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2일 (토)
(녹)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강론자료

연중 10주간 화요일 - 200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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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4-06-07 ㅣ No.665

 

연중 10 주간 화요일 - 짝수 해

              1열왕기 17,7-16              마태 5,13-16

      2004. 6. 8. 퇴계원

주제 : 하느님을 첫 자리에

세상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가 놓치기 쉬운 일의 하나는 ‘만사의 첫 자리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을 놓치는 일’입니다.  신앙심이 약하다거나 마음이 악한 것은 아닌데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깜박 잊기 쉬운 것이 그것입니다.  하기 좋은 표현으로는 깜박 잊었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사실은 그 말은 사치스러운 표현입니다.  하느님에게서 얻을 수 있는 확실성을 우리가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생기는 현상이 그것입니다.


오늘 독서에 나오는 사렙다 마을의 과부는 어떤 생각을 가졌기에 하느님의 사람 ‘엘리야’에게 먼저 음식을 줄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집니다.  우리는 오늘 독서의 말씀을 들으면서 ‘정말로 나도 그렇게 살면 없던 축복이 내게 올 수 있을까 계산하고 한번쯤 모험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혹시라도 이 자리에 앉아계신 여러분 가운데 그러한 생각을 하시는 분이 있다면 그 마음을 바꾸시기를 권합니다.  하느님은 인간과 거래하는 분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마음자세를 보시고 하느님은 축복을 내려주시는 분이지 세상에서 통하는 ‘장사의 논리’처럼 내가 아주 최소한의 노력이나 비용을 들이고 최대한의 결실을 얻으려고 해서는 안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합당한 평가인지는 따로 해야 할 일입니다만, 천주교신자들은 개신교신자들보다 잘 사는 사람이 드뭅니다.  아니 잘 사는 사람이야 많을지 몰라도 그것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분들은 적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느님과 거래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천주교 신자들이 많습니다.  개신교 신자들은 삶의 자세를 어디에서 배웠는지 몰라도, ‘주일은 쉽니다’라는 간판을 자연스레 내겁니다.  그러나 천주교 신자들은 같은 장사를 해도 그렇게 하는 사람을 찾기는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입니다.  또한 삶에서 놀 것 다 놀고, 다녀올 곳에 모두 다녀오면서도 자신만큼은 하느님의 축복을 얻기에 합당하게 살았다고 말하기 십상입니다.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에 발버둥치면서 산다고 해서 삶의 축복이 나만 찾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길 가던 나그네였을 엘리야의 이야기에 이방인으로서 그 지역에 살던 사렙다 마을의 과부는 별 의심 없이 삶의 첫 자리를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그렇게 행한 삶의 자세 때문에 가뭄이 끝날 때까지 사렙다 마을의 모자에게는 밀가루도 기름도 떨어지지 않았다고 열왕기 역사서는 적고 있습니다.  그 마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은 각자가 가진 삶의 자세에 따라 달라집니다.  원칙은 이야기할 수 있어도 그것을 강제로 실천하게 할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올바로 산다는 것은 삶의 첫 자리에 하느님을 모신다는 것과 차이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내 삶에 불을 켜서 등경위에 얹어두는 삶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내 삶의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비추어 하느님을 찬미하게 하는 행동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올바른 마음자세가 필요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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