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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구속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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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3-05 ㅣ No.100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구속주회 (상)

 

 

로마에서 열린 세미나에 총장신부와 한국회원들을 비롯한 세계 각국회원들이 참석해 일치와 화합을 다졌다.

 

 

1732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성 알폰소 리구오리(St. Alphonsus Maria de Liguori, 1696~1737)에 의해 창설된 구속주회(Redemptorist)는 하느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영성적으로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고유 카리스마다.

 

영어의 'Redemption'을 뜻하는 '구속'(救贖)의 의미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국가간 전쟁으로 잡혀간 포로를 왕이 대가를 지불하고 찾아오는 행위를 가리킨다.

 

즉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와 사랑을 함축하는 단어로써 사도 바오로는 그의 서간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이뤄진 구원 사건을 표현하는데 사용했다. 구세주라는 단순한 표현을 넘어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 자신의 생명과 우리 인간의 비참한 상태와 교환하신 사랑의 깊음과 처절함의 의미였다. 

 

예수는 성부의 뜻을 따라 사랑을 살고 이를 완성하신 구속자(救贖者, Redeemer)라 할 수 있는데 구속주회는 바로 그렇게 구속자로 사셨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성모님을 공경하며 그분이 행한 구속 사업을 수행하는데 최선의 삶을 추구한다.

 

알폰소 리구오리 성인은 구속주회 창설 뿐만 아니라 민법 교회법 학위를 지닌 법률가, 현대 윤리 신학의 창설자였으며 또 유명한 설교가로서 91년 생애동안 110권의 책을 펴낸 저술가다.

 

1696년 나폴리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인은 당시에 받을 수 있을 수 있는 최상의 교육을 받으며 16세 나이에 민법 교회법 박사학위를 취득할 만큼 뛰어남을 보였다. 

 

법률가로 활동하던 중 병원 자원봉사를 하며 "세상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1726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열성적인 사제의 삶을 살게된다.

 

그가 수도회 설립을 위한 또 한번의 부르심을 받은 것은 도시 외곽 지역에서 양치는 가난한 농부들을 만나서 였다. 당시 나폴리에는 신자 100명당 사제수가 1명일 만큼 많은 수의 사제가 있었음에도 이들은 복음 선포에서 철저하게 소외돼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충격을 받은 알폰소 신부는 '가장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위해 사제들과 수사들의 모임을 조직, 1732년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 선교 수도회'를 창립한다.

 

성인의 성소는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이들과 함께 하는 가운데 이루어졌다는 특징을 보인다. 그는 도시의 편안함을 떠나 스칼라 산 위에 수도원을 세웠고 수많은 저술들은 기본 교육을 받은 이들이면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쉬운 언어로 저술됐다. 그는 두려움과 공포의 하느님 감시자로서의 하느님관을 불러 일으킨 얀세니즘과 경건주의를 거슬러 하느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소개했으며, 구원의 위대한 의미로서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신자들에게는 단순한 양식으로 기도하는 법을 가르친 '기도의 박사'였다.

 

수도회 설립후 1762년 주교로 선출된 알폰소 신부는 1787년 세상을 떠났으며 1839년 시성됐고 1871년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교회의 박사로, 또한 1950년에는 고해신부와 윤리신학자들의 수호 성인으로 선포됐다.

 

교황 비오 9세는 1866년 특별히 구속주회에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께 대한 신심을 전파할 것을 맡기셨는데 그런 배경으로 회원들은 전 세계 70여개국에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께 드리는 9일 기도'를 통해 성모님께 기도할 것을 설교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04년 12월 12일, 이주연 기자]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구속주회 (하)

 

 

구속주회는 세계 각처에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 마리아 신심을 전하고 있으며 기존 신자들의 재교육에도 힘을 쏟고 있다. 사진은 구속주회 서원식 장면.

 

 

설립자 알폰소 성인은 수도회 창립 초창기의 어려움을 공동체가 거룩한 동정녀 마리아의 보호하에 있는 믿음으로 극복했다. 

 

그는 또한 보다 널리 구속주회의 이념이 퍼져갈 수 있도록 힘썼고 그러한 의지와 사도 성 클레멘스 홉바우어 등 회원들 노력에 의해 공동체는 유럽으로 확산됐고 다시 미국 및 다른 대륙으로 전해졌다. 

 

특히 1866년 교황 비오 9세가 구속주회에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께 대한 신심 전파를 맡긴 것을 계기로 구속주회 회원들은 세계 각처에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 마리아 신심을 전하는 특별함을 보이고 있다. 

 

"본 회의 목적은 '주님께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나를 보내셨다'고 예수께서 선언하신 것 처럼 가난한 이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함으로써 구속주이신 그리스도를 모범으로 따르는데 있다"(회헌 1항). 

 

회헌에서 처럼 이들이 사도직 활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는 것은 '창립자 정신에 따라 가난하고 버림받고 소외된 이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한다'는 것. 이를 위해 회원들은 각 사회가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다양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복음화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선교활동', '본당 사목 협조', '신앙쇄신 활동', '피정 및 영적지도', '영원한 도움의 성모마리아 신심 전파' 등인데 선교 활동에서는 외방 선교뿐 아니라 국내 선교 영역에도 활동을 넓히고 있고 본당 사목 협조시에는 구속주회 이념에 따라 해야할 일, 즉 본당 구역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영적으로 돌보고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살피는 데 관심을 집중시킨다. 

 

'본당 선교활동(parish mission)'은 구속주회 만의 독특한 활동이라 할 수 있는데 일정 기간동안 기존 신자들의 재교육을 맡아 피정 지도, 영적 상담 등의 활동을 한 후 6개월 내지 1년이 지났을 때 신자들을 재방문, 신앙 생활을 점검해 볼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신앙 쇄신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은 자신에게 도움을 간구하는 이들의 청원을 많이 들어주셨기에 '기적의 성화, 은혜 넘치는 성화'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구속주회 회원들은 이 성모님의 신심을 전파할 특별한 임무를 통해 전세계에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께 드리는 9일기도'를 주관하고 있다.

 

구속주회의 한국 진출은 1985년 열린 수도회 세계 총회에서 아시아 선교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이후 아시아 지역을 담당하는 헤차노바(Luis Hechanova) 참사는 수차례에 걸친 한국 방문 및 서울대교구와의 접촉을 통해 진출 가능성을 타진했다. 

 

늘어나는 냉담자 문제, 신자들의 영성 교육, 신앙 생활의 심화 등 과제를 지니고 있던 한국 교회 상황에 부응하고, 향후 북한과 중국 선교를 위한 교두보 마련이라는 측면에서 한국 선교를 결정한 구속주회는 1991년 3월 서울대교구장 요청으로 공동체를 꾸렸다. 

 

이들의 주요 활동은 본당에서의 미사와 고해성사, 피정지도, 영성지도, 사제들과 수도자들을 위한 영성지도,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사목 등이며 영원한 도움의 성모께 드리는 9일기도를 통한 성모 신심 전파에도 헌신하고 있다. 

 

브라질과 필리핀 태국 관구에서 파견된 회원들로 출발한 구속주회 한국지구는 2004년 현재 사제 13명과 평수사 1명, 수련자 3명, 청원자 3명으로 구성돼 있다. [가톨릭신문, 2004년 12월 19일,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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