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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자료

부활 2 주간 목요일.....2006.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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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6-04-27 ㅣ No.717

 

부활 2 주간 목요일   

              사도행전 5,27-33           요한 3,31-36

      2006. 4. 27. 무악재.

주제 : 사람의 생각-하느님의 뜻

좋은 싫든 간에 땅에서만 살아야하는 우리는 그렇게 밖에 살 수 없다는 일에 대해서 불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물론 그런 불만을 갖는다고 해서 현실이 달라질 가능성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불만을 갖고 살지 말자는 것인데, 그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물론 정답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불만을 갖고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현실을 변화시키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불만이라고 하는 말 속에는 ‘건설적인 면’이 없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루에 얼마나 많은 불만스러운 말을 하고 사십니까?  그 숫자를 세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만, 불만은 가질수록 늘어나는 법이고, 그렇게 늘어나는 것들에 감당하지 못할 때쯤 되면 사람의 삶은 심각하게 변형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부활을 체험하고, 성령을 받은 사도들이 하는 일들에 대하여, 예수님을 처형했던 유다인들의 지도자들은 발끈합니다.  그들의 생각이나 삶의 태도는 “우리가 당신들에게 그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단단히 지시하지 않았소? 그런데 보시오, 당신들은 온 예루살렘에 당신들의 가르침을 퍼뜨리면서,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소.”라는 말에 잘 나타납니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 없는 것이 정설인데, 그들은 자기 눈만 가리면 해를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이런 모습을 가리켜 눈가리고 아웅이라고 하나요?  우리가 고양이 소리를 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우리가 고양이가 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세상의 뜻과 하느님의 뜻은 부딪힌다는 말을 우리는 가끔씩 듣습니다.  세상의 뜻에 맞춰 행복을 누리며 산다는 것이 하느님의 뜻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씁니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의 뜻과 하느님의 뜻을 지나치게 대립적으로 보는 것도 분명 잘못은 있습니다.  세상의 가치를 우리가 아무리 깎아내린다고 하더라도, 그 세상에서 우리가 올바로 살아야 하느님의 나라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다시 말한다면, 온전히 세상의 기준에 따라 사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짙다는 것으로 알아들으면 충분한 일입니다.


사람의 생각이 반드시 하느님의 뜻과 대립적인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인간적인 재미에 빠져살다보면 하느님의 뜻에서 멀어지게 될 확률이 커진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하신 말씀중에서 ‘아드님을 믿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바탕’이라는 말씀을 합당히 새겨들어야 할 일입니다.  사람의 변화는 믿음과 행동이 한 가지 길로 가야하는 것이라는 사실도 깨달을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충실하게 찾는다는 것은 인간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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