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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12주일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강론자료

부활 7 주간 화요일.....2006.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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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6-05-30 ㅣ No.736

 

부활 7 주간 화요일   

              사도행전 20,17-27          요한 17,1-11ㄱ

      2006. 5. 30. 무악재

주제 : 내가 바라보는 나의 미래

사람이 자기에게 다가올 미래를 안다면 그 느낌이나 삶의 태도가 어떨까요?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도 사실은 그 가능성이 없거나 적기 때문에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제가 말씀드리는 이 순간, 아니 그 전에 우리의 삶이 어떤 모양으로 갈지, 그리고 사람의 만남이 어떤 결과를 맺을지 모두 안다면, 아마도 제대로 움직일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500년전에 독일에서 시작된 ‘종교분열’사건에서 등장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세상 모든 일을 하느님의 계획과 뜻대로 움직이니 우리가 아무리 용빼는 재주를 실천해봐야 하느님의 계획을 바꿀 수 없다, 모든 일은 정해진 하느님의 계획대로 움직인다는...예정론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을 해석하는 방법은 그것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기의 미래를 본 사람으로 오늘 독서에는 나옵니다.  자기가 선포한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받아들인 ‘에페소 교회’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서글픈 이별의 소리를 전합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나를 다시 볼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거다....내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투옥과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는 미래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미래의 모습과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것만 알 수 있는 사람은 없고, 우리 삶에 활기를 주는 것만 선택해서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입니다.


선거도 하기전에 그 결과를 미리 짐작할 수 있다면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 의미 없겠지요?  월드컵을 하기도 전에 그 결과가 이미 다 나와있는 것이라면 사람이 돈을 쓰고 목이 터져랴고 소리를 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을 의미하는 ‘영원한 생명’을 사는 것도 마찬가지의미일 것입니다.  하느님에게서 받을 영원한 생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세상에서부터 실현되고 있는 것이지, 이 세상의 삶을 다 마치고 숨을 내쉬고 다시는 들여마실 수 없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기도에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이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보다 앞선 시대에 사용했던 말들에, 안다는 것은 행동하는 것이요, 실천한다는 의미도 있어던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우리 삶의 모습은 조금이라도 더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미래를 알고, 다가올 앞날을 안다는 것이 우리 삶에 좋게 작용하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게 알고자하는 마음이 좋은 뜻으로 결과를 맺을 수 있도록 해야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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