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토)
(홍)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강론자료

2015-0419.....부활 제3주일 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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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4-18 ㅣ No.1755

부활 제3주일 (나해)

사도 3,13-15.17-19 1요한 2,1-5루카 24,35-48

2015. 4. 19. 이태원

주제 : 내가 믿고 따르는 부활을 드러내기

사람의 삶에 먹는 일은 중요하게 생각할 일입니다. 과장이 담긴 표현으로 하면, 사람은 먹기 위해서 사는 존재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이 전적으로 옳으려면, 모든 사람에게 빠짐없이 적용되어야 하는 이야기이겠지만, 현실세상을 돌아보면 모두가 같은 환경은 아닌 것이 보이니, 제가 일반적으로 하는 얘기에 여러분이 얼마나 공감하겠습니까?


오늘은 부활3주일입니다. 부활대축일축제를 거행한 뒤, 꼬박2주간, 14일이 지나고 맞이하는 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세상살이에 먹는 일의 본보기를 보이시면서, 당신이 참으로 부활하셨음을 알려주십니다. 그러나 그렇게 먹는 일을 통해서 특별한 일을 깨닫는 것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나 가능한 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 눈앞에서 먹는 모습을 보이고, 내가 그렇게 먹는 모습을 본다고 해도 그것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모습이라고 인정하지 않겠다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부활을 설명할 방법은 또 다른 것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흔히 사람에게는 3가지 기본적인 욕망이 있다고 말합니다. 육체에 쌓인 피곤을 푸는 수면욕심, 내 후손을 생각하는 성욕, 그리고 개인의 목숨을 유지하는 것으로 오늘 복음에도 등장하는 먹는 일에 관련된 욕심이 그 3가지입니다. 3가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만사의 근원이 될 먹는 일에 관련된 것이 으뜸입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내 미래가 찬란할 거라고 예고하는 소리를 들어도 이루어질 수는 없는 일입니다.


오늘 복음의 배경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저녁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몇몇 여인들과 사도들이 전하는 소리를 믿을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며, 자기들이 처음부터 살던 <고향 엠마오>로 간 제자2명이 예수님과 <함께 했던 저녁식사>때문에 예루살렘으로 서둘러 돌아왔고, 그날 저녁에 일어난 사건으로 전하는 내용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삶에 일어난 친숙한 사건을 통해서 특별한 의미를 깨닫는 때가 있습니다. 눈으로 보는 모습을 통해서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도, 귀로 듣는 소리로 아주 오래된 일을 떠올리는 일이 있기는 합니다만, 오늘 복음이 전하는 먹는 일을 통해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확실히 믿고 깨달았다는 얘기가 없는 것이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니,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듣는 우리는 현실의 삶에서 어떤 방법으로 부활에 대한 믿음을 갖겠습니까?


부활을 받아들이는 삶은 오늘부터는 내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으로 살겠소(!!)’라는 선언으로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개인에게는 놀라운 선언이 될 수는 있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부활의 참 모습은 그 말로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첫 번째로 들은 사도행전 독서를 통해서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성령강림이라는 놀라운 사건이 있은 다음, 그 놀라운 소리에 모여든 사람들을 향하여, 베드로사도는 자기 목숨을 내놓아야 할 수도 있는 놀라운 소리를 선언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회개할 것을 요구하고 선포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부활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몸으로 드러내는 회개로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회개란 무엇이겠습니까?


회개(悔改)라는 말을 잘못을 뉘우치고 바로잡음이라는 아주 편한 소리로 우리말사전은 해설하고 있지만, 신앙에서 말하는 회개라는 말의 뜻은 그 차원을 넘는 것이고, 우리가 달리 생각해야하는 좀 더 심오한 차원의 행동을 가리킵니다. 세상의 설명처럼, 잘못을 먼저 하고 난 다음에 돌아선다는 의미도 포함할 수 있지만, 올바른 의미의 회개는 내가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고 실천하는 일을 등지고 멀어지던 삶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180(=) 방향을 바꿔 다시 돌아서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내가 하느님을 향해서 다시 돌아서는 모습을 보여야만, 그게 현실에서 내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으로 드러난다는 얘기는 결코 쉽지는 않은 일입니다.


세상에서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일까요? 말은 간단하지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쉬운 일이고, 쉽다고 해줘야 세상의 사람들이 그래도 따라 살만하다고 말할 테지만, 그 일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신앙인으로 산다고 선언해도, 그 가운데서 참된 신앙인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느님을 향해서 돌아서면 하느님은 내 삶에서 죄를 없애주실 것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 내 삶에서 내 죄를 없애주시면, 그때에 하느님께로 충실하게 돌아서겠다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의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고, 선후과정이 있는 법입니다. 이렇게 쉽지 않은 일을 우리가 얼마나 가까이하고 제대로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을 피부로 느끼게 될 것입니다

 

삶에서 우리가 털어내야 할 죄와 관련하여 사도요한은 계명의 관계를 덧붙여 해설합니다. 계명(誡命)은 우리가 하느님께 다가서는데 우리의 발목을 잡는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완성하는 방법이라고 말입니다. 역시 듣기에 부담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생각을 담아,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사람도 할 말은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만드시고 그 세상이 당신의 뜻을 따라 올바른 길로 가기를 원하시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기준으로 하는 일이지, 사람의 생각과 뜻을 기준으로 하는 일은 아닙니다. 우리가 갖는 마음자세, 계명이라는 낱말을 대할 때 우리가 갖는 자세가 올바른 것이 될 수도 있도록, 마음과 생각을 바르게 가져야 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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