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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 현장에서 본 2000년 대희년 준비와 한국 교회의 대희년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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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3 ㅣ No.53

현장에서 본 2000년 대희년 준비

 

 

1. 본당의 준비 상황

 

2000년 대희년 준비와 관련하여 본당 차원에서 구체적인 활동을 갖지 못한 입장에서 이 글을 쓴다는 것이 어쩐지 거북스럽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는 심정으로 글을 시작한다.

 

본당 자체로는 구체적 사안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신자들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레지오 단원들과 반회에 참석하는 신자들은 교황 교서 [제삼천년기]는 거의 다 가지고 있고 나름대로 공부도 하였다. 교구 사목국 주관으로 교구 레지아를 통해 모든 레지오 단원들에게, 또한 구역장과 반장을 통해 일반 신자들에게까지 이 교서가 보급되었다. 뿐만 아니라 공부한 후에는 시험 문제까지 제출해서 대희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어느 정도 숙지시켰고, 교구의 54개 본당 순회 일일 기도회를 계획하고 있다. 본당에서는 주교회의가 펴낸 [새날 새삶]을 신자들에게 보급시켰고, 교구에서도 이를 바탕으로 1999년 봄 판공 시험까지 내 보냈다. 그리고 주보를 통해 틈틈이 '새날 새삶' 운동의 실천 사항들을 소개하고 있고, “2000년 대희년을 향하여”를 함께 공부할 시간을 만들어 놓고 있다. 이를테면 분위기 조성은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 밖에 다른 실천적인 상황은 아직 없다. 그래서 사목자들이 무관심하다든지 참여하는 분위기가 없다고들 하는가 보다. 그런데 진정 성직자들, 특히 일선 사목자들이 2000년 대희년 준비에 무관심한가?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누구보다도 2000년이 ‘은총의 해’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일선 사목자들인 것이다. ‘때가 차서’ 하느님께서 아드님을 보내셨고 2000년이 하느님이 주신 시간이라는 데 깊은 신뢰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동안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다. 다시 말해 ‘희년’이라고 할 때 이는 기쁨을 말하는 것이고, 이 기쁨은 단지 내적인 기쁨일 뿐 아니라 외적으로도 드러나는 기쁨이기에, 외적이고 가시적이며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그런 어떤 기쁜 일이나 방안이 잡히지 않는 것이다. 그저 공허하게 들릴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2000년 대희년 주교 특별 위원회에서 대희년 맞이 [새날 새삶]을 내놓아 구체적인 길잡이가 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실천 사항들을 충실히 실천하게 하는 것은 이제 사목자들의 몫이다.

 

 

2. 어떻게 하면 효과적인 준비가 될 수 있는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이미 진행 중인 것으로 본다. 일 주일 단위로 [매일 미사] 본기도에 주제를 달리하며 대희년을 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은 ‘무엇을 해야 될텐데’ 하는 강박 관념을 갖지 않게 하면서도 백성들을 일깨워 주고 있기 때문이다. 큰 돌을 제거하면 다른 작은 돌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는 법이다. 그렇다고 세부 실천 사항들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모든 세부 사항들이 실천될 수 있는 촉매가 되지 않을까 해서 몇 가지 방안을 생각해 본다. 

 

1) 대희년을 근본적으로 선교적이라 했다. 안식년과 희년이 가나안의 풍속을 경신례 차원에서 재해석하며 시작된 것으로 안다. 이 땅에는 열성적인 선교 활동이 이미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면 ‘새로운 양 찾기 운동’이나 ‘가두 선교’가 그 좋은 예일 것이다. 벌써 많은 본당들이 이를 도입해서 실천하고 있고 필자가 있는 본당도 하고 있다. 

 

2) 주일 강론이나 아니면 다른 신자들의 모임에서 여러 세부 사항 가운데 실천하기 어려울 것 같은 것들(예, 빚 탕감)은 성경의 예를 들려 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물론 이스라엘에서도 잘 실천되지 않았지만 그 예는 분명히 있다. 

 

3) 그리스도는 묶인 사람들에게 해방을 알려 주고 억눌린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 주위에는 묶여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다. 혼인의 거룩함을 아예 도외시하거나 이혼하는 것을 쉽게 다룰 수는 없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냉담했을 때 다른 잘못 없이 교회 밖에서 혼인을 했거나 한쪽 배우자의 비협조로 혼인 성사를 받지 못하고 사는 분들에게 복잡한 서류를 꼭 요구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자주 있다. 

 

4) 화요일 미사 본기도에서 “아버지와 이웃에 대한 사랑이 뜨겁게 타오르게 하시어 … 보잘것없고 버림받은 이들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새날 새삶’ 운동의 세부 실천 사항에도 몇 가지 들어있지만 이미 일어나고 있는 운동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꽃동네’나 ‘오순절 평화의 마을’이나 그밖에 같은 성격의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각 본당에 무엇인가를 촉구하고 있다고 본다. 모든 본당이 다 할 수는 없겠지만, 행려 환자나 노인들이나 기타 버림받은 이들 4-5명씩 모시는 운동이 일어나면 좋겠다. 

 

5)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기쁨을 주는 삶, 기쁨을 사는 모습이어야 한다. 그것은 이웃에게 복을 빌어 주는 일일 것이니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며 너희를 지켜 주시고 주님께서 웃으시며 너희를 귀엽게 보아 주시고, 주님께서 너희를 고이 보시어 평화를 주시기를 빈다.’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 이름으로 복을 빌어 주면 내가 이 백성에게 복을 내리리라”(민수 6,24-26). 

 

God bless you! 복 받으십시오. 모든 대화의 끝에, 그리고 만나고 헤어질 때 이 말이 오가면 서로 얼마나 기쁠 것인가! [신순근(청주교구 내덕 2동 천주교회 주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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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한 세기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세기를 시작하려는 중요한 자리에 서 있다. 물론 아무런 의미도 두지 않고 그저 흐르는 세월 속에 하루 하루라고 여긴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적어도 한 천년기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천년기를 준비하는 데 아주 중요한 의미를 둘 수 있겠다. 더욱이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으로 하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시간의 기준이신 예수님의 새로운 천년기를 맞이하면서 더욱 새로운 의미 부여가 있어야 하겠다. 

