마리아여! 당신께 하례하나이다" 하고 의식을 잃고 말았다. 이러한 극한 상황이 몇 차례 거듭되는 동안 관장은 그에게 물 한 모금도 주지 않도록 엄격히 다루었다.

 

1798년 6월 12일 저녁, 이도기에게 포악한 형벌을 가하라는 관장의 명을 받고 포졸들은 어쩔 줄을 몰랐다. 심한 매질에 거룩한 순교자의 온몸으로 짓이겨지고, 정강이가 부러져 하얗게 드러난 뼈에서는 골수가 흘러 땅을 적셨다. 손바닥을 제외한 몸 전체 어느 한 곳도 성한 데 없이 상처투성이이던 증거자는 이윽고 갈비뼈가 부러지고 그곳에서 피와 물이 흘러내리면서 숨을 거두었다.

 

남편의 면회를 눈물로 참았던 부인은 포졸의 전갈로 남편의 죽음을 알고 통절히 울었다. 그때 옥쇄장이 부인을 위로하여 말하였다. "부인, 너무 슬퍼하지 마시오! 당신 남편이 죽던 열 이튿날 밤에 하늘에서 큰 광채가 비추어 당신 남편의 시체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내가 보았소."

 

[경향잡지, 1997년 11월호, 김길수(대구가톨릭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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