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2015-0526.....연중 제8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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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5-26 ㅣ No.1777

연중 제8주간 화요일 - 홀수 해

집회 35,1-15                 마르코 10,28-31

2015. 5. 26. 이태원, 필립보-네리사제 기념일

주제 : 봉헌의 문제

사람의 생활은 돈 문제에 대한 대처와 대응으로 삶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신앙을 먼저 말하거나 이야기로 꺼내야 할 시간에 돈 얘기로 시작한다는 게 맘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의 삶을 해석하는 방법이나 기준이 된다면 충분히 말할 근거는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예물을 드릴 때, 어떤 자세를 드러내는지 그 태도를 생각하면 좋다는 얘기입니다. 하느님이 절대로 세상의 재물을 즐겨 받으실 이유가 없다고 말할 수 없으니, 하느님 앞에 빈손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나가는 것을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에 대한 말씀이 집회서의 오늘 독서부분에 나왔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셨습니까?


하느님은 인간의 정성에 일곱 배로 베풀어주신다고 했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하는 얘기가 아니고 그 옛날의 구약성경의 집회서를 쓴 사람의 독백일까요? 어떻게 생각하든지 그건 우리의 자유입니다. 그 판단에 따라 우리의 삶은 달라질 것입니다.


오늘 읽고 들은 마르코복음에도 봉헌의 문제가 나왔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다는 베드로사도의 주장에 예수님은 백배가 넘는 결실과 영원한 생명을 말씀하십니다. 이것 역시도 예수님만의 독백일까요? 신앙인으로 봉헌을 대하는 자세가 남달라야 할 일입니다

 

실제로 내가 살아있는 세상에서 무엇을 낼 때, 그것을 반드시 돌려받는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은행이나 일반적인 상거래(商去來)에서도 이자는 10%를 넘기가 힘든데, 신앙에서는 700%10,000%를 아주 쉽게 말합니다. 어떻게 해석하시겠습니까? 물론 신앙을 중심으로 하는 일과 세상을 중심으로 하는 일이 언제 어디서 연결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보장이 없으니 세상을 기준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신앙에서 말하는 내용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게 달리 대하는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바꿀 수 있겠습니까? 누가 가능한 방법을 말해줄까요?


오늘 기념하는 성인인 필립보-네리사제는, 1500년대 전반기, 종교분열시기에 활동했던 분이고, 고해성사를 말하고 실천했던 분으로 알려진 분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다가서는데 고해성사가 왜 필요한지를 가르쳐준 분이지만, 이렇게 하는 일도 세상에서 아주 힘들어지고 형식적인 일이 된 세상입니다. 세상의 모습을 보고 나쁘다거나 좋다거나 하는 판단은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그것을 대하고 생각하는 개인 각자의 삶이 중요할 뿐입니다.


내가 하느님께 뭔가를 바쳤을 때, 그에 상응하거나 내가 바친 것보다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이 놀라운 사실을 여러분은 어떻게 인정하겠습니까? 제대로 된 열매의 맛은 어떠해야 하겠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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