 

특별히 교육의 현장에서는 대희년 맞이가 잔치를 준비하거나 일회성 행사로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교리 교육은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담긴 인류 구원의 섭리를 찾아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의 인물이실 뿐 아니라 지금 우리 삶 속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분임을 깨닫게 해 주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천년을 맞는 준비가 일회성 행사가 아닌 학생들의 삶의 자리에서 의미를 갖는 대희년이 되기 위해서는 교육적인 차원에서의 준비와 배려가 있어야 한다. 

 

신앙인으로서 대희년이 갖는 의미를 생각하면서 동시에 교육의 자리에서 보는 대희년 준비와 배려가 어떤 것인가를 진단해 보고 준비와 배려가 미흡하다면 어떤 면에서 어떻게 미흡하고, 그 대책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아울러 교육의 자리에서 본 대희년 맞이의 바른 자세가 어떤 것인지도 더불어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1. 교사들의 대희년에 대한 이해

 

서울대교구 교육국에서는 주일 학교 교사들의 대희년에 대한 이해 정도를 알아보기 위하여 작은 설문을 실시하였다. 처음부터 좋은 결과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막상 결과를 보니 너무나 실망스런 것이었다. 희년의 의미와 유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교사가 불과 22.8%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는 어디선가 들어 본 소리거나 들어 본 적도 없다고 답하고 있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대희년이란 지식이 아닌 삶이다. 그러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가르쳐야 할 교사들이 삶 이전의 정신 이해에서 빈약함을 보이고 있으니 전체적으로 대희년의 정신이 주일 학교에서 잘 구현되기를 기대하기란 나무에서 물고기 구하기와 같다고 할 수 있겠다. 

 

대희년 정신에 대한 교사들의 이해 부족은 교육 기회와 자료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적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볼 때 교회가 이론적이고 생활 실천적인 프로그램은 제시하면서도 교육적인 차원에서 배려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세속에서는 새로운 세기의 시작이 인류 문화의 변화의 계기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에 대한 상업주의가 극성을 부리고 있지만, 교회 교육의 현장에서는 이스라엘 역사에 있었던 한 사건으로 그 의미를 축소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주일 학교 교사들은 대희년을 각자의 자리에서 새로운 변화의 계기로서가 아니라 설명해야 할 과제의 하나로만 여기고 있는 듯하다. 교사들이 대희년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단어들은 ‘속량’이나 ‘화해와 용서’, 또는 ‘사랑’이었다. 물론 이런 의미들이 대희년의 정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교사의 입장에서 볼 때는 그 동안 교회 안에서 늘 들어 오던 말의 연장 정도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대희년 정신을 표현하는 단어가 새로울 수만은 없겠지만 가르쳐야 할 사람들에게 너무 평범하게 여겨지고 있다. 교사들 스스로 대희년이 주는 진정한 의미를 알고 있지 못하다. 물론 대희년 정신이 전혀 새로운 것일 수는 없겠으나 적어도 교육의 자리에서는 새로운 지평으로 열려야 했다. 그러나 그런 시도 없이 우리는 교육의 자리에서 흔히 보아왔던 이야기와 소재를 주면서 거기서 교사들에게 희년의 ‘새로움’을 찾도록 하지나 않았나 반성해야 한다. 

 

많은 주일 학교 교사들이 신앙인으로 미숙한 면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교사들 스스로가 아직 희년 정신이 어떤 것인지, 또 성년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교회는 그들을 도구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대희년의 의미를 가르치도록 일임하고 있다. 그것이 신앙만 아니라면 몇 자 읽고 나서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겠지만, 신앙은 삶을 전해 주는 것이기에 몇 권의 참고 자료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지금부터라도 교사들이 희년 정신을 알고 삶의 근간으로 삼을 수 있도록 더욱 적극적인 배려가 있어야 하겠다.

 

 

2. 주일 학교에서의 대희년 준비

 

주일 학교에서의 대희년 준비는 교사의 이해 정도에서 알 수 있듯이 적어도 서울대교구의 경우는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몇몇 준비가 있다고 해도 부분적인 준비이며, 대희년 준비 전체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대희년 정신의 구현이라고 하는 문제가 이제 10개월 후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며, 세기말 현상이니 새로운 천년기니 하면서 세상이 떠들썩할 때 우리들만 조용히 지낼 수는 없을 것이다. 늦은 것 같지만 사실 아직도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준비가 허술한 것 같지만 사실 주님의 일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충분히 배려해 주고 계실 것이다. 단지 우리가 소홀히 하고 있고 또 게을리 하고 있을 뿐이다. 

 

대희년은 모두가 알다시피 구약에서 유래된 것이며, 그 근본 정신은 ‘하느님 본래의 뜻으로의 복귀’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오시며, 하느님의 뜻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희년이란 결국 하느님의 뜻이 우리 가운데 잘 성취되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고 만약 무엇이 잘못되었다면 그 시작으로 돌아가 하느님의 뜻대로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어야 한다. 많은 교사들이 주일 학교에서 대희년을 준비하면서 희년이 주는 외적인 의미에 치중한 나머지 그 본래의 뜻을 놓치는 수가 있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희년은 신앙인의 삶 전체를 포괄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행사 준비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며, 학생들이 희년의 정신을 담고 있는 말씀, 곧 성서와 가까워질 수 있는 교육이 선행되어야 하겠다. 물론 평소에 지속적으로 해야 할 과제가 성서 공부이기는 하지만, 특별히 한 세기를 마무리하고 대희년을 맞으면서 학생들이 성서의 말씀을 귀감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하는 배려가 우선되어야 하겠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성서 속에서 참 의미와 하느님의 뜻을 볼 수 있을 때 우리들의 삶이 바르게 가고 있는지, 이웃과의 관계는 올바른지, 나아가 우리 인류 문화의 방향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쪽으로 가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다. 

