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7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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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최해성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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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11-23 ㅣ No.1406

[124위 시복 특집] 최해성 요한(1811년-1839년)


“천국에 갑니다!”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의 먼 친척인 최해성 요한은 강원도 원주에서 작은 교우촌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그는 비록 가난했지만 제 영혼을 보살피는 일에 힘쓰는 한편, 저보다 더 가난한 사람에게 애긍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천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일깨움으로써 교우들의 신앙을 굳게 했습니다. 이런 덕행 때문에 그는 마을의 회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견진성사를 받은 최해성은 성령의 특은을 충만히 받아 순교에 대한 원의로 가득 찼습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최해성은 먼저 부모와 가족들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고, 교회 서적을 가지러 다시 집에 갔다가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힘이 장사였으므로 그를 체포하기 위해 쇠도리깨로 무장한 군사들이 몰려왔는데, 이들이 그에게 일제히 매질을 하며 “교우들이 있는 곳을 대라.”고 강요하였습니다. 그러나 최해성은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저항하지 않고 결박당한 채로 원주 진영에 압송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달콤한 말로 배교를 권하는 관장에게 최해성이 말했습니다. “원주 고을을 통째로 주신다 해도 거짓말을 할 수 없고, 우리 천주를 배반할 수도 없습니다.” 관장이 “꼭 죽을 생각이란 말이냐?” 하고 묻자 최해성은 “죽기를 무서워하고 살기를 원하는 것은 모두의 공통된 감정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의를 위하여 죽기를 거부하겠습니까?”라고 답했습니다. 다시 “만일 이렇게 죽으면 대관절 어디로 가게 된단 말이냐?” 하고 묻자 “천국에 갑니다!” 하였습니다.

이리하여 혹독한 고문을 받아 참혹한 몸 상태에 이르렀지만 최해성은 불평하지 않고 오직 예수 마리아의 도움만을 빌었습니다. 이후 여러 주간에 걸쳐 2~3일에 한번 꼴로 악랄한 고문에 시달리던 어느 날, 관장이 다시 최해성을 불러 회유했습니다. 최해성은 다음과 같은 말로 신앙을 증거했습니다. “제가 지금 얼마 안 되는 시간의 목숨을 보존하려 한다면 제 영혼이 영원히 죽을 것이므로 배교할 수 없습니다. 임금과 의를 위해 죽겠다고 약속하고 나서 배반하는 백성이 있다면 그는 반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늘과 땅의 위대한 천주를 섬기겠다고 맹세한 제가 어찌 형벌을 두려워하여 배반할 수 있겠습니까?” 관장은 화가 치밀어 한층 혹독한 형벌을 주문했습니다.

이 무렵 하느님께서는 당신 일꾼의 영혼을 한층 더 깨끗하게 하시려고 최해성이 심한 실망의 유혹을 당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최해성은 마음이 불안한 가운데서도 우리 주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렸고, 거기서 쇠약해진 마음을 다스릴 힘을 얻었습니다. 최해성은 오래지 않아 기쁨과 평화를 회복하였고 마침내 1839년 9월 6일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는데, 당시 그의 나이 28세였습니다.

서울대교구 홍보국 엮음 | 그림 박지훈, 124위 약전 ⓒ CBCK /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순교영성연구소


[2014년 11월 23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성서 주간) 서울주보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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