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4일 (월)
(백)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그의 이름은 요한이다.

수도 ㅣ 봉헌생활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거룩한 열정의 수녀회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2-28 ㅣ No.83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거룩한 열정의 수녀회 (상)

 

 

거룩한 열정의 수녀회 회원들은 창립자 정신을 본받아 먼저 하느님의 참된 일꾼들이 되고자 힘쓰며 그리스도의 사랑 실천에 앞장서며 살아가고 있다. 사진은 서원식 장면.

 

 

1887년 복자 안니발레 마리아 디 프란차 신부에 의해 이탈리아에서 창설된 '거룩한 열정의 수녀회'는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그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는 마태오 복음 말씀을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수도회 설립의 은총, 카리스마(carisma)로 받아들이고 있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과 치열한 생존경쟁 사회에서 낙오된 사람들, 정신적 소외감으로 고립되어 사는 사람들, 그리하여 그 고귀한 삶을 피기도 전에 포기하는 사람들을 초대해야 할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자들이 부족한 상황을 수도회가 펼쳐나가야할 가장 기본 소명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곧 '청하여라(Rogate)'로 시작되는 그 말씀은 거룩한 열정의 수녀회 회원 모두에게 명령이자 권고이며 하느님 나라 확장을 위해 일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끊임없는 간청으로 이어진다. 

 

이와 같은 영성으로 회원들은 청빈 정결 순명의 서원과 함께 성소를 위한 기도의 사도직으로서 청하여라 (Rogate)를 제4서원으로 삼고 있다. 

 

'청하여라' 영성은 거룩한 열정의 수녀회의 고유한 색깔이다. 사도직은 그 시대의 상황이나 요구, 교회의 필요에 의해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겠지만 추구하는 기본 영성에는 변함이 없다.

 

창립자는 이와관련 "성소위기는 기도로 해결해야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명하고 지적해 준 것이기 때문에 틀림없는 치료약이며 구제책입니다. 성소는 은총처럼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라고 설파했다. 회원들은 착하고 부지런한 일꾼은 자신들의 편안함이나 안위를 추구할 틈이 없다는 것, 즉 그들의 삶은 오직 하느님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을 위해 내어주는 삶이며, 'Rogate'를 기본 정신으로 삼아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의 성심과 하나 되어 거기서 힘을 얻고 함께 살아가는 회원들과 이웃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실천하며 거룩한 열정의 수녀회의 소명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1851년 이탈리아 메씨나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1878년 3월 16일 요셉 과라니 대주교에 의해 사제로 서품된 안니발레 신부는 서품 후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성심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힘없고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하느님과 이웃」이라는 이상을 실현시키며, 빈민가인 아비뇨네 사람들을 위해 헌신적 삶으로 복음을 전파했다.

 

성소의 소중함을 가슴깊이 간직한 채 평생을 가난한 이들과 함께 했던 그는 성소의 보석은 구체적인 희생과 인내, 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가 수반될 때 그 찬란한 빛을 발한다는 것을 삶을 통해 제시했다.

 

회원들은 이러한 창립자 정신을 본받아 먼저 하느님의 참된 일꾼들이 되고자 힘쓰며, 사도직 활동을 통해 다른 이들이 각자의 부르심에 합당한 응답을 드리며 좋은 일꾼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또한 교회가 꼭 필요로 하는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끊임없이 하느님께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안니발레 신부는 1927년 76세를 일기로 선종했으며 1990년 10월 7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이번 5월 시성식을 앞두고 있다. [가톨릭신문, 2004년 5월 2일, 이주연 기자]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거룩한 열정의 수녀회 (하)

 

 

거룩한 열정의 수녀회 한국 분원은 유치원 운영과 구립 어린이집 위탁 교육, 결손 가정의 아이들을 위한 가족 공동체 등 봉사를 계속하며 소명에 임하고 있다.

 

 

거룩한 열정의 수녀회 창립자 안니발레 신부가 수도회 역사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어느날 우연히 닥친 은총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고 하느님 섭리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김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신학교 과정중 부제 시절 눈먼 거지 '장코네'를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이 만남은 안니발레 신부 자신의 특별한 소명을 명확하게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이를 통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다. 

 

서품 즉시 모든 사목활동을 포기하고 '장코네'가 살고 있던 '아비뇨네' 빈민가로 들어간 안니발레 신부는 하느님을 모르는 불쌍한 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쳤으며, 온갖 위험에 무방비 상태로 방치된 소녀들을 위해 고아원 설립 작업을 하면서 이를 도울 수 있는 수도회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안니발레 신부는 이 과정에서 목자 없는 양을 일컬은 복음 말씀을 발견하고 신앙적인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 목자없는 양같이 버림받은 채 무기력해져 있고 방황하는 수백만명의 군중들 앞에 과연 이 극소수의 구원받은 고아들과 가난한 이들은 무엇인가? 이 질문 앞에서 나는 보잘 것 없는 내 힘의 한계, 내 능력의 초라함을 생각하곤 했다. 끊임없이 하나의 해결점을 모색하던 중에,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말씀을 발견하게 되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그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 그때 나는 모든 선한 일들, 영혼을 구원하는 일들의 비밀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때 부터 그의 끊임없는 선교 활동 즉, 주 하느님께서 많은 성직자들을 이 세상에 보내 주시도록 교회와 하느님의 백성이 다 함께 기도와 일상의 희생을 바치게끔 하는 부단한 노력이 시작된다. 결국 그의 염원은 '거룩한 열정의 수녀회'(1887)와 '로가찌오니스티 수도회'(1897) 창설로 이어진다. 

 

안니발레 신부는 또한 1900년 성소를 위한 기도에 동참할 사람들을 모아 '성소후원 청원회'를 조직, 젊은이들이 더 적극적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 활동은 교황 레오 13세를 비롯한 역대 교황으로부터 격려를 받았으며, 한 주교는 "안니발레 신부는 우리 모두가 기도하도록 무릎을 꿇게 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수도회는 그후 세계 16개국으로 뻗어나가 지역 교회와 상황이 필요로 하는 것에 응답하는 참된 일꾼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계 곳곳 각 분원에서의 사도직은 학교, 유치원, 농아자들을 위한 학교와 기숙사, 고아원, 미혼모의 집, 대학생 기숙사, 피정센터 운영 등이며 교리교육, 의료활동, 무료급식 활동도 벌이고 있다.

 

한국 진출은 수도회 창설 100주년을 맞는 1986년 이뤄졌다. 이후 한국 분원은 유치원 운영과 구립 어린이집 위탁 교육, 결손 가정의 아이들을 위한 가족 공동체 그리고 주말 개인피정과 젊은이들을 위한 기도 모임의 사도직, 그리고 교리교육 등 봉사를 계속하며 소명에 임하고 있다. 남자 수도회 로가찌오니스티 수도회는 2003년 1월에 한국에 진출, 한국 이탈리아 필리핀 출신 신부 세명이 서울서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한편 안니발레 신부는 오는 5월 16일 교황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된다. [가톨릭신문, 2004년 5월 9일, 이주연 기자]



547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