 

또 다른 준비는 새로운 세기의 시작을 준비하는 것이다. 인류 문명은 이제 하느님의 영역에까지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세기의 삶의 모습을 물어 본 결과 그들은 우리들의 삶이 풍요로워지기는 하겠지만 풍요 속에 종말이라는 모습을 보고 있다고 답했다. 모두가 공감하는 것처럼 물질적으로는 여러모로 풍요를 누리겠지만, 거기서 오는 병폐와 특히 가치관의 상실과 혼돈은 궁극적으로 하느님 질서를 깨뜨리고 지구 종말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이 점을 특히 걱정하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세기를 맞는 준비 교육으로 우리는 서로서로 더불어 사는(자연계도 포함하여) 삶의 교육과, 궁극적으로 하느님과 더불어 사는 삶을 가르쳐야 하겠다. 대희년 근본 정신 중 하나는 바로 이 더불어 사는 삶일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세기의 교육은 반드시 더불어 살 수 있는 지혜를 가르치는 교육이어야 하며, 이 교육의 일선에 바로 교회가 서야 하고, 주일 학교 교사는 그 교육 일선의 사도라고 볼 수 있다.

 

 

3. 새로운 세기를 바라보면서

 

이제 우리는 새로운 세기의 문턱에 서 있다. 사람들은 이 전환점에 서서 무언가 새로운 변신을 꾀하기도 하고, 전환의 계기로 삼기도 한다. 신앙인에게도 마찬가지라고 보여진다. 그 동안의 우리들의 신앙을 되돌아보고, 특히 2000년이라는 시간 동안 하느님과 인류의 관계를 생각해 보고, 더욱 새로운 관계 개선이 있어야 하겠다. 교육의 자리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세기에 서서 이제 더욱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야 하겠다. 이 변화는 단순한 겉모양의 변화가 아니라 근본적인 관계 개선이어야 한다. 

 

대희년은 어느 날 한 시점에 ‘와!’ 하고 함성을 외치는 일회성 행사거나 인류의 종말이 닥치는 하느님 계획의 시간이 아니다. 새로운 세기는 지난 세기 동안 우리가 하느님께 잘못한 것을 뉘우치며 이제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따라서 지금 주일 학교에서 준비해야 할 대희년 맞이는 지금 우리 모습을 있는 그대로 샅샅이 훑어보고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또 누구와 어떤 일이 불편한 관계에 있는지, 그리고 어떤 모습이 잘한 일인지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 모습을, 특별히 교육의 자리에서 우리 모습을 잘 살펴볼 수 있을 때 새로운 세기에 변화를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변화는 하느님을 닮는 변화이어야 하며, 한 처음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던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희년의 정신이 우리 모두에게, 특별히 어린이와 청소년의 가르침의 자리에서 실천될 때, 배우고 가르치는 내용이, 그리고 배움을 실제로 사는 학생들의 삶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을 때 대희년은 진정한 기쁨으로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조한수(서울대교구 교육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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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희년을 향해 쏘아진 시간의 화살은 너무나도 빠르게 날아가, 앞으로 200여 일만 있으면 ‘2000년 대희년’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 본당에서는 예수님의 2000번째 생일 선물을 드리고자 여러 가지 일들이 진행되고 있으나, 마음만 앞서고 일의 진척은 무척이나 더디다. 이렇게 모든 일들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동안 교구에서는 1991년의 교구장 사목 지침에 따라 1992년부터 ‘2000년대 복음화’를 사목의 중심 주제로 삼아 추진하여 왔지만, 내 경우에는 작년부터 ‘2000년대 복음화 분과’를 담당하고 나서야 이런저런 교육에 참가하여 ‘2000년 대희년’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게 되었다. 

 

이처럼 교구의 지침이 본당 신자 개개인에게 이르는 데 6년의 시간이 소요되었으며, 만약 나에게 지금과 같은 특별한 계기가 없었다면 아직도 ‘2000년대 복음화’나 ‘2000년 대희년’에 대한 기초적 인식조차 없었을 것이다. 본당에서 교구장의 사목 지침인 ‘2000년대 복음화’를 받아들여 ‘복음화 분과’를 신설한 것이 1996년이므로, 교구의 사목 지침이 본당에 이르는 데 무려 4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볼 수 있고, 이것이 다시 신자 개개인에게 전달되는 데에는-내 경우를 예로 든다면-또 2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희년 준비도 이와 다르다고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교구의 사목 지침에 따라 본당에서 본격적으로 대희년을 준비하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 작년 중반 이후부터였으므로, 위의 예로 볼 때 신자 개개인이 대희년 정신을 체득하고 실천하기 시작하려면 2000년을 훌쩍 넘겨야 하리라. 물론 지나치게 기계적인 계산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만큼 교회의 전달 체계나 유기적 관계가 크게 미흡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금년에 교구에서 도입한 지구장 제도가 교회 내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유익한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교회의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구성원들이 완전하게 새롭게 태어나지 않는다면 ‘2000년 대희년’을 제대로 맞이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며, 더 나아가 2000년대에 복음화를 실현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현실에 대해 우려할 수는 있지만 좌절할 수는 없다. 

 

비록 뒤늦은 출발일지는 모르지만 교구의 사목 지침을 받아들인 우리 본당에서는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의식으로 다음과 같이 2000년 대희년을 맞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 본당에서는 우선 작년부터 구역 분과, 선교 분과, 복음화 분과가 공동으로 각 분과의 특성에 맞는 일들을 나누어 진행하고 있으며, 특히 금년에는 주임 신부님과 사목회 회장단이 주축이 되어 ‘남성 구역 모임 결성’, ‘외짝 교우 배우자 영세’, ‘냉담자 회두’를 예수님의 2000번째 생일 선물로 봉헌하자는 목표를 두고 부지런히 노력하고 있다. 

