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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앙 유산: 5월의 어머니, 마리아 - 성모성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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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6-30 ㅣ No.324

[신앙 유산] 5월의 어머니, 마리아 : 성모 성월

 

 

머리글

 

가톨릭 교회의 아름다운 전통 가운데 하나로는 “성인들의 통공”(Communio Sanctorum)에 관한 믿음을 들 수 있다. 이는 교회를 구성하는 모든 이들이 기도와 희생과 선행으로 서로 도와줄 수 있게 결합되어 있는 현상을 말한다. 즉 교회는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천국에서 영광을 누리고 있는 이들 그리고 연옥에서 단련을 받고 있는 이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 상호간에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성인들의 통공’이 있음을 실증하는 것이다.

 

교회의 구성은 죽은 이나 산 이가 모두 한 살림을 이루는 데에 있다. 그러기에 교회는 살아 있는 신도들에게 성인들을 공경하고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가르쳐 왔다. 한 살림을 이루는 식구들은 서로 도와야 하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신도들은 성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성인들의 전구를 통해 자신이 바라는 바를 하느님께 전달할 수 있다.  성인들의 전구는 신도들의 살림을 더욱 활기차게 살려 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에서는 “성인들의 통공”에 입각해서 성모 마리아께 대한 각별한 공경의 마음을 가져왔고, 마리아께 특별한 전구를 기원하가도 했다. 성모 마리아께 대한 공경은 한 살림 안에서 이루어지는 어머니에 대한 기대와 공경처럼 간절하고 깍듯한 것이었다. 이 소망과 공경의 마음들이 모여 성모 마리아께 대한 신심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그리고 마리아 신심은 아름다운 계절 5월을 ‘성모님의 달’[聖母聖月]로 받들게 했다. 우리 신도들도 이때가 되면 ‘성모 성월’의 가르침에 따라 성모 마리아를 향한 도타운 신뢰를 드러내 왔다.

 

 

교회의 마리아 신심

 

교회는 전통적으로, 마리아를 평생 동정녀요 ‘하느님의 어머니”로 여겨왔다. 마리아는 은총이 충만한 분이며,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생명의 원천인 그리스도를 낳았고, 마침내 세상에 구원과 축복을 가져왔다. 또한 성모 마리아는 신도들의 선앙 생활에 있어서 중개자요 전구자(轉求者)이며 영적(靈的) 어머니로 받들어져 왔었다.

 

인류의 구원사에 있어서 마리아의 위치는 매우 높게 평가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마리아 공경은 교부들의 시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5세기 초엽 교회에서는 “하와(Eve)를 통해 죽음이, 마리아를 통해 생명이” 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는 마리아가 평생 동정이었으며 “하느님의 어머님”임을 재확인하고 선언했다. 그 후에도 마리아께 대한 공경은 지속되어 왔고, 중세의 절정기에는 성인 공경의 일환으로 마리아 공경이 성행하게 되었다.

 

교회에서 마리아 공경이 본격적으로 강화되기 시작한 때는 16세기 후반기로 볼 수 있다. 이때 교회에서는 종교개혁(1517년) 과정에서 제기된 마리아 공경 등에 관한 문제들을 검토했다. 그리고 마리아 공경의 정당성이 거듭 확인되어 성모 신심이 장려될 수 있었다. 성모 신심은 기도문의 새로운 승인이나 축일의 제정 등을 통해 확인된다.

 

즉 교황 비오 5세는 ‘성모송’을 “성무 일도”에 삽입시켜 성모송이 널리 보급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1568년). ‘성모송’은 15세기에 완성된 것이었으므로, 당시로서는 비교적 새로운 기도문이었다. 교황 비오 5세는 1569년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봉송되던 ‘묵주의 기도’를 표준화하여 이를 보급했다. 그리고 1571년 레판토 해전에서 이슬람 세력을 그리스도교 국가들이 물리치게 되자 ‘로사리오의 축일’을 새롭게 선포하고 성모님의 전구에 감사했다.

 

한편, 교황 식스토 5세는 일부 지역에서 봉송되던 ‘성모 호칭 기도’를 1587년 공식으로 인가했다. 이렇듯 16세기 후반기에 이르러 불붙기 시작한 성모 신심은 20세기에 이르기까지 가톨릭 교회의 특징적인 신심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조선에 전래된 성모 신심

 

16세기 후반기 유럽에서 성행하던 성모 신심은 17세기 초엽 이래 중국에 진출한 유럽인 선교사에 의해 중국 교회에 전파되었다. 즉 17세기 초 롱고바르디(Longobardi, 龍華民, l559~1654년) 신부는 ‘성모 호칭 기도’를 중국어로 번역했고, 바뇨니(Vagnoni, 高一志, 1566~1640년) 신부는 “성모행실”(聖母行實)을 지어 광주(廣州)에서 간행했다. 그리고 “성교요지”(聖敎要旨)를 지은 바 있는 부글리오(Buglio, 利類思) 신부는 북경에서 1676년에 “성모소일과”(聖母小日課)를 간행했고, 수아레즈(Suarez, 蘇霖?) 신부는 “성모영보회”(聖母領報會)를 1694년에 간행하여 성모 신심을 드높이고자 했다. 이와 같이 유럽인 선교사들이 중국에 전파한 성모 신심은 당시 유럽 교회에서 성행하고 있던 최신의 신심이었다.

