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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12주일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강론자료

부활 5 주간 수요일.....2006.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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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6-05-16 ㅣ No.731

 

부활 제 5 주간 수요일    

             사도 15,1-6           요한 15,1-8

     2006. 5. 17. 무악재 

주제 : 하느님의 규정과 사람의 이해

사람은 세상에 살면서 수없이 많은 규정과 규칙을 정합니다.  통치하는 사람들의 입장이라면 사람들의 생각을 자기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 제한하고 다스릴 법을 생각할 것이고, 그 통치를 받는 사람이라면 자기네들 삶을 규정한 법의 맹점을 찾아내서 빠져나갈 구멍을 생각할 것입니다.  재벌의 행동을 비판하는 어제 신문 내용을 보고 생각한 일입니다.  어떤 기업이 상속세를 1조원가량 낸다고 했더니, 세금을 낸다는 것과 사람으로서 해야할 올바른 길을 걷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소리도 있었습니다.  또 하나의 광고에는 ‘여러분도 혹시 나라에서 정한 세금에 불만이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당입니다’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나도 혹시 그런 사람들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독서 첫머리에는 바오로와 바르나바 사도의 업적을 비난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내려왔다는 사람들’ 몇이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세는 사람이었고 그 관습을 따르지 않으면 하느님의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소리는 ‘하느님의 구원을 사람의 마음대로 조절한다는 소리이니 그 자신감이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의 업적이 드러나는 것을 사람이 맘대로 할 수 있을까요?  저도 이렇게 말씀드립니다만, 교회역시도 그런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교회라는 공동체 구조에서 하느님의 업적이 드러나는 것을 맘대로 할 수 있느냐는 비판도 있습니다.  물론 교회공동체가 응답하는 소리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비판을 의미없는 것으로 여깁니다.


하느님은 과연 우리를 위해서 축복이라는 보따리를 움켜쥐시고 누가 먼저 얻어갈 수 있는 자격이 있을까하고 바라보실까요?  하느님은 축복을 내려주시는 분이기는 하지만, 그것도 우리 삶의 모양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보다 정확한 의미라면, 교회는 하느님의 축복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의 축복을 얻기 위한 방법을 얘기하고 삶의 자세를 알려준다고 하는 편이 옳은 설명일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들었던 복음과 같은 내용이기는 합니다만, 우리가 자칫 잘못 생각한다면 나뭇가지로 살면서 줄기에 붙어있지 않고서도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우기는 것과 같은 태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문제는 사람이 하는 생각이 과연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겠느냐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말하는 내용은 하느님의 축복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축복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서게 하기 위한 삶의 모양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할 일입니다.


우리 생활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하느님의 축복을 잠시 생각할 수 있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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