 

특히 ‘남성 구역 모임’을 결성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금년에 ‘남성 구역 분과’를 신설하고, 남성 구역 모임에 신부님과 수녀님 그리고 사목회 회장단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작년까지 세 구역에서 실시되던 남성 구역 모임이 금년에는 12개의 구역에서 모임을 갖게 되었다. 이와 같은 추세로 남성 구역 모임이 결성된다면 연말에는 30개 이상의 구역에서 남성 구역 모임을 갖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남성 구역 모임의 활성화와 동시에, 복음화 분과에서는 1998년부터 교구에서 제작한 [성서의 희년]을 교재로 하여 7주 간 모임을 갖는 ‘복음화 소공동체’를 수차례에 걸쳐 진행하여 남성 구역장들을 포함한 구역의 많은 신자들이 복음 나누기 7단계의 진행 방법과 2000년 대희년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올해부터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복음화 소공동체를 진행하여 그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1999년의 복음화 분과 계획은 [성서의 희년]을 교재로 한 ‘복음화 소공동체’를 총 다섯 차례 진행하는 것이며, 금년 하반기부터는 [희년의 실천]을 교재로 하여 별도의 소공동체를 구성하여 운영함으로써 소공동체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구역과 반에서 교우들에게 전파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선교 분과와 구역 분과에서는 외짝 교우 배우자들에 대한 전교를 적극적으로 실시하여 지난 2월에는 그들을 위한 특별 교리반을 결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본당에서는 그 동안 외짝 교우들의 심적인 고통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2000년에는 부부가 함께 기도하는 성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많은 배려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와 동시에 금년에는 ‘예비자 봉헌’ 미사를 갖고, 본당의 모든 신자들이 이웃에 살면서 아직 세례를 받지 못한 형제 자매들을 대상으로 미사를 통해 예수님께 봉헌함으로써, 그들이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성령의 인도를 청하고 있다. 

 

다음은 냉담자 문제이다. 대부분의 냉담자들이 냉담하게 된 주요 원인을 살펴보면, 신앙에 대한 무관심보다 교회 내에서의 인간적 갈등이나 좋지 않은 일들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아 냉담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사목자가 냉담자 가정을 방문하여도 오히려 신앙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보다 더욱 냉정하고, 어떤 사람들은 화를 내는 경우가 있지만, 그래도 우리 본당 주임 사제는 올해 안에 모든 냉담자 가정을 방문한다는 목표로 지속적인 가정 방문을 실시하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2000년 대희년 준비가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만은 아니다. 대다수의 신자들은 주일 미사 참여만으로도 신앙 생활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런 신자들에게는 대희년의 의미를 아무리 전하려고 해도 스쳐 지나가는 말로 들릴 것이다. 달리 생각해 보면, 본당에서 교구의 사목 지침을 받아들이는 데 6년 반이 소요되었는데, 신자들 마음 속에 1년 안에 ‘2000년 대희년’의 의미를 심어 준다고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러한 우리의 현재 모습을 바라보면서 반성해야 할 것은 반성하고, 고쳐야 할 것은 당연히 고쳐야 하지만, 이와 동시에 지금의 본당 사업이 주님을 향한 일들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거두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비록 더디게 가고 있지만 온전한 마음으로 모든 노력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시작은 늦었지만, 우리 본당의 ‘2000년 대희년’ 준비가 풍성한 결실을 맺어 예수님의 2000번째 생일 선물로 온전하게 봉헌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 드린다. [김수열(서울대교구 자양동 천주교회 2000년 대희년 준비위원회 위원장)] [사목, 1999년 4월호]

 

 

한국 교회의 2000년 대희년 준비(좌담)

 

 

참석자 :

이건형(서울대교구 본당 청년 사목부 부회장)

이정운(수원교구 2000년 대희년 준비위원회 사무국장, 신부) 

이창훈(평화신문 2000년 대희년 취재팀장)

정정자(천주 섭리 수녀회, 수녀)

최홍준(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기획분과위원장)

사회 : 정병조(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무차장, 본지 주간, 신부)

일시 : 1999년 2월 23일(화) 오후 2-6시

장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제2소회의실

 

 

정병조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1994년 11월 교황 교서 [제삼천년기]를 발표하시며 2000년 대희년을 선포하셨고, 한국 교회도 1995년에 ‘2000년 대희년 주교 특별 위원회’(이하 ‘2000년 주교 특위’로 약기-편집자 주)를 구성하여 대희년을 준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동안 여러 차례의 각종 회의와 자료집 발간, 2000년 대희년 준비 전국 대표자 회의(이하 ‘전국 대표자 회의’로 약기-편집자 주)가 있었습니다. 이와 발맞추어 각 교구와 본당에도 대희년 준비 위원회가 설치되어 활발한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대희년 준비의 마지막 해로서 대희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월간 [사목]에서는 한국 교회의 대희년 준비 상황을 점검하고, 참된 기쁨의 해를 맞기 위한 의견들을 수렴하려고 이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떤 애로점이 있는지, 또는 대희년 준비와 관련한 어떤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서로 나누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먼저 교회 전체적으로, 또는 부문별로 한국 교회가 대희년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말씀해 주시고, 아울러 교회의 이런 준비가 신자 개개인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시는지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 교회의 대희년 준비 상황

 

이창훈 : 먼저 전체적인 입장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국 교회가 1995년부터 대희년 준비에 들어갔다고 하지만, 실제로 대희년 준비의 가시적인 움직임들이 개별 교구에까지 확산된 것은 작년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1997년까지만 해도 그리 큰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2000년 주교 특위에서 펴낸 대희년 길잡이 책자가 전부였습니다. 금년은 모든 교구가 성부의 해에 초점을 맞추고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구별로 준비 위원회가 구성되어 있고, 또 대희년 준비와 같은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것이 ‘교구 대의원 회의’인데, 인천, 대구, 부산 등지에서 이미 시작하고 있고, 수원에서는 이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일반 신자들에게까지 파급되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또 교구 차원의 노력이 분야별로 확산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최홍준 :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의 준비 상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전국 평협에서는 1996년 11월 평신도의 날에 ‘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는 제목의 강론 자료를 전국 본당 사목회장들에게 보내서 1997년 성자의 해를 살아가는 평신도의 자세에 대해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 주제는 1996년 9월 김대건 신부님 순교 150주년 행사의 주제이기도 한데, 이는 현재의 ‘새날 새삶’운동의 정신과도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성령의 해에 있었던 평신도의 날 강론 자료의 주제는 ‘평신도 제자리 찾기’였습니다. 대희년을 잘 준비하기 위해서는 평신도가 자신의 신원을 확고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리고 올해 성부의 해는 ‘사랑의 마음으로 대희년을 준비합시다’로, 내년 대희년은 ‘기쁨과 나눔을 실현하는 은총의 해’로 정하였습니다. 

