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토)
(홍)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강론자료

2015-0503....부활 제5주일 나해

스크랩 인쇄

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5-02 ㅣ No.1767

부활 제5주일 (나해)

사도 9,26-31           1요한 3,18-24        요한 15,1-8

2015. 5. 3. 이태원

주제 : 우리 생명의 근원

세상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모든 생명체는 그 근원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거창하게 말할 내용은 아닙니다만, 눈에 보이는 목숨을 드러내거나 그 모습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하는 다른 요소가 있다는 소리로 해석하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삶의 요소는 물이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모든 식물이나 움직이는 동물에게 물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입니다. 2500년 전에 살았다고 하는 탈레스라는 고대희랍의 철학자는 물이 만물의 근원이라는 소리를 했다고 합니다만, 이런 철학의 내용을 달리 생각할 현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말하든 실제 생활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면 판단은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 목숨을 최고라고 여기는 세상에서 물에 대한 중요성은 대상을 떠나서 중요한 요소일 것입니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대하는 자세와 내가 대하는 자세가 다르다고 말하는 순간, 자칫 잘못하면 나는 물을 중요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이상한 존재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중심으로 말하는 세상에서는 서로 다른 소리를 하면 이상한 취급을 받을 수 있지만,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세상과 그 기원에 대한 얘기까지 범위를 넓히면, 중요하게 여길 요소는 바뀔 수도 있고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물이라는 객체로 오늘의 얘기를 시작했습니다만, 5월의 첫 번째 주일은 교회공동체에서 생명주일로 기억하는 날입니다. 누구나 다 아는 소리입니다만, ‘생명의 반대쪽에 있는 것은 죽음입니다. 전례에서도 생명을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들의 삶을 감싸고 있는 죽음의 요소를 걷어내고, 죽음의 요소 때문에 달라질 수도 있는 우리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바꾸자는 것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생명체에 생명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의 삶에서는 생명을 중요하게 여겨서 하는 행동의 반향(反響)이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 목소리를 드러내고 싶은 사람은 죽음이라는 방법을 이용합니다. 지난 4월 하순의 어느 날에 어느 기업의 회장이라는 사람이 선택한 방법도 그런 것이었고, 우리가 펼침막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결사(決死) 반대라는 표현도 그러한 일들의 하나일 것입니다

 

복음에서 들은 포도라는 결실은 나뭇가지의 끝에 달립니다. 어느 날 포도라는 결실이 자기 끝에 달린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된 가지가, 내가 없으면 포도라는 결실을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니, 포도나무에게서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해서, ‘오늘부터 포도나무는 나에게 필요하지 않아(!)하고 외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자연의 생명체에 반드시 필요한 물이라는 것도 땅속에서부터 뿌리와 나무라는 부분을 통해서 가지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그 가지의 끝에는 결실이 달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이지만, 세상에 생기는 문제들은 이러한 자연의 순리를 왜곡하거나 그 중요성을 순서에 따라서가 아니라 반대로 보려고 할 때 생깁니다. 이러한 자연의 순리를 반대로 생각하여, 열매가 물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다음에 가지를 통하여 나무나 뿌리에게 전달할 수 있는 물이 도움이 된다고 우길 때, 세상에 있는 생명체의 삶에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생깁니다.


지금까지는 자연의 순리대로 대해야한다는 뜻에서 말을 했습니다만, 이러한 자연의 사물을 떠나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들과 하느님에 대한 것으로 그 관계를 넓히면 해석은 어떻게 달라지겠습니까? 열매를 맺는데 꼭 있어야 한다고 말할 가지가 그 관계를 잘못되게 해석하면 그가 갈 곳은 나무와 뿌리를 떠나서 잘린 가지가 되고 땅에 떨어져 마르게 되는 것이 운명이고 결국에 그가 갈 곳은 불속이라는 것이 대단히 서글픈 현실입니다.


신앙인의 삶을 온전히 세상의 차원에서만 해석하면 안 됩니다. 사람이 굳이 그렇게 해야겠다고 우기고 그렇게 한다면 못할 일도 없지만, 신앙인이 자기의 존재의미를 찾는 것은 세상의 차원을 벗어나 각자의 삶을 하느님과 관련해서 해석할 때에 올바른 자세가 가능해집니다.


사울이라고 불렸던 바오로사도도 예루살렘교회공동체에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는 일에, 바르나바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사람이 혼자서도 목숨을 유지하거나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그들의 삶이 변화를 통해서 좋은 결실을 맺게 하려면 반드시 공동체와 관련을 맺어야 하고, 공동체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대 그리스, 희랍철학에서는 사람이 사는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를 , , 공기, 4가지 요소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신앙에서는 그 모든 요소가 생긴 것은 하느님의 창조로 가능한 일이니,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은 하느님과 인간사이의 사랑, 사람과 사람사이의 사랑을 가장 큰 구성요소로 생각합니다

 

농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포도나무와 가지 사이의 관계도 사랑이 아니라면, 각자는 자신을 통한 삶의 결실을 세상에 내놓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생명의 근원이라고 말할 참된 사랑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우리의 생명을 통해서 세상에 드러나고, 그 세상이 좋게 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찾을 시간입니다.




699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