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원주교구 성지순례길: 하느님만 바라보고 걷는 길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12-21 ㅣ No.982

[순례의 길 떠날 때] 원주교구 성지순례길

하느님만 바라보고 걷는 길


원주교구에는 성지와 유적지가 많이 있습니다. 성 장주기 요셉과 순교자 황사영 알렉시오, 그리고 푸르티에 신부 등 순교자들이 살았고 증거자인 최양업 신부가 묻혀있는 배론, 순교자 남상교의 유택지인 묘재, 순교자 최해성 요한이 살았던 서지, 순교자 김강이 시몬 등이 순교한 강원 감영, 그리고 잘 알려진 유적지로 풍수원성당과 용소막성당이 있습니다. 이곳들을 잇는 순례길도 있습니다.


남종삼 성인이 걸었던 길

성 남종삼 요한이 마지막으로 걸었던 묘재에서 배론까지의 순례길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중앙고속도로 신림 IC에서 5번 국도를 따라 제천 방향으로 6km쯤 가면 왼쪽에 순교자 남상교 아우구스티노의 유택지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배론으로 가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묘재에서 제천천을 건넌 뒤 구학산 자락인 약 400m 고개를 넘으면 옥전리 노목계곡이 나옵니다. 다시 주론산 자락인 약 500m 고개를 넘으면 배론에 도착합니다.

오래 전 이 길로 많은 이들이 걸었지만, 지금은 다닌 길의 흔적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다른 하나는 제천천을 따라 형성된 5번 국도를 제천 방향으로 약 15분 정도 가면 탁사정을 지나 오른쪽으로 배론성지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오고 약 3.4km 가면 성지에 도착합니다. 대략 2시간 정도 걸립니다. 몇 년 전부터 기차 순례가 이어지고 있는데 구학역에서 성지까지 약 4km를 도보순례를 하는 것입니다.

1866년 1월 의금부 도사가 제천시 봉양읍 학산리 묘재에 있는 남종삼의 부친 남상교의 집에 들이닥쳤습니다. 남종삼 성인은 이미 그곳을 떠난 뒤였습니다. 그는 부친께 인사를 드린 뒤 배론신학교의 신부님을 찾아뵙고 하루를 머물렀습니다.

그는 훗날 의금부 심문에서 “올라올 때에 자고 온 배론 이경주 빈첸시오의 집에서 푸르티에, 프티니콜라 신부를 만나본 적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제천에 내려올 때마다 여러 차례 찾아가 만난 적이 있는 두 신부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입니다.

이때의 만남은 비장했을 것입니다. 서울로 가게 되면 이후 닥쳐올 일은 예상했을 것이고, 자신의 신앙과 교회를 위하여 순교를 각오한 그에게 두 신부님은 혹독한 심문 속에서도 신앙을 굳건히 지키도록 격려해 주었을 것입니다. 결국 그는 고양 땅에서 체포되어 1월 16일 옥에 갇혔다가, 1월 21일 서울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성 남종삼 순교자가 걸었던 그 길을 오늘도 걷고 있습니다. 늙으신 부친을 두고 떠나야 하는 인간적 괴로움도 있었을 테지만, 신앙 속에 살았던 부친을 하느님께 맡겨 드리면서 신학교로 향하였을 것입니다.

박해로 말미암아 자신의 신앙이 약해질 위험에 처할 때, 주저없이 신앙을 굳건히 하고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을 확고히 하고자 신학교 신부들에게 찾아갔던 그 길을 걷는 것입니다. 공주 감옥에서 순교한 부친과 자신의 신앙을 지도해 주었던 두 신부에게서 자신이 걸어가야 할 그 길이 국가와 신앙을 위한 바른길이었음을 확인받았을 것입니다. 그랬기에 감옥 안에서 모진 심문 속에서도 당당하게 신앙을 증언하며 순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순교자 최해성 요한이 걸었던 길

다른 순례길은 ‘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 대상자 가운데 한 분인 순교자 최해성 요한이 걸었던 길입니다.

그는 원주시 부론면 손곡2리 서지에 살면서 회장으로서 교우촌의 중심이었습니다. 성사의 은총을 받을 때 말할 수 없는 열심과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충만했던 그는 1839년 1월 말 체포되었습니다.

쇠채찍을 휘두르는 포졸들에게 매를 많이 맞아 온몸이 상처투성이였고 몸을 가누기도 힘겨워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영혼의 눈으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갈바리아산으로 올라가시는 모습을 주목하였습니다. 그러자 잡혀가는 길인데도 힘과 활기가 용솟음치는 것이었습니다.

감옥에서 “원주 고을을 통째로 준다고 해도 하느님을 배반할 수 없다.”고 고백했던 그는 결국 그해 7월 말 참수로 순교하였습니다. 원주 감영은 가혹한 형벌로 김강이 시몬(1815년)과 최 비르지타(1839년)가 순교한 곳입니다.

순례길은 최 요한이 교우촌에서 체포되어 원주로 끌려가는 그 길을 따라 걷는 길입니다. 서지에서 시작해 49번 국도를 따라 문막읍 후용리, 포진리, 문막리를 지나고, 다시 42번 국도를 따라 만종리를 지나면 원주역 사거리가 나옵니다. 여기서 원일로를 따라가면 그가 갇혀 문초를 받았던 원주 감영이 나옵니다. 이 길은 순교를 갈망하였던 그가 걸었던 마지막 길입니다. 그가 믿고 따랐던 예수님처럼 온몸에 매를 맞고 힘겨워하면서 걸었던 십자가의 길이기도 합니다.

이 길은 세상에 살면서 당할 수 있는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예수님을 향한 시선을 두었던 순교자들이 걸었던 길입니다. 그는 예수님처럼 순교하였고, 그의 신앙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오늘날 이 길을 걷는 우리들의 가슴에 남아있는 것입니다.


선조들이 걸은 길을 오늘 우리가 걷는다

또 다른 순례길은 지난 11월에 원주교구 횡성지구 신자들이 걸은 풍수원성당(강원도 지방문화재 69호)에서 배론성지까지의 길입니다. 순교자 124위와 증거자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시성을 위해 기도하면서, 또한 성체성사의 정신인 보속, 희생, 나눔을 실천하고자 걷는 것입니다.

첫 주에는 124위 가운데 원주에서 순교한 ‘김강이 시몬의 날’로 정하여 풍수원에서 횡성성당(등록문화재 371호)까지, 둘째 주에는 ‘순교자 최해성 요한의 날’로 횡성성당에서 원주 감영과 원주 원동성당(등록문화재 139호)까지, 셋째 주에는 ‘순교자 최 비르지타의 날’로 원주에서 용소막성당(강원도 지방문화재 106호)까지, 넷째 주에는 ‘최양업 토마스의 날’로 묘재를 거쳐 배론성지까지 걷는 길입니다.

이 길은 신앙의 선조들이 수없이 걸었던 길입니다. 하느님만을 바라보고 신앙을 충실히 살면서 교회를 지켰던 그들의 삶과 신앙을 본받으려고 걷는 것입니다.

* 여진천 폰시아노 - 원주교구 배론성지 전담신부.

[경향잡지, 2011년 12월호, 글 여진천, 사진 제공 배론성지 · 서울 개포동본당]


1,706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