 

또한 전국 평협은 대희년 준비를 위한 조직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1998년 초에 ‘2000년 대희년 준비 특별 위원회’를 구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전국 평협은 금년 10월 24일에 대희년 맞이 평신도 대회를 개최하려고 합니다. 대희년을 올바르게 맞이하고 또 합당하게 살기 위한 반성의 다짐과 계기가 될 것인데, 전국 교구 평신도들이 모인 가운데 신심, 문화, 도농 나눔 잔치 등 다채롭게 진행할 계획입니다. 

 

이정운 : 저는 먼저 희년이 주는 신학적 의미에 대해서 언급하고 싶습니다. 희년이라는 주제가 주는 것은 일종의 역사적 목표 의식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역사의 중심에 계신다는 역사적 비전과,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우리가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목표 설정이 제대로 확립되어야 합니다. 그런 연후에 그에 따른 여러 운동들이 나와야 합니다. 이웃돕기 운동과 같은 사랑의 운동도 물론 좋지만, 그것이 어떤 결실을 맺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말해야 합니다. 이런 운동의 열매는 행복이고 기쁨인데, 그것이 어디에서 연유되는가. 그 기쁨이 인간적인 만남에서 오는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과의 만남에서 오는 것이냐에 대해 질문해야 합니다. 

 

희년은 ‘새로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새로움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저는 새로움이라는 것을 하느님의 창조에서 봅니다. 하느님의 창조가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오염된 상태, 그래서 이것을 제거하여 새롭게 탄생할 때, 그것은 바로 하느님께서 창조해 주신 모습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새로움입니다. 이 때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바로 죄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깊이 논하지 않고서는 여타의 문제들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회개 운동이 일차적이어야 합니다. 이것을 쇄신이라는 개념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쇄신이라는 것은 본래 하느님께서 주신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인간의 올바른 관계가 정립되지 않으면 인간에게 평온은 없습니다. 이 관계성을 이어주는 데에 우리는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정정자 : 작년 성령의 해에는 이병호 주교님을 모시고 ‘생명을 주는 힘이신 성령’이라는 주제로 한국 여자 수도회 장상 연합회에서 세미나를 개최하였습니다. 그리고 전국 대표자 회의에는 각 수도회가 개별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연합회 차원에서 어떤 특별한 행사를 기획하지는 않고 수도회마다 자체적으로 대희년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현재의 대희년 준비는 자발성을 위한 동기 유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대희년 준비가 실제적인 삶의 문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각자 삶의 자리에서 내적인 갈망을 일구어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성찰할 수 있도록 인도되어야 하는데, 성찰보다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이건형 : 얼마 전에 동료 청년 회원이 대희년이 도대체 무엇하는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대한 대답을 하면서 저는 대희년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조차 없는 청년들이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기본적 이해 없이 대희년을 준비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합니다.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는 청년은 보통 전체 청년 신자의 5-6%라고 합니다. 주일 미사 참여나 단체 활동을 하고 있는 청년들 중에도 대희년의 의미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먼저 지적할 것은 청년들을 위한 신자 재교육 프로그램이나 특강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청년들에게 어떤 자발적인 관심을 요구한다는 것도 무리입니다. 사실 청년 신자들의 신앙 생활의 중심은 교리 교육이나 성사 생활이 아니라 단지 특정한 단체 활동이나 그에 따른 친교에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희년이 참된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라면 현재의 소공동체 운동도 이에 대한 준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울대교구 본당 청년 사목부가 1997년부터 시작한 소공동체 교육은 현재 90개의 본당에서 교육 수료자를 배출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청년 소공동체 운동을 하고 있는 본당은 20-30개, 아주 잘 되고 있는 본당은 5개 정도라고 합니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점차 소공동체에 대한 이해가 확산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2000년 대희년 주교 특별 위원회의 활동과 자료의 활용

 

정병조 : 내년이면 대희년인데 아직도 희년의 기본적인 의미조차 모르는 신자들이 많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동안 한국 교회는 대희년 준비와 관련해서 주교회의 차원에서는 각종 정보와 자료 제공에 힘써 왔습니다. 교황 교서 [제삼천년기]가 1994년 11월에 발표되었는데, 우리말 번역서가 1995년 10월에 나왔고, 1996년부터 대희년 길잡이를 펴내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1997년부터 미국 주교회의 자료 등을 번역했고, 3월에는 주교단 공동 사목 교서를 냈습니다. 자료집 발간은 상당히 신속하게 추진되어 왔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자료들이 신자 교육에 얼마나 효과적이며, 일반 신자들에게 대희년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시키기 위해서 어떤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이정운 : 정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교황님의 [제삼천년기] 발표 이후 한국 교회에서는 2000년 주교 특위가 구성되고, 교황청 문헌을 비롯한 여러 대희년 관련 자료들을 신속하게 출판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료들을 가지고 실천적으로 살아보려는 노력은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 가정, 마을, 본당, 수도회, 교구 차원에서 실천적 체험들이 이루어졌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대희년 준비 마지막 해에 와서 시간의 부족을 느끼고 있습니다. 성부의 해를 맞아 미국 주교회의에서 발행한 대희년 맞이 본당 교육 자료에서 착안 사항으로 나오는 것이, 가정마다 희년초를 준비해 두자는 것입니다. 형제들끼리 다툼이 있다면 화해의 표시로 부모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서로 희년초를 켜는 것입니다. 가정마다 이것이 있다면 희년의 정신이 가정 안에서 잘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세례 갱신식과 비슷한 희년 서약서를 만들어서 ‘나는 희년이 되면 무엇을 할 것이다.’라는 내용을 적어서 미사 때 제단에 봉헌하자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개인은 각자 자기 희년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 대신 사목자는 이들을 도와 주어야 합니다. 본당 신부님들의 위치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본당 희년의 주관자는 본당 신부님이고, 청년회의 주관자는 청년 회장이고, 반모임의 주관자는 반장이어야 합니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맡겨진 책임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창훈 : 저도 2000년 주교 특위가 많은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많은 책을 냈는데, 신자들이 보기에는 무척 어려운 것입니다. 또 다양한 책들을 번역 소개하고 있지만 상황이 우리와 너무 다른 점이 문제입니다. 이것들을 구체적 상황에 적용시키는 문제가 있는데, 다양한 상황에 맞는 아이디어들을 제공하는 것이었으면 합니다. 또 각 교구나 본당들에서는 대희년 준비를 위한 구심점이 필요합니다. 구심점이 없거나 이것이 흔들리고 있다면 어떤 일도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없다고 봅니다. 

