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2일 (토)
(녹)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강론자료

공현대축일-나해-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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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3-03-02 ㅣ No.385

주님의 공현대축일

 

        이사야 60,1-6;   에페소 3,2-3.5-6;   마태오 2,1-12

 

    2003. 1. 5.

 

주제 : 예수님은 과연 내게 희망인가?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2003년 양띠 해 들어서 맞는 첫 번째 주일, 주님의 공현대축일입니다. 무척 추운 오늘 여러분이 성당에 오도록 이끌어주신 하느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사랑이 올 한 해 여러분과 가정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기억하는 ‘공현대축일’에서 ‘공현(公顯)’의 의미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사람들에게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셨고 그래서 이방민족들에게도 빛이 된 분임을 알리려는 의도’가 있는 말입니다.  마태오 복음에 나온 내용을 정리하여 말한다면, 별자리를 연구하던 박사들이 동쪽지역으로부터 와서 예수님의 탄생을 경축했고 선물을 드리고 갔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해서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더 큰 삶의 기쁨을 갖고 살아갈 것을 권고하는 날입니다.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전설을 담는 오늘 축제일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전설이라는 표현을 쓴 것처럼, 동방의 박사들이 어린 아기 예수님을 방문했다는 것이 정말 사실일까 아닐까, 그들이 가져왔다는 선물의 의미가 무엇일까를 묻는 것과 그 박사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우리가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는 어떤 것일까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것입니다.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던 시대에 동쪽 지방 페르시아에서 천문학을 연구하던 박사들은 서쪽으로 길을 가다가 자신들이 연구한 바를 확인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들어갑니다. 발달했던 도시, 화려한 예루살렘에서 찾고자 했던 표징을 발견하지 못한 그들은 예루살렘을 거쳐 베들레헴에 온 다음, 사람으로 나신 하느님의 모습을 뵙고 그분께 합당한 경배를 드리고 준비해 왔던 선물을 드리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일생 동안 연구했던 일의 업적을 확인한 그들이 고향으로 갖고 갔을 것은 분명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초라한 모습 안에 감췄을 특별한 의미를 깨닫게 하신 하늘의 인도에 남다른 감동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보러왔던 동방의 박사들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도 과연 같거나 비슷한 마음자세로 성당에 왔다가 그곳을 떠나는 사람인지를 확인해봐야 할 일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이 과연 내게 삶의 기쁨이요 희망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올바르게 응답하기 위해서는 신앙인이 된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한 일은 없었는지, 한번 스쳐 지나갈 생각이 아니라 정말 신앙을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지. 주일이면 발길은 성당으로 가야 한다고 여기면서도 떼어놓는 발걸음의 무게를 무겁게 느끼지는 않았는지,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그런 생각이 있었다고 한다면, 하늘에 나타난 별의 인도를 따라 서쪽으로 힘겨운 여행을 했고 예수님을 보는 영광을 간직하고 돌아갔을 동방의 박사들의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 내 맘대로 되는 일은 없다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이 대신 해 줄 수 없는 것이 또한 내가 갖는 삶의 자세입니다.  내가 진 짐이 무겁다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짐은 더욱 더 무게를 더하는 법입니다.  물리적인 실제의 무게는 변함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가 생각하는 심리적인 무게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모시고 살았던 사람들의 발걸음은 가벼웠고 무게를 느끼지 않는 것 그 자체였습니다. 동쪽으로부터 별의 인도를 따라 오면서 그 끝을 모르는 막연한 발걸음의 끝에 하느님의 업적을 보고 고향으로 발길을 돌렸을 동방에서 온 박사들, 예수님의 선택을 받고 복음 전파에 나선 제자들이 그러했을 것이고, 삶의 자세를 바꾸고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주면서도 행복에 가득 찬 꿈을 꾸었을 세관장 자캐오가 그러했으며, 사람들의 질투를 넉넉한 마음으로 이겨냈을 마리아 막달레나가 그러했을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가까이 살았던 그들이라고 해서 우리와 달리 놀랄 만큼 커다란 선물을 예수님에게서 받아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변화는 각자가 갖는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오셨으니 함께 기뻐하고 그 기쁨을 드러내자고 말하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도 같은 뜻에서 해석할 수 있는 일입니다.  흔히 말하기를 ‘내 안에 기쁨이 있어야 남에게 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기쁨이겠지만, ‘내가 드러내려고 한다면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삶의 기쁨도 담아주신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전하려는 기쁨’에 해당할 것입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기억하며 살아가고자 한다면 하느님의 기쁨은 우리를 채우고도 남을 것입니다.

 

새로운 한 해, 2003년의 첫 번째 주일을 지내면서 우리가 가져야 할 첫 마음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동방의 박사들에게 귀한 모습을 보여준 하느님의 의도를 기억하며 우리 시대에 진정으로 예수님과 그분의 뜻을 찾는 동방의 박사들이 되기를 함께 기도해야 할 일입니다.

 

먼 거리를 찾아왔던 그들에게 삶의 희망이 되었던 예수님을 우리가 진정한 삶의 희망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 우리 삶에 꺼지지 않는 영원한 기쁨을 주시도록 청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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