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2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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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자료

마태오 복음사가 축일.....2006.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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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6-09-21 ㅣ No.819

 

마태오 복음사가 축일 [0921]

              에페소 4,1-7.11-13     마태 9.9-13

      2006. 9. 21. (목). 무악재

주제 : 하느님 안에 하나

우리는 세상살이를 힘겹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정말로 힘든 것도 있습니다.  한때는 경제가 활성화가 돼서 속된 말로 돈을 물 쓰듯 한다고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라면 아마도 올림픽이 열렸던 때를 전후해서 그로부터 얼마간의 시간이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가다 사람들이 가진 콧대를 꺾어놓으려는 듯이 IMF가 닥쳐왔고, 한동안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며 복잡하게 씨름했습니다.  이제는 그런 씨름을 뒤로 하고, 다시 청사진을 멋있게 그립니다만, 그 꿈의 실현을 위해서는 바꾸고 실천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는 일들입니다.

오늘은 마태오사도 복음사가 축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오늘의 그의 축일이라는 것과 그의 이름이 적혀서 남은 복음서가 있다는 것, 또 한 가지 순교했다는 전승이 있다는 것 정도입니다.  세상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이 모두 남는 것은 아닙니다만, 축일을 기억하는 의미에서 본다면 마태오사도가 조금은 슬프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그러나 마태오사도가 가졌던 자세는 오늘날의 우리가 하는 일처럼 명예나 이름이 드높여지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예수님의 행적을 전하는 복음서를 정성껏 기록했다는 것이었다는 생각도 가능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내용은 마태오 자신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던 순간을 기록합니다.  자신은 세리였다는 것이고, 그가 예수님의 제자로 선택받았을 때, 주변에 있었던 힘 있던 사람들은 그 선택을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을 인정했을 마태오사도였기에 복음서를 더 정성껏 기록했을 거라는 말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변합니다.  흔히 열두 번은 변한다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변한다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만, 마태오사도처럼 변할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세금을 걷는 사람으로서 이스라엘 동족에게서 비웃음을 샀던 사람이 사도로 선택된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생각은 무엇이겠습니까?  한 사람의 변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하느님은 아시겠지만, 사람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쉽사리 변하는 세상에서 많은 것을 판단하고,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면서 삽니다.


하느님의 뜻을 세상에 실천하는 모양으로 하느님은 여러 가지 직분을 두셨다는 바오로사도의 생각은 우리가 다양한 세상에서 남을 판단하고 구별하는 일을 서둘러 할 것이 아니라, 각자의 위치와 환경에 맞추어 합당하게 살 방법을 찾으라는 말에 해당할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높은 직책을 버리고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였던 마태오사도가 했던 것처럼, 하느님의 초대를 들을 수 있어야 할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다면, 우리는 그 소리를 어디에서 들을 수 있겠습니까?  잠시 묵상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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