 

최홍준 : 2000년 주교 특위에서 노력한 만큼 일선 본당에서는 전달이 잘 안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미사 참여 때 본기도에 나오는 것만 생각합니다. 그 외에 강론이나 공지 사항에서 이에 대한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미사 때 하는 교육이 가장 효과적이지 않습니까? 대희년 교육도 본당 신부님들이 가장 신경을 써야 합니다. 일반 평신도 단체가 하는 것은 일정한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평협에서는 작년 연초에 대희년 특별위원회를 만들어서 자료도 수집하고 있지만 여기도 큰 성과는 없습니다. 희년에 대한 이야기는 교회 언론 매체를 통해서 매번 나가고 있는데, 신자들이 언론 매체를 좀더 가까이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신문 구독률과 시청률이 그다지 높지 않은 것을 보면 2000년 주교 특위에서 나오는 자료들도 얼마나 접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건형 : 2000년 주교 특위에서 나온 책이 너무 어렵다는 것은 저도 주위에서 자주 듣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서울대교구에서 나온 [성서의 희년]이라는 책을 보고 대희년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할 수 있었습니다. 또 이것을 소공동체 복음 나누기에서도 교재로 사용하였는데, 모두들 긍정적인 평가를 하였던 것 같습니다. 특히 만화를 이용해서 교재를 만들었기 때문에 중고등 학생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외에도 각종 모임이나 단체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교재를 많이 발간했으면 합니다. 

 

정정자 : 대희년 길잡이 1권을 보고 내용이 좋다고 생각해서 말씀 나누기에 사용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료들이 본당에서는 얼마나 사용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미국 주교회의에서 나온 자료를 보면 각 단체나 본당에 적합한 목표 설정 또는 방향 제시를 했는데, 그런 방식으로 주교님들이 사목 방향을 잘 제시하고 본당 공동체와 그 안의 각 단체들을 통하여 나누어지고 실천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새날 새삶’ 운동의 진행 상황

 

정병조 : 1998년 10월 5일 주교회의는 “새날 새삶 운동을 펼치며”라는 담화를 발표하면서 ‘새날 새삶’ 운동을 전국적으로 펼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새날 새삶’ 운동 발표에 앞서 2000년 주교 특위에서는 ‘제3차 전국 대표자 회의’(1998년 5월 27일-28일)에서 의견을 수렴한 바 있습니다. 주교회의가 희년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 제시한 이 운동이 현재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 각 분야에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부터 새롭게’, ‘참된 가정 이루기’, ‘좋은 이웃 되어 주기’. ‘함께 가요, 우리’라는 네 가지 기본 방향과 실천 사항들을 담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 교회 안의 집안 잔치가 아니라 일반인도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으로 확산시켜 나가려면 어떤 노력들이 있어야 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최홍준 : 평협에서는 ‘새날 새삶’ 운동을 사업 계획에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우선 10월 24의 ‘평신도 대회’가 새날 새삶을 위한 대회로 펼쳐지고, 교구별로 각종 토론회와 세미나를 개최하려 합니다. 서울대교구 평협에서는 7월 10일에 ‘대희년은 민족 화해를 위한 하느님의 계획이다’라는 전제에서 평협 임원과 민족 화해 학교 수료자, 평통 종교인 통일 문제 토론회 참석자, 기타 관련 인사가 모인 가운데 ‘민족 화해 토론회’를 열 것입니다. 3월 20일과 21일에는 각 본당 신임 사목회장단과 지구별 복음화 지도자 50여명을 대상으로 ‘복음화 지도자 양성’ 교육 프로그램을 갖습니다. 9월에는 평협 임원과 가톨릭 교수 협의회, 가톨릭 법조인 협의회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정의 평화 토론회’를 개최할 것입니다. 이밖에도 5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본당 회장, 교구 단체장, 평협 임원 대상의 합동 연수회를 갖고, 6월 26일에는 본당 선교 지도자와 선교 분과 위원 200여명을 대상으로 ‘선교 활성화를 위한 심포지엄’을 갖기로 했습니다. 대희년 교육에 일조를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와 관련해서 ‘새날 새삶’ 운동의 네 가지 기본 방향을 실천 덕목으로 정했습니다. 생명 존중 운동 면에서 ‘대희년 1년 만이라도 사형 집행을 중지하자’는 운동에 동참하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대희년 정신을 일반인에게도 확산하기 위해서는 신자들 자신이 빛이 되는 생활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의미에서 ‘평신도 제자리 찾기’ 운동은 자신의 신원에 맞는 생활을 하자는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렇게 살 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정운 : ‘새날 새삶’ 운동과 관련해서 우리는 이른바 잃어버린 교우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잃어버린 교우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분들에 대해 무심하고 방관하는 내 자신이 이미 냉담자입니다. 신앙적 열의를 가지고 있는 신자라면 어떻게 주위의 냉담자를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가족 찾기 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새날 새삶’ 운동에는 성모 신심에 대한 강조가 약한 것 같습니다. 한국 교회는 본래 성모 신심이 강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강생의 신비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신 성모님에 대하여 그리 많이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이제 성모님과 같은 모성을 지닌 교회로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 국민을 새롭게 탄생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희년뿐 아니라 모든 국민의 희년이 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이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또 새로움의 희년 정신 안에서 통일 사목 위원회가 전교구적으로 설립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통일 기금이 적립되어 이론적이 아니라 실천적인 면에서 통일 운동이 벌어졌으면 합니다. 그리고 최근에 나온 미국 주교회의 자료와, ‘새날 새삶’ 운동과, 성화/증거/선교를 모토로 한 수원교구의 기존 대희년 준비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지 사실 좀 고민이 됩니다. 

