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2015-0529.....윤지충바오로와 동료순교자들(124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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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5-29 ㅣ No.1780

<05-29> 윤지충바오로와 동료순교자들 기념일(한국복자124)

                       지혜서 3,1-9           루카 9,23-26

           2015. 5. 29. () 이태원.

주제 : 본보기가 되는 일

오늘은 작년 816일 프란체스코교황님께서 광화문광장에서 선포하신, 복자 윤지충바오로와 동료순교자들 124위 복자를 기억하는 첫 번째 기념일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본보기를 보이며 산다는 일은 참 중요한 일입니다. 그 본보기의 결과가 반드시 나에게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특별히 어른과 공동체의 대표자들, 또 남들을 이끄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흔히 강요(?)되는 일들입니다

 

이 중에서 신앙에서 본보기를 보인, 124명을 우리는 오늘 기억합니다. 가장 먼저 그 이름을 얘기하는 윤지충바오로복자는 우리나라의 땅에 천주교회가 학문으로 연구되기 시작(1784)이후에 신앙을 행동으로 드러낸 일 때문에 순교한 분으로 기억합니다. 그 사건의 이름은 1791년의 진산사건입니다.


지금은 신앙과 교리상으로 정리된 문제입니다만, 유교식의 제사에서 위패를 세우지 않는 일을 포함한 몇 가지 일을 행동으로 드러낸 것이, 세상목숨을 잃는 일이었습니다. 단순히 순교했다는 사실을 추앙(推仰,=높이 받들어 우러러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분들이 보였던 삶을 대하는 진실한 모습을 우리는 지금의 세상에서 어떻게 드러낼 것인지도 판단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교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 땅에 살면서 맞이하고 기억할 제사(祭祀)에서 위패를 없앤다는 것이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우리가 본보기를 생각하는 사람들보다 나중에 사는 사람으로서 나보다 먼저 살았던 사람들을 기억하는 방법 중에, 그분들에게 도움이 될 일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습니다. 결국 그 말은 내가 하는 행동은 나를 위한 것이라는 아주 명확한 진리를 나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드러내는 것이 바로 기억의 본래의미인데, 이렇게 명확하게 자신의 몸으로 얼마나 표현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순교자들은 세상의 삶을 무시하고 오로지 하느님나라에 태어나기를 목표로 삼았을까요? 우리들이 순교자는 아니니, 그 사정을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일은 후대의 사람들이 선대에 살았던 사람들을 기억하는 방법이니, 반드시 옳은 판단은 아닐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거나 그 십자가와 가까운 거리를 두고 사는 일이 절대로 쉽지도 않고, 세상의 삶을 밝게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그 사정이 신앙인이 세상에서 드러내야 하는 삶은 힘들다고 말하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좋은 본보기도 남길 수 있고 또 나에게도 이익일 될 수 있는 세상의 일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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