 

중국에 전파된 성모 신심은 한문서학서의 전래를 통해 l8세기의 조선에 전파되었다. 그리하여 1801년 조선 정부 당국에서 천주교를 탄압할 때 압수했던 천주교 물건 가운데에는 “성부 마리아”(聖婦 Maria)나 “성모매괴경”과 같은 책자와 많은 묵주들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김대건 신부 등 많은 조선인 신도들의 행적에서도 성모 신심의 내음이 아직도 풍기고 있다.

 

조선에 나온 프랑스 선교사들도 마리아께 대한 특별한 신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기에 조선교구 제2대 교구장 앵베르(Imbert, 泡世亨) 주교는 조선교구의 새로운 주보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를 모시고자 했다. 그의 이 청원은 1841년 8월 22일 교황 그레고리오 16세의 승인을 받았다. 또한 1846년 11월 2일에는 충남 공주의 수리치골에서 ‘성모 성심회’를 창설했고, 1861년 10월 조선교구 제4대 교구장인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는 조선교구 안에 있는 여러 선교사들의 담당 구역을 성모 마리아께 대한 특정 신심을 나타내는 명칭으로 정하여 마리아의 특별한 보호를 간구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당시 세계의 교회에서 공유하고 있던 마리아 신심을 조선 교회에서도 받아들였다.

 

 

“성모 성월”의 번역과 간행

 

조선인들은 모성적 존재에 대한 풍부한 감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정서적 배경 아래서 조선인들은 마리아 공경의 의미를 누구보다도 정확히 이해했다. 따라서 성모 신심은 조선인들에 의해 이 땅에서 자신의 고유한 신심으로 재창조되어 갔다. 이 과정에서 성모 신심을 더욱 고양시킬 수 있는 방법이 모색되었고, 이를 위해 중국 교회의 “성모 성월”이 우리말로 번역 간행되기에 이르렀다.

 

“성모 성월”은 중국에서 선교하던 예수회 선교사 이탁(李鐸)이 성모 신심을 드높이기 위하여 저술한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을 북경 교구장 몰리(Mouly, 孟振生) 주교가 좀더 보완하여 1859년에 간행했다. 이때 간행된 책자를 리델(Ridel, 李福明) 주교가 1877년 조선에 재입국할 때 가지고 들어왔다.

 

이 “성모 성월”을 로베르(Robert, 金保錄) 신부가 한글로 번역하여 블랑(Blanc, 白圭三) 주교의 감준을 받아 1887년 서울에서 간행하였다(鉛印本, 13.5x27.5cm). 그 이후 이 책은 판을 거듭하면서 조선인 신도들의 신심을 드높여 주었다.

 

한글본 “성모 성월”의 책 머리에는 이 책에 대한 해설과 함께 1822년 교황 비오 7세가 공포한 ‘성모 성월’과 성모 공경에 따르는 대사문(大赦文)이 실려 있다. 본문에서는 성모 성월이 시작되기 하루 전부터 5월 31일까지 모두 32일에 걸쳐 성모의 덕행과 행실에 대한 묵상 자료를 제시하며, 성모 마리아의 모범을 따라 신도들이 실천해야 할 덕행들을 가르쳐 주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성모께 대한 찬미와 청원의 기도 및 외교인 귀화를 위한 기도 중 하나를 택하여 바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 책의 간행을 통해 우리 교회는 해마다 5월이면 ‘성모 성월’을 뜻깊게 기념하며 기도드릴 수 있게 되었다. 이 기도의 연장선 위에서 1898년에는 서울 종현의 마루터기에 조선교구의 주교좌 성당이 우람하게 설 수 있었다. 이 성당은 조선교구의 주보인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께 봉헌되었다. 그리고 오늘의 교회에서도 성모 신심을 통해 교회를 쇄신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레지오 마리애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성모 신심 단체가 활동하게 되었다.

 

 

맺음말

 

“성모 성월”의 간행은 우리 교회에 성모 신심을 특별히 강조하고 실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성모 마리아는 늦은 봄 5월의 따사로운 햇볕과 같은 어머니이다. 이 5월의 어머니 마리아께 대한 공경은 오늘에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리하여 5월 어느 날이면 거의 모든 본당에서 어머니 마리아를 그리는 ‘성모의 밤’이 성대하게 열린다.

 

한편, 이 책은 우리 겨레와 신도들에게 새로운 문화에 대한 이해에 도움을 주었으며, 우리 정신의 깊이와 넓이를 더하는 데에 기여해 주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성모님의 광대 수사”나 “테오필의 기적”과 같은 예화들은 프랑스의 고전 문학을 옮긴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프랑스 문학에 처음으로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 신도들은 성모께 대한 신심을 통해 구원사의 전개 과정과 신도들의 책무를 확인하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다. 바로 여기에 이 땅의 성모 신심과 “성모 성월” 간행이 갖는 참다운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된다.

 

[경향잡지, 1992년 5월호, 조광 이냐시오(고려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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