 

이창훈 : ‘새날 새삶’ 운동은 평소에 교회에서 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대희년과 계속해서 연결시킬 수 있는가, 이것이 대희년의 특별함을 깨우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하여 교회 일각에서 반론이 있었습니다. 곧 희년의 해방과 자유의 정신에 연결되기에는 조금 부족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 그리스도교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면 모르지만 일반인들의 의식 속에는 새로운 천년이란 개념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일반인들에게도 호소력이 있는 어떤 실천 사항을 찾아보아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외채 탕감 운동이나 사형 제도 폐지 운동, 전월세 인상하지 않기와 같은 것들을 실천한다면 일반인들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이 사회에 파급될 때 큰 반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대희년을 위한 적극적 홍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대중적인 복음 가요를 통해 일반인들에게도 대희년의 의미를 상기시킬 수 있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또 지역의 모범업소를 발굴하여 ‘대희년 모범업소’와 같은 스티커를 부착해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정정자 : 희년을 준비한다는 의미는 위에서 오는 힘을 체험하는 기쁨을 말합니다. 내가 어떠한 운동을 실천해서 기쁨을 얻는 것이라면 그것은 인간적인 만족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역할은 인류 의식의 흐름을 통하여 드러나는 이 시대의 징표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는 것이고, 쇄신을 도모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자리는 각자 처한 삶의 자리에 따라, 그리고 공동체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봅니다. 교회는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올바른 뜻이 무엇인지 그 비전을 제시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교회의 구성원들이 식별할 수 있도록 하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열망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면서 개개인이 하느님과 세상에 자신을 개방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정운 : 약간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우리 신앙의 증인들에 대한 고마움을 대희년을 맞이해서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이 우리에게 신앙을 전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여기서 대희년을 경축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한국 전쟁 전후에 북한에서 돌아가신 성직자, 수도자들, 평신자들에 대한 증언 명부가 없다는 것이 현재의 문제입니다. 병인 순교와 기해 박해 때 순교하신 분들에 대해서는 시성 시복을 하고 있는데, 왜 최근세사의 순교자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지, 그런 역사적 자료들의 수집에 우리는 그 동안 너무 게을렀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합니다.

 

 

희년의 기쁨을 모두가 누리려면

 

정병조 : 2000년 대희년 전국 대표자 회의 등에 참석해 보면 어떤 분들은 특별한 프로그램이나 구체적인 행사 계획이 없는 것에 실망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1989년 서울에서 열렸던 세계 성체 대회 같은 대형 행사들에 연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꼭 무슨 큰 행사가 있어야만 한다는 강박 관념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새날 새삶' 운동은 우리의 구체적인 일상 생활들 안에서, 체험들 안에서 대희년을 맞기 위한 것입니다. 너무 거창한 것을 기대하기보다는 작고 사소한 것들에 대한 구체적 신앙 체험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새날 새삶' 운동이라는 것도 삶의 현장에서 조금씩 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차원에서 제안된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전국 대표자 회의에서도 희년은 ‘기쁨의 해’이기에 실제적으로 기쁨을 느끼게 해 주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한국 교회가 이땅의 사람들에게 대희년을 맞이하여 구체적으로 기쁨을 주기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정운 : 기쁨은 여러 종류의 억압에서 해방될 때 느끼는 것입니다. 이런 억압 중에는 가난, 인권 탄압, 부당한 권위에 대한 굴복 등이 있을 것입니다. 대희년을 맞이하여 모든 사목자들은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 우리를 찾아오셔서 죽기까지 사랑하신 하느님의 마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 동안 우리 사제들이 봉사자로서보다는 군주와 왕으로서의 모습을 신자들에게 많이 보이지 않았나 반성합니다. 먼저 교계적으로 신자들에게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수도자들 경우에도 일선 본당에 있으면 신자들을 가르치고 훈화하는데, 인자한 수도자상보다 신자들을 관리하는 수도자상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합니다. 성직자 수도자가 하느님 마음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이것이 최우선적이어야 할 것입니다. 또 본당의 평신도 봉사자들이 자기 구역의 신자들을 사랑하고 있는지 반성하고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구역에서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면 어떻게 그 슬픔을 덜어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기쁨이 없습니다. 신자 모두는 그리스도의 마음, 하느님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교회상, 인간뿐 아니라 자연까지 포함하는 교회상, ‘새날 새삶’ 운동에 언급된 것처럼 자연의 신음 소리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나아가 민족 화해의 새 물결을 향해 부성애와 모성애를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통일 조국에 대한 탐구, 50년의 억눌린 상태를 하느님 강생의 신비와 구원의 신비로 새롭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결국 기쁨은 하느님의 사랑 안으로 들어갈 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최홍준 : 빚 탕감 문제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경제적으로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같은 6급 공무원인데 어떤 사람은 규모있게 잘 살고, 또 어떤 사람은 빚만 지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빚지지 않는 생활, 낭비하지 않고 알뜰하게 사는 생활, 그런 사람들의 생활을 발굴해서 소개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 사제들도 그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생명 존중 문제, 곧 사형 제도 페지 문제도 앞으로 범교회적 차원에서 논의되었으면 합니다. 냉담자 문제에 대해서도, 앞으로 우리 본당에 냉담자가 한 사람도 없게 하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기도와 실천으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이창훈 :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는 먼저 성사적 체험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희년은 기쁨의 해인데, 실제로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것은 내 삶과 유리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 삶에서 신앙이 왜 중요한 것인가를 일깨워서 그냥 성당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온마음을 다해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한 방안으로는 신자들에게 피정이나 교육을 시킬 때, 세례성사나 혼인성사의 체험을 다시 일깨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는 희년의 상징들, 희년초, 희년문 등이 필요합니다. 대희년 전국 대표자 회의에서 만든 희년 달력은 만들어 놓고 아무런 조치가 없는데, 다양한 분야의 대희년을 달력을 통해서 알려 주었으면 합니다. 본당들 안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날을 ‘사무장들의 대희년’으로 정해서 모든 신자들이 그에게 꽃다발 하나라도 줄 수 있게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교회는 대희년을 준비하면서 참된 기쁨을 누리기 위한 회개의 삶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국 교회가 전체 민족사 안에서 어떤 과오가 있었다면 새 천년대를 앞두고 반성하고 넘어가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족 앞에서 자신의 과오를 진정으로 뉘우치는 교회의 모습은 전체 한국인들에게 큰 울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정자 : 우리가 말하는 기쁨이란 하느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의식을 가질 때 오는 것입니다. [제삼천년기]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각자의 입장에서 대희년을 위해 노력한다면 수도자들의 봉헌된 삶 자체가 기쁨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종말론적인 삶, 실제로 기쁨을 증거하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세상에 물들어 사는 삶을 살 것인가를 결단해야 합니다. 수도자 본연의 삶을 통해, 수도회를 통해 이것이 세상에 전해지도록 해야 합니다. 또 예수님의 권위는 아버지의 뜻과 일치해서 살아나가는 삶 속에서, 그 말씀을 실제로 사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한국의 성직자들은 지나치게 관료적이고 권위적인 자세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직자들이 바뀌어야 신자들이 바뀌고, 또 세상이 바뀝니다. 교회 전체 차원에서 한국인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으로는 통일 사목, 빚 탕감, 환경 보호가 있는데, 교구마다 할 것이 아니라 서로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타종교 또는 뜻이 일치하는 한국인들과도 같이 환경을 살리는 문제, 사랑의 문화를 심어가는 일에서 같이 협동해야 합니다. 

