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2일 (토)
(녹)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수도회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12) 평화의 인사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4-10 ㅣ No.923

[수도회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12) 평화의 인사


미움과 증오의 장막 뚫고 술탄에게 복음 전해

 

 

- 술탄을 만나는 프란치스코, 아시시 대성당 벽화.

 

 

프란치스코는 자신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할 소명이 있음을 뚜렷이 인식했다. 그는 유언에서 “‘주님께서 당신에게 평화 주시기를 빕니다’ 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인사를 주님이 나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복음을 선포하는 삶을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 직접 받은 소명으로 이해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는 이미 회개생활 초기에 이러한 소명 의식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마태 10,9-10)는 복음 말씀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즉시 그 말씀을 실천한 것을 통해 그의 마음속을 짐작할 수 있다. 그 구절은 직접적으로 파견의 소명과 관련된 것이며,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이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던 것이다. 이것은 내가 진심으로 갈망하던 바이다”라고 외친 것은 이미 그의 마음속에 그런 열망이 싹트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는 일곱 형제가 모였을 때, 제자들을 파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자신을 포함한 형제들을 둘씩 짝지어 파견하였으며, 그 역시 끊임없이 순례 여행을 계속하며 하느님 말씀을 전하였다. 이 여정은 그의 생애 말기에 건강이 악화해 더 여행할 수 없을 때까지 계속됐다. 그 이후에도 그는 편지를 통하여 적극적으로 하느님의 말씀과 자신의 생각을 형제회 안팎에 전하려고 노력했다.

 

 

순탄치 못한 선교 여행

 

그들의 선교 여정은 처음에는 그리 순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람들에게 비난받기도 했고 오해를 사기도 했으며 때론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은 “주님께서 당신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빕니다”라는 인사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프란치스코와 형제들은 누가 봐도 그 시대에 불행한 사람들이었고 무능력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란치스코와 초기 형제들은 대부분 아시시와 그 인근 출신이었다. 물론 그들은 아시시 성 밖에서 살았지만 설교를 위해 혹은 구걸을 위해 성 안을 드나들어야 했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과거에 인연을 맺었던 이들과도 많이 마주쳤을 것이다. 특히 첫 형제인 퀸타발레의 베르나르도는 소문난 부자였고 에지디오는 사제였다.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프란치스코와 같은 삶을 선택했을 때, 보통 사람들에게 그것은 모범적이고 거룩한 일이라기보다는 정신 나간 일이고 미친 짓으로 받아들여진 것이 분명하다. 누가 그들의 인사를 받을 것인가. 누가 누구에게 평화를 주겠다는 말인가. 반대로 그들을 알지 못하던 곳이나 아시시와 적대적인 도시에 가야 하는 경우도 있었을 텐데, 어떤 쪽이든 사람들이 반응이 썩 우호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그들의 인사를 받아들인다. 프란치스코가 “이 세상의 귀족들과 제후들도 이 인사 때문에 그대와 다른 형제들을 공경하게 될 것이오”라고 예언했던 바와 같이 이 인사는 세상에 전하는 복음의 가장 뚜렷한 메시지가 되고 형제들의 모든 선교 활동을 종합하고 요약하는 결정체가 된다. 

 

두터웠던 경계와 불신, 경멸의 장벽을 허문 것은 그들의 뛰어난 언변이나 탁월한 처세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의 삶 그 자체였다. 그들은 입으로 선포한 평화를 삶의 증거로 드러냈다. 평화의 인사는 단순히 일상적인 안부를 묻는 행위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것은 세상을 향해 평화를 선포하는 총체적인 행위로, 그리스도의 평화를 전하고, 평화를 설교하고, 삶으로 평화의 증인이 되는 모든 행위를 의미한다. 그렇기에 평화의 인사는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온 삶을 통해 선포돼야 하는 것이다. 

 

삶을 통한 하느님 말씀의 선포는 프란치스코가 확신한 선교 전략이기도 했다.

 

“… 형제들은 비신자 가운데서 두 가지 방법으로 영적으로 지낼 수 있습니다. 한 가지는 말다툼이나 싸움을 하지 않고 하느님 때문에 모든 인간에게 복종하고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일입니다. 다른 방법은 하느님 마음에 드는 일이라고 생각할 때, 그들에게 전능하시고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믿고 구세주요 구원자이신 하느님을 믿도록, 또한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입니다.”

 

 

술탄과의 만남

 

이러한 그의 선교 전략이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난 것이 그가 1219년 이슬람의 술탄 멜렉-엘-카멜과의 만난 일이다. 당시 그리스도인과 무슬림은 극도로 대립하고 있었으며 서로에 대한 증오와 두려움이 팽배해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무슬림을 죽이는 것은 사악함의 확산을 막는 정당한 행위였고 그들과의 싸움에서 죽는 것은 순교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미움과 증오의 분위기 속에서 프란치스코는 술탄을 만나기 위해 그들 한가운데로 나아간다. 그는 십자군처럼 무기를 지니지 않았으며 오로지 ‘평화’로 무장하였다. 그는 정치적 대립에서 벗어나 참다운 신앙을 나누는 장으로 술탄을 초대하는데, 그러한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의 태도 때문이었다. 그는 마호메트의 가르침을 부정하거나 술탄의 믿음을 폄훼하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과 하느님 말씀을 전할 뿐이었다. 술탄 역시 프란치스코의 말을 기꺼이 경청했고, 자신과 함께 있어 달라고 조르기까지 했다. 프란치스코는 비록 술탄을 개종시키지는 못했으나, 이 일을 통해 이교인들과의 대화와 공존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들 안에서도 순수한 신앙의 모범을 목격할 수 있었고, 이런 교류를 통해 우리 신앙도 풍요로워질 수 있음을 체험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바로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이의 마음속에 그분의 평화가 자리 잡고 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었다. 

 

“형제들이 말로 평화를 전할 때에는 형제들의 마음에 한층 더 그러한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도 여러분들로 해서 분노하지 않고 또 불미스러운 이야기가 생기지 않도록 합시다. 오히려 그들을 여러분의 온화한 모습으로 평화와 자비와 화목으로 이끌도록 하십시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4월 9일, 최문기 신부(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유대철 베드로 수도원장)]



1,679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