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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이스라엘6: 주님의 탄생 예고와 성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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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7-01 ㅣ No.1038

[이스라엘 성지 길라잡이] 주님의 탄생 예고와 성가정


- 헤로데가 보수한 2차 성전의 모형.


엘리야 시대를 지나 기원전 8세기에 북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하고, 남 유다는 예레미야가 선포한 것과 같이 기원전 6세기 초 바빌론(아시리아를 제패)에 의해 패망한다. 그와 함께 솔로몬이 봉헌한 하느님의 성전이 허망하게 무너지면서 바빌론 유수가 시작되었고,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가 바빌론을 정복했을 때에야 유다인들은 비로소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다.

이스라엘로 귀환한 유다인들은 즈루빠벨의 주도로 하느님의 2차 성전을 재봉헌했고, 초라하게 지어졌던 2차 성전을 보수 공사하여 눈부시게 바꾼 사람은, 기원전 1세기 로마 시대 유다의 영주로서 베들레헴의 사내 아기들을 죽이려 했던 헤로데였다. 그리고 예수님이 활동하신 성전도 바로 헤로데의 성전이었다(위의 사진 참조).

예수님은 나자렛 사람이다. 탄생 장소는 베들레헴이지만, 성모님은 나자렛에서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받았고 예수님이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고향도 나자렛이다. 그래서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나자렛 사람”이라 불렀고, 히브리어로 ‘노쯔리’라 한다. 지금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노쯔리’라 하기 때문에 우리의 정신적인 고향은 항상 나자렛을 향한다.

그리고 나자렛에는 성모님이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계시를 들었던 집터인 ‘주님의 탄생 예고 성당’이 있다.

마태오 1장 18-25절에 따르면 요셉에게도 마리아의 수태가 계시되었고, 나중에 마리아가 요셉의 집으로 들어가 함께 살았기 때문에 성모님 집터 맞은편 요셉의 집은 ‘성가정 성당’이라 부른다. 두 장소가 워낙 가깝기 때문에 두 분이 어떻게 정혼한 사이가 되었는지 한눈에 이해될 정도인데, 아마도 동네 처녀 총각이었을 듯하다.

지금도 중동(특히 아랍 지역)에는 조혼 풍습이 있어서 어린 나이에 시집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이스라엘에서 인연을 맺은 유다인 할머니도 만 15세 때 자식을 낳았고, 나이 많은 남편을 일찍 여의어 오랫동안 과부로 살았다.

아마 성모님의 경우도 비슷했을 듯하다. 특히 처녀의 몸으로 예수님을 잉태한 성모님은 보수적인 이스라엘 사회에서 돌에 맞아 죽어도 마땅한 중죄인이 되었고, 고작 100명 남짓 살았던 나자렛 시골에서 처녀의 잉태 소식은 금세 동네를 한 바퀴 돌았을 것이다.

위기에 처한 마리아는 동병상련의 사건을 겪은 엘리사벳을 방문하려고 유다 산골까지 100킬로미터 정도 길을 떠났고, 사나흘은 족히 걸리는 워낙 험하고 긴 여정이었기 때문에 요셉이 동행했을 것이라 추정하기도 한다.

성모님이 엘리사벳을 찾아보신 집터를 ‘성모님 방문 성당’이라 부르는데, 이곳에서 성모님은 유명한 ‘성모찬송(마니피캇)’을 불렀다.

요셉은 비록 친자는 아니었지만 예수님을 아들처럼 길렀다. 아이를 낳은 뒤 베들레헴에 머무는 동안에는 헤로데의 위협을 피해 이집트로 함께 피신하였고, 이스라엘에 돌아온 뒤에는 나자렛에 가정을 꾸렸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어머니가 딸을, 아버지가 아들을 교육했던 풍습을 생각해 볼 때 어린 예수님에게 요셉 성인의 영향은 지대했을 듯하다. 당시 요셉의 직업은 목수였고, 그리스 원전을 보면 τ?κτων(tekton)으로서 ‘목수’, ‘석공’의 뜻을 모두 내포한다.

이스라엘은 돌이 매우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요셉은 아마 돌도 만질 줄 아는 ‘집 짓는 기술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았을 요셉은 예수님이 활동하시던 당시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듯하다. 마태오 12장 46-50절, 마르코 3장 31-35절에는 어머니와 형제들만 언급되고 요셉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성경에 적혀있지는 않지만, 돌아가신 곳도 나자렛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예수님과 성모님 품에서 임종하셨을 요셉 성인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죽음을 맞으신 분이었을 것이고, 그래서 요셉은 지금까지도 ‘임종의 수호성인’이다.

나자렛에 가면 하느님께 순종했던 성모님에 대한 생각과 더불어, 양부로서 자신이 낳지 않은 아이를 끝까지 책임진 요셉의 모습을 묵상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을 품어 안을 줄 알았던 요셉의 성품 때문에 하느님의 선택을 받았고, 오랜 인고를 필요로 하는 ‘성가정’을 이룰 수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입양아에 대해 편견이 많은 우리 사회에서 요셉의 일생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성서적 지표를 보여주는 듯하다. 친부보다 더 친부 같았던 요셉을 통해서, 소년 · 소녀 가장이건 고아이건 모든 아이가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그분의 자녀임을 깨닫는다면, 요셉 성인의 모범뿐 아니라 선조로부터 이어받은 ‘홍익인간’의 민족정신 또한 완벽하게 승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김명숙 소피아 - 부산교구 우정본당 신자로 이스라엘에서 성지순례 안내자로 일하며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 석사를 마치고, 박사학위 취득을 앞두고 있다.


 

[경향잡지, 2012년 6월호, 글 · 사진 김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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