 

이건형 : 대희년에 대해 청년들이 무관심한 이유 중에는 사회적인 현실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당장 구직과 실업을 걱정하는 청년들에게 대희년 표어나 스티커는 그리 중요하게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걱정이 너무 앞서기 때문이지요. 요즘 청년들의 마음속에는 이런 강박 관념이 있습니다. 또 현실과 신앙의 괴리에서 오는 고통도 많습니다. 그런데 청년들에게도 가장 큰 기쁨은 자기 생활에서 주님을 만나는 신앙 체험입니다. 그래서 이런 모든 근심과 걱정을 하나씩 하느님께 봉헌하는 프로그램이나 예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죽은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 생활 안에서 살아 계시는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본당마다 준비되었으면 합니다. 

 

이정운 : 저는 희년이 우리의 나그네적 정체성을 확실히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순례자인 우리를 데리고 아버지께 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순례 여정의 길이요 생명이신 분입니다. 우리가 그 길을 따르지 않으면 기쁨이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새날 새삶’ 운동에서 순례 여행을 강조해 주었으면 합니다. 대희년이 오면 한국 교회의 성지들에 신자가 구름처럼 모여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희년 프로그램 중에 성지에 대한 안내가 좀더 상세히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국 성지 담당자들이 모여서 그 동안 순례자들에게 어떻게 영성적인 갈증을 해결해 주었는가 하는 것을 점검하는 자리를 갖고 새롭게 출발하였으면 합니다. 성지는 골고타 언덕과 같은 것으로 우리 선조들의 신앙 자취가 있는 곳입니다. 대희년에는 성지에서 만나도록 배려하고, 또 24시간 고해성사를 줄 수 있는 체제를 갖추어야 합니다. 

 

이밖에도 대사에 대한 사목적 배려가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습니다. 또한 효녀 심청이가 소경 아버지를 찾기 위해서 전국의 맹인 잔치를 열었듯이, 교회도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의미에서 노숙자들을 위한 잔치 같은 것을 벌이면 어떨까 합니다. 그리고 신자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문화 행사들이 다양하게 열렸으면 합니다. 

 

정병조 : 이 밖에 교회의 다른 구성원에게 하실 말씀이나 제언이 있다면 간략하게 정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정운 : ‘새날 새삶’ 운동의 내용 중에 타종교 존중하기가 있고, 전세계적인 희년을 이루기 위한 실천 사항 중에 그리스도교 재일치 운동이 있습니다. 현대의 세속주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도 그리스도교 재일치 운동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이런 입장에서 한국 교회도 그리스도교 재일치 운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대희년은 성체성사가 중심입니다. ‘새날 새삶’ 운동이 어떻게 하면 성체성사 중심으로 펼쳐질 수 있을지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이창훈 : 대희년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떤 압박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교회 공동체가 마음의 여유를 갖는 자세로 대희년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홍준 : 대희년 관련 소식이나 자료를 더 많은 신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하는데, 그 방법 중에 하나로 주교회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좀더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합니다. 

 

정정자 : 저는 언론에 대해서 말하고 싶습니다. 교황님께서도 지적하신 것처럼 매스 미디어의 힘이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지대한 것입니다. 언론들이 진정한 양심을, 사랑의 문화를 건설하는 데 매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곧 죽음의 문화라 일컬어지는 소비, 지배, 쾌락, 소유 등을 추구하는 문화에서 나눔, 섬김, 살림 등의 문화의 고귀함을 인간 안에서 이끌어내는 데 언론은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할 것입니다. 

정병조 : 방금 이창훈 기자가 말씀하신 것, 곧 한국 교회사에 대한 반성 부분은 저희 한국 사목 연구소에서 천주교 신앙의 자발적 수용기부터 우리 민족의 해방기에 이르기까지 단계별로 나누어 금년 11월 중에 세미나를 개최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미 관련 교회 사학자 모임을 가진 바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바탕한 한국 교회의 과거사에 대한 태도 표명이 어떤 식으로든 이루어지리라고 봅니다. 

 

전체적으로 우리 한국 교회의 대희년 준비 상황을 보면, 주교님들은 열심히 뛰고 계신데 현장에서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물론 일부에서 말씀하시는 여론을 수렴하고 그것을 반영하는 것도 중요한데, 희년에 대한 의식이나 교육이 미약한 상태이기에 그만큼 어려움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한국 사회의 희년 의식이 깊지 못하고 교회도 이런 준비를 처음 하는 것이라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생산적인 대안을 도출하는 것이어야 하겠습니다. 작고 사소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일선 본당이나 교구가 이 시점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주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긴 시간 토론에 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하신 내용들이 한국 교회의 대희년 준비, 특히 일선 교구와 본당에서 활동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목, 1999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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