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기록으로 보는 춘천교구 80년22: 영북지구의 본당 분할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1-12 ㅣ No.1091

기록으로 보는 춘천교구 80년 (22) 영북지구의 본당 분할

 

 

우리 교구 영북지구의 뿌리인 양양본당은 1921년 4월 영동지역 최초로 설립된 본당이다. 당시 이 지역은 1887년 원산 본당, 1889년 안변 본당, 1891년 내평 본당에 진출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에 의해서 사목이 이루어져 왔다. 그러던 중 1920년 원산교구가 설립되면서 1921년 4월 중국 연길현 팔도구 본당의 최문식 신부가 양양의 상도문리에 천주당을 세운 것이 시초가 되어 양양 본당이 설립되었다. 당시 주보는 ‘예수 성심’이었다. 최문식 신부는 1921년 12월 서문리에 50평 건물을 매입하여 본당을 옮겼다. 1937년 8월 현재의 위치(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군청길 17)에 성당부지를 구입하여 성당을 신축하기 시작하고 이광재(디모테오) 신부가 3대 주임신부로 부임한 후 1940년 2월에 65평의 건물로 성당이 완공되어 헌당식을 하였다.

 

그 후 점차 본당의 기틀이 잡히고 활성화되었지만, 일제 식민 통치하에서 성직자들과 신자들은 수없이 고통을 당하였고 2차 대전 종식 후에도 양양본당은 38선 이북에 위치해 소련군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광재 신부는 성당 아래 위치한 사택에서 생활하며 사목활동을 하였다. 소련군의 철수로 성당을 되찾은 후 38선 이북의 광범위한 지역을 다니며 활동하다가 1950년 10월 9일, 원산 방공호에서 순교하였다. 양양 본당은 한국전쟁으로 성당이 전소되어 미8군의 지원으로 부서진 성당을 재건하고 1954년 11월에 현 성당을 지어 봉헌하였다. 이때 주보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로 변경하였다. 산업화와 속초의 관광사업 번성으로 역사의 중심지였던 양양에서 현재는 속초시가 영북지구의 중심이 되고 있다.

 

영북지구에는 천혜의 자연으로 이루어진 많은 관광지가 있다. 이곳을 찾는 한국천주교회의 모든 신자들이 하느님께서 선물해 주신 자연 안에서 치유와 평안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실제로 동명동 본당은 매해 해맞이를 오는 신자들을 위해 미사와 함께 간단한 음식을 나누고 있다. 동명동 성당은 국가 등록문화재로의 등록을 추진 중이기도 하다. 불행하게도 최근 고성에 큰 산불이 있었다. 피해를 입은 모든 신자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주님의 도우심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양양 본당을 뿌리로 해서 영북지구에는 1951년 속초(현 동명동), 1958년 간성, 1966년 교동, 1976년 거진, 1981년 설악동, 1991년 청호동, 2012년 대진, 최근 2018년 물치 본당이 설립되었다. 영북 지구에도 많은 공소들이 있었으나 대부분 폐쇄되고 현재는 간성 본당의 학야리(1882년)와 교암(1954년), 양양 본당의 현북(1956년) 공소만이 남아 있다.

 

[2019년 6월 23일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춘천주보 2면, 교회사연구소]



696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