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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자료

주님의 최후만찬 기념일.....2006.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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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6-04-13 ㅣ No.709

 

주님의 만찬 성목요일        

             탈출기 12,1-8.11-14       1코린 11,23-26      요한 13,1-15

     2006. 4. 13. 무악재

주제 : 우리 시대에 최후만찬 재현하기

오늘은 많은 세월 전에 우리와 같은 사람의 형상으로 태어나셔서 사셨던 하느님, 사람들 가운데 사시면서 하느님을 따르는 길을 사람들에게 정확하게 알려주셨던 분이 당신의 세상 사명을 마치는 날, 제자들과 더불어 마지막 저녁식사를 거행한 날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마지막 저녁식사라는 말을 했습니다만, 저녁을 함께 먹었다는 사실이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일이나 다 마찬가지이듯이, 사람들이 하는 일의 처음부터 그 중요성을 알아채는 일은 드문 편입니다.  처음에는 내 생애에 일어나는 일들이 어떻게 될지 몰랐지만, 훗날 시간이 흐르고 보니, ‘아무 날 아무 시’에 했던 일, 별로 독특해 보이지 않았던 바로 그 일이 내 삶에 엄청나게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고 인정하고, 그 일이 새로운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인정하는 일들을 가끔씩 만나기도 합니다.  오늘 기억하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더불어 하셨다는 최후 만찬도 처음에는 소홀하게 넘겼을 일이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로 기억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특별한 자세로 모범을 보이시고, 제자들과 더불어 마지막 식사를 하신지 200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다음에 사는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신 그 만찬을 그대로 볼 수 있는 행복한 시대에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그 일을 반복해서 볼 수 없기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때에 행하신 일의 의미를 기억하며 최후만찬 예절을 다시 거행하는 것입니다. 


조금 전에 읽고 들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최후만찬의 예절은 음식을 제자들과 함께 드셨다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많이 들었던 말을 새롭게 해석하자면, ‘세상 삶에서 우리가 드러내야 할 봉사란 어떻게 하는 것이 제대로 된 모습인지, 그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봉사’라는 낱말로 기억하는 말의 영어표현은 ‘Serve’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의미도 좋고, 우리가 소리를 내어 말하기도 참 편한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라틴말의 ‘Servio,(ivi, itum, ire 종노릇하다, 섬기다)’라는 말에서 나온 말입니다.  라틴말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그 중요한 의미는 ‘종노릇을 한다’는 말입니다.  요즘에는 ‘종’이라는 개념을 강조하지 않는 시대입니다만,  신앙에서 기억하는 이 말은 ‘내게 돌아올 영광을 찾지 않고, 영광을 온전히 다른 대상에게 돌리는 거룩한 행동’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는 올바른 자세를 이 말이 표현하고 있습니다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제자들과 이별하기 전, 마지막 식사자리에서 예수님은 겉옷을 벗고,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물을 준비하여 제자들의 발을 씻어줍니다.  우리가 반드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을 알아야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발을 씻어주는 일은 당시 사회의 신분이 가장 낮았던 종이 손님을 맞아들였을 때 주인의 뜻을 받들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녁 드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하셨다는 것은, 이 전례에 참여하는 우리도 마음과 정신을 새롭게 하여 이러한 모습으로 살 수 있어야 함을 가르쳐주는 소리 없는 본보기입니다. 그런 본보기를 보이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베드로는 ‘스승님께서는 자기 발은 씻어주실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예수님과 같은 본보기를 보일 수 없다는 것인지, 다른 욕심이 있는 것인지, 새롭게 묵상해야할 일입니다.


발을 씻어주는 예절은 요한복음사가가 보여주는 봉사활동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그 말씀을 우리가 반복해서 듣지만, 현실에서 우리가 그 말씀대로 따라 산다는 것은 몹시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그렇게 하는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내 체면과 신분, 내 위치’에서 그 일 만큼은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말이 있고, 그 말이 나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첫 번째 독서 탈출기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빠스카 축제를 거행하기 위한 과정을 지시하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이 축제의 이름은 빠스카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는 이집트 ㅁ민족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나 자유인으로서 살아가게 될 것임을 선언하는 축제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 땅을 탈출하기 위해서 그들의 힘으로 자랑스럽게 행한 업적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빠스카 축제를 실현시켜주는 것은 오로지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때문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 들어야만, 세상 삶의 자세가 달라집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열심히 살려고 하는 것은 좋은 일인데, 내가 선한 행동을 했다는 스스로의 생각과 판단 때문에 하느님은 나에게 축복을 베푸셔야 한다거나, 나는 하느님에게서 축복을 받아야 한다고 우겨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생각이야 간절하지만 해도 좋은 일이 있고, 해서 우리 삶에 도움이 되지 않을 일도 있다는 것을 구별하고 살아야만 합니다.  그것을 헛갈리게 판단할 때 우리 삶에는 심각한 위협이 닥쳐오지만, 웬만한 사람들은 그 위협을 느끼지도 못합니다.


우리갓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가져야 할 자세는 무엇이겠습니까?  하느님 앞에서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겸손한 자세를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것으로 본보기를 보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한번 하셨으니, 우리도 한번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할지는 몰라도, 하느님 앞에서 합당한 자세를 가져야 할 일입니다.


이제 잠시 후, 최후만찬을 하시던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예절을 이 미사중에 다시 거행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이 본보기를 우리가 한번만 거행하고 충분하다고 여길 것은 아니겠지만, 그 본보기에 대한 합당한 자세는 필요할 것입니다.


잠시 세상을 떠나시기 전, 제자들과 함께 했던 최후만찬의 모습을 되새기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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