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2015-0618.....연중 제11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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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6-18 ㅣ No.1790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 홀수 해

코린토211,1-11      마태오 6,7-15

2015. 6. 18. 이태원


주제 : 신앙인으로서 갖는 자의식

세상일에 대하여 자신감을 갖고 살기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 자신감이라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대로, 내 마음대로 해도 다른 사람들이 내가 가진 마음과 삶의 태도를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내가 원하는 것과 정반대의 여러 가지 상황들이 내게 다가오기도 하고, 나는 전혀 관심이 없는 일인데도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일이라고 추천해주는 직업관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질문은 쉬운 일이지만, 내 몸 외부의 여러 가지 상황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적어도 나에게 그런 일을 무언(!)의 압력으로 행사하는 그 공동체에서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됩니다. 마치도 고향을 떠나기만 하면, 어떤 일이든지 내 맘대로 할 수 있고, 내가 하는 일은 어떤 것이나 다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찬란한 꿈이지, 세상에서 실현하기가 쉽지 않고 때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입니다.



신앙을 받아들였던 코린토교회사람이 온전하게 바뀔 거라고 바오로사도는 생각했었는데, 현실에서 그와 다른 모습을 보이자 바오로사도는 실망하는 내용을 써서 그들에게 편지로 보냈고, 우리는 그 내용을 독서로 읽었습니다. 사람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 것이 현실인데, 신앙의 입장에서는 현실의 삶을 생각보다 쉽게 바라보는 것일까요? 실제로, 신앙은 좀 더 단순하게 대하고, 좀 더 쉽게 분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개연성은 빼고 필연성만 보고, 우연은 빼고 당연한 것만 바라보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좋지 않은 일이나 옳지 않은 행동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면, 그것을 하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생길 일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그 일을 해놓고 후회할 일을 만드느냐고 묻는 격입니다. 신앙에서 제시하는 이론에 비교해서 세상의 삶이 옳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삶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어딘가에 있겠지만, 그 기준은 내가 아무 때나 편리한 대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음선포의 결과를 대하는 바오로사도를 우리가 얼마나 두둔할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그 일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의 몫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읽고 들은 복음말씀에서, 주님의 기도를 알려주십니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기도문과 말마다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어도, 그것으로 느낄 수 있는 하느님의 뜻이 옛날과 지금에서 얼마나 달라졌겠습니까


 

하느님을 찬미하고 공경하는 마음, 내가 그 하느님 앞에 자신감을 갖추고 나설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주시라는 것, 그리하여 우리의 이웃들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보고 그 하느님을 대하게 해주시라고 청하는 일에는 차이가 없을 일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겸손해질 수 있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청해야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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