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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록으로 보는 춘천교구 80년27: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 선교회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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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1-12 ㅣ No.1096

기록으로 보는 춘천교구 80년 (27)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I – 선교회 설립

 

 

강원도 땅에 처음으로 선교를 시작한 이들이 파리 외방 선교회 소속 선교사들이었다면, 춘천교구의 기초를 놓은 것은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의 선교사들이었다. 사실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의 설립 목적은 중국 선교를 위한 것이었다. 이 선교회의 라틴어 명칭인 ‘Societas S. Columbani pro Missionibus apud Sinenses’를 번역하면 ‘성 골롬반 중국인 대상 외방 선교회’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중국 선교를 함께 할 선교사를 모집하기로 마음먹은 에드워드 갈빈(Edward Galvin, 1882년 11월 23일 아일랜드 코크 출생) 신부(후에 주교)는 1916년 아일랜드에 돌아와서 그 일을 함께 할 지도자를 찾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은 할 일이 많을 것이며 중국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야 할 것입니다. 온 나라를 돌아다녀야 할 것이고 주교들을 만나야 하고 돈을 모금하여야 하며, 신학교를 설립할 뿐만 아니라 아마 그 학교를 책임져야 할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 사람은 마치 장군처럼 선교사 군단을 모으는 데 앞장설 것입니다.”

 

1920년 3월 17일 처음으로 중국에 파견된 골롬반회 선교사들 가운데 맨 왼쪽부터 훗날 구인란 주교와 초대 지목구장 임오웬 몬시뇰이 나란히 있다.

 

 

갈빈 신부는 그토록 찾았던 동지를 아일랜드에서 찾게 된다. 그는 성 페트릭 신학대학 조직신학 교수인 존 블로윅(John Blowick, 1888년 아일랜드 메이요 출생) 신부였는데 그도 당시에 중국 선교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정말 평생을 앞서 갈빈 신부가 이야기 한 그대로의 삶을 살게 된다. 블로윅 신부가 선교의 열정으로 쓴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후손들이 우리에게 제1차 세계대전 때에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중국에 하느님의 구원을 알려 주었다고 자랑스럽게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일랜드는 선교사의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는 현재에도 골롬반 성인이 그러하였듯이 고향을 떠나, 다른 문화 속에 살면서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가난한 이들과 함께 연대하고, 정의를 위하여 일하는 선교회로 거듭나고 있다. 중국 선교를 목표했던 이 선교회가 어떻게 하느님의 섭리로 우리나라에 왔고 광주와 춘천교구의 기초를 놓게 되었을까?

 

[2019년 7월 28일 연중 제17주일 춘천주보 2면, 교회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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