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2일 (토)
(녹)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강론자료

한국순교자대축일.....0920이동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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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6-09-16 ㅣ No.815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0920]

              지혜서 3,1-9     로마서 8,31ㄴ-39    루가 9,23-26

      2006. 9. 17. (주일). 무악재.

주제 : 신앙을 증거하는 일

 

찬미 예수님!

오늘은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신앙을 증거하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으면서 신앙을 드러내셨던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축일입니다.  우리보다 앞서 신앙인으로 살았던 분들을 한 번 더 기억한다는 것이 우리의 삶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면, 오늘 우리가 하는 행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말로는 신앙을 기억하고 되새겨야 한다고 하기 쉽지만, 그 행동을 하는 우리의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150년 혹은 200년 전에 살았던 분들과 우리의 삶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게 될 것입니다.


순교란 세상에 하나뿐인 자기 목숨을 기꺼운 자세로 내놓는 일입니다.  순교란 길을 가다가 갑작스레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요즘 세상의 사건이나 사고와는 그 본질 면에서 다릅니다.  무엇이 다른 점이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아도, 순교자로서 살았다는 것은 송아지가 뒷걸음질하다가 쥐 한 마리 잡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좀 더 고귀한 일입니다.


세상에 자기 목숨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누구라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목숨이라는 것인데, 오늘 기억하는 우리의 순교자들은 왜 그렇게도 귀중하고 의미심장한 목숨을 내놓았을까.......오늘 우리가 묵상할 일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당신을 따르는 조건을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순교자로 살아갈 수 있는 말씀도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여러 차례 들었을 말씀이기에 새로운 느낌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말로 여러 차례 들어서 복음내용을 기억한다는 것과 실제 삶으로 드러낸다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서 말씀하신 두 가지 조건은, ➀자기 자신을 버리는 일, 즉 자기 자신만을 위한다는 멋있는 환상을 부정하는 일과 ➁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십자가를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부정한다는 말은 어떤 의미이고, 삶의 십자가를 기꺼운 자세로 받아들이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자기 얼굴이 못생겼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비록 다른 사람에게서 못생겼다는 소리를 들 수도 있다고 하지만, 자기 기대와는 다른 판단을 듣는다고 해도 못생겼다는 소리를 좋게 받아들일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자기 자신을 버리고 부정하라는 예수님의 요구는, 우리가 세상에서 아주 평범한 삶을 살더라도  온전히 세상의 기준만을 따라서 살아서는 곤란하다는 말씀으로 알아들어야 할 일입니다.  거기에다가 자기 삶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요구도 재주껏 몸과 마음이 편한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칭찬을 얻으며 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때로는 우직하고 어리석게 보인다고 하더라도 올바른 길을 걸어가라는 이야기로 알아들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기억하는 우리나라의 순교성인은 백 세분이고, 순교하신 분들은 일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공경하는 성인들의 숫자를 셈하는 일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만, 그 분들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듣고 배울 것은 어떤 것인지를 구별하고 본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나와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는 선인과 악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지혜서의 말씀도 같은 입장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의인들의 영혼이 정말로 하느님의 손 안에 있어서 아무런 고통을 겪지 않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삶에 다가오는 힘겨움은 세상에서 선인과 악인을 구별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가 선인으로 살아간다면, 삶에 다가오는 같은 역경과 곤란이라고 하더라도 삶의 태도가 다르다면 역경과 곤란으로만 오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삶에 대해서 상대적인 입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갖는 자세에 따라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세상의 힘도 상대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사실입니다. 


올바른 신앙인으로 살아가겠다는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바오로사도의 확신을 배워서 우리가 삶에서 실천할 수 있다면, 우리가 맞이하는 세상의 모습을 우리는 좀 더 다르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세상을 선하게 대한다면, 그 세상은 나에게 선한 얼굴로 다가올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나의 경쟁자로 생각한다면, 만나는 사람들 모두를 우리는 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도 그 사정에 대한 것은 하느님에게나 다른 신앙인들에게 똑같은 모습으로 적용될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 조상들 가운데 순교로 하느님의 영광을 증거 하신 분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사랑의 주 하느님, 저희 삶을 바르게 이끌어주시고 저희가 당신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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