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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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이스라엘: 고대 도시 시브타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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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8-19 ㅣ No.1046

고대 도시 시브타를 아십니까?

1600여 년 전 사막 한복판 번창했던 그리스도교 도시


시브타 남쪽 성당 터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 사막 한복판. 이집트 국경과 맞닿은 성경의 지역 카데스 바르네아(민수 32,8)에서 30km 남짓 떨어진 곳. 지금은 폐허로 변한 고대 도시 시브타(Shivta)다. 200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시브타는 독특한 지형으로 이뤄져 있다. 사막 한복판의 도시라면 으레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형성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브타에는 오아시스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오아시스는커녕 작은 우물조차 없다. 그런데도 2000명의 주민이 살았고 수백 년 동안 번성했던 도시였다. 사람들은 커다란 물저장고를 만들어 우기에 내리는 빗물을 받아서 사용했다. 놀라운 지혜다.
 
시브타가 언제 어떻게 도시로 형성됐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나바테아인들이 남긴 유물에 남아있는 기록에 따르면, 로마제국 시대인 기원 전 1세기부터 기원 후 1세기 사이에 나바테아인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나바테아인들은 고대 아라비아 종족으로 대상 무역을 통해 세력을 키운 민족이다. 오늘날 세계적 관광지로 꼽히는 요르단 땅 페트라가 한때 나바테아 왕국의 수도였다.
 
나바테아인들이 시브타에 정착한 것은 이곳이 대상들이 낙타를 이용해 향(香)을 운송하던 동서 무역 통로(香路)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작은 유목민 촌이었던 시브타는 4세기 이후 그리스도교가 유입되면서 새롭게 변모한다. 나바테아인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면서 이전 유목 생활에서 농경 생활로 바뀌게 된 것이다. 작은 마을은 주민이 2000명이 넘는 도시로 번창했고, 성인들의 유해를 모신 성당들도 세워졌다. 주민들은 주로 농업에 종사하면서, 성인 유해를 참배하러 온 순례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관광업으로도 생업을 꾸려 갔다.
 
시브타 유적지에는 대형 물저장고가 두 곳 있다. 하나는 완전히 발굴이 끝났고, 다른 하나는 아직도 흙으로 덮여 있는데, 물저장고 크기가 2035입방미터에 이른다. 그뿐 아니라 곳곳이 수로로 연결돼 있다. 시브타 주민들은 대형 물저장고 두곳을 비롯해 저수조 혹은 수로를 만들어 우기 때 내리는 빗물을 받아 저장했다가 식수와 용수로 활용했다.

시브타에서는 대형 물저장고 외에도 도시 모습과 주민들의 생활상을 가늠하게 해주는 자취들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을 남쪽과 북쪽 두 곳에 바실리카식 성당 터가 있고, 마을 중앙에도 작은 성당 터가 남아 있다. 남쪽 성당에서는 이슬람이 정복한 후에 성당을 개조해 모스크로 사용한 흔적도 볼 수 있다. 또 아래층은 말이나 낙타를 두는 대형 마굿간으로 사용하고 이층은 사람들의 거처 공간으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큰 건물터를 비롯해 포도즙을 짜고 포도주를 만드는 데 사용했을 대형 포도확 자리도 남아 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광활한 광야뿐인 사막 한복판에 이렇게 큰 마을이 수백 년 동안이나 존속할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이렇게 번창했던 시브타는 이슬람에게 정복당한 후 서서히 쇠퇴해 9세기에 와서는 완전히 버려진 마을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와 시브타 발굴작업이 이뤄지면서 9만㎡에 이르는 옛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고, 이제는 이스라엘 국립공원으로, 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평화신문, 2012년 8월 19일,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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