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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진리를 찾아서: 신비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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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1-20 ㅣ No.1706

[진리를 찾아서] 신비 교육

 

 

삶에서

 

얼마 전 ‘오! 마이 파파’라는 영화를 보았다. 부산에서 소년의 집과 소녀의 집을 설립하셨으며, 가난하고 버림받은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셨던 가경자 소 알로이시오 몬시뇰의 생애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린 영화이다.

 

살아생전 옷 한 벌과 구두 한 켤레로 가난하게 사셨던 신부님의 모습은 영화 내내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었다. 가난한 사람 앞에서 더없이 가난하셨던 그분의 삶은 당신이 세우신 마리아수녀회를 통해 지금도 필리핀, 멕시코, 브라질, 과테말라, 온두라스에서 전 세계 12만 명의 가난한 아이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몬시뇰은 루게릭병(근위축성측삭경화증)으로 3년의 시한부 판정을 받으셨다. 한마디 하시기가 그렇게 힘드셨지만 영화에서 보았던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인터뷰 장면은 감동이었다. 몬시뇰은 자신의 병을 ‘사랑의 표징’이라고 말씀하셨다. 다른 무엇보다도 당신의 병을 ‘표징’이라 칭하셨던 이 말씀이 내게 참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의사소통의 여러 표징과 상징으로 어우러져 있다. 말, 행동, 그림, 예의범절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일상에서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가짐을 밖으로 드러내는 도구를 활용하여 서로 대화한다. 그리스도교의 성사도 이러한 가시적인 표징과 상징으로 짜여있다.

 

“성사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시고 교회에 맡기신 은총의 유효한 표징들로서, 이 표징들을 통해 하느님의 생명이 우리에게 베풀어진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131항). 그런데 이렇게 표징과 상징을 설명하면서 우리는 성사가 드러내는 것보다는 ‘가시적’, ‘보이지 않는’ 등의 표현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성사는 표징이다. 단순한 의사소통의 표징이 아니라, 토마스 성인이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표징이고, 이를 통해 지금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은총을 보여주는 표징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130항 참조).

 

오늘날 신앙인들은 표징은 잘 볼 줄 알지만 베풀어진 하느님의 은총은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성가, 성화, 음악, 언어, 행위를 성사 안에서 가꾸고 풍요롭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주님께서 주시려는 은총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

 

표징은 주님의 죽음과 부활로 이루어진 구원의 은총을 실제로 베풀어준다. 그래서 알로이시오 몬시뇰도 자신의 병을 표징이라고 부르셨다. 그것도 사랑의 표징이라고…. 이처럼 표징과 상징을 통해 그리스도의 신비를 이해하는 것이 ‘신비 교육’의 중요한 과정이다.

 

 

살펴보기

 

신비 교육의 과정을 잘 설명한 문헌은 2007년에 성체성사를 주제로 개최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후속 문헌으로 발표된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권고 「사랑의 성사」이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 참석한 교부들은 신자들이 예식주의에 빠지지 않고 한결같이 성찬 신앙을 익히고 실천할 수 있도록 신비 교육의 특징을 지닌 교리교육 방법을 만장일치로 권고하였다. 특히 성체성사의 많은 상징과 표징은 신비 교육의 효과적인 재료가 될 수 있다.

 

전례는 본성상 신자들이 거행되는 신비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 교육적 효과를 발휘한다. 그래서 주교대의원회의에 참석한 교부들은 “성찬례에 관한 최고의 교리교육은 잘 거행된 성찬례 자체”라고까지 말하였다.

 

교황 권고에서 언급하는 신비 교육의 세 가지 요소는 다음과 같다(「사랑의 성사」, 64항 참조).

 

첫째, 신비 교육은 살아있는 전통에 따라 예식을 우리 구원의 사건에 비추어 해석한다. 예컨대, 우리가 날마다 긋는 십자성호는 그리스도께 속하게 될 사람이 받는 그리스도의 날인을 가리키는 것이며, 당신 십자가로 우리에게 얻어주신 구원의 은총을 의미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235항 참조).

 

바오로 사도는 그의 서간 대부분에서 십자가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갈라 6,14). 이처럼 신비 교육의 첫 번째 단계는 상징과 표징을 구원 사건에 비추어 해석하는 것이다.

 

둘째, 신비 교육은 전례에 담긴 표징의 의미를 제시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상징과 표징의 전통적 의미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또한 고도의 기술 발달은 표징과 상징에 대한 지각 능력을 상실할 위험을 가져온다.

 

물, 기름, 성가, 음악, 성화 등 이러한 표징들은 시대가 변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무릎을 꿇어 경배하거나 복음을 들을 때 일어서는 행위, 고개를 숙이는 절과 합장한 손 등과 같은 상징에 대한 감각을 일깨우고 가르치는 것이 신비 교육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신비 교육은 개개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신비 교육의 최고의 성과는 거행되는 거룩한 신비를 통해 자신의 삶이 점차 변해간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는 일입니다.” 결국 신비 교육은 거룩한 신비를 마음에 새겨 자신이 변해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를테면 ‘십자성호’를 그을 때 우리는 우리를 위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주님께, 겸손하고 연약한 사랑을 통해 전지전능하심을 드러내시는 성부께 세상의 그 어떤 권세보다도 더 강한 분이심을 공적으로 고백하는 것을 마음에 새길 수 있어야 한다.

 

신비 교육의 뿌리는 우리를 변화시키는 하느님의 능력에 있다. 그리고 그분의 능력은 우리의 의식 속에 감추어져 있다. 신비 교육을 통해 우리는 우리 마음과 정신에 감추어진 그분의 능력을 드러내어 자신의 삶을 거룩함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전통적이고 거룩한 사물을 통해 물질적인 것에서 비물질적인 것으로, 일시적인 사건에서 영원한 신비에로 나아가야 한다.

 

 

결심하기

 

삶의 변화를 이끄는 신비 교육의 결과는 결국 변화되겠다는 결심으로 나아가 신비를 체험하는 것이다. 십자성호에 대한 신비 교육을 통해 우리는 성호를 그을 때마다 의미 없이 작은 몸짓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서 가슴으로, 어깨에서 어깨로, 십자표가 우리의 생각, 태도, 영혼, 육신을 어떻게 포함하며 성화시키고 정화시키는지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도유예식을 체험한 우리는 정화되고 강화된 표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과 성령의 충만에 참여함으로써 삶 전체에서 ‘그리스도의 향기’(2코린 2,15)를 풍길 수 있어야 한다. 신비 교육은 가시적 상징을 통해 구원 사건의 해석을 바탕으로 변화된 삶으로 나아가도록 우리를 이끌어준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교적 희망을 사람들에게 증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시 소 알로이시오 몬시뇰의 삶을 돌아보자. 그분은 당신의 병도 사랑의 한 표징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평생을 가난하고 소외받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총을 드러내셨다는 점에서 참으로 성사적이라 볼 수 있다. 그분의 삶이 표징이 되어 당신의 사랑을 전해주시려는 하느님과 인간이 서로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병을, 고통을 하느님 사랑의 표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분이 훌륭한 것은 당신 스스로가 주님의 도구가 되어 스스로 표징이 되셨다는 점이 아닐까? 작은 고통에도 불평불만만 하며 회피하려는 나는, 아직 작은 표징도 될 만한 자격이 없는 것 같아 부끄럽다.

 

* 박종주 베드로 - 부산교구 신부. 오랫동안 신학교에서 교리교육을 가르쳤고 지금은 부산 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장으로 일하며 차별화된 가톨릭 평생교육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7년 1월호, 박종주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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