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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간추린 사회교리: 사회의 기본 세포,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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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4-23 ㅣ No.926

[간추린 사회교리] 사회의 기본 세포, 가정


오래전부터 한국 사회의 가정이 커다란 위기를 맞고 있고, 최근에는 새로운 문제들의 등장으로 그 심각성이 더해가는 형국이다. 혼인에 대한 인식 변화로 인한 독신, 혼전 동거와 혼전 성관계, 이혼의 증가, 출산율의 하락 등은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사회 가정의 위기

근래에는 맞벌이 가정의 증가로 자녀 양육과 교육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부모들의 목소리도 높다. 청년 세대 사이에서는 높은 집값과 양육비, 사교육비의 급등으로 자신들이 아예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무(無)세대’라고 자조적으로 표현하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노인 인구의 증가로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노인복지 문제도 심각하다. 질병과 생활고와 외로움에 시달리는 현실을 비관한 노인들의 자살률이 급증하고 있는데, 2009년 65세 이상 노인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78.8명으로 1990년 14.3명에 비해 5.5배로 급증했다.

지나친 입시 경쟁에 따른 스트레스와 학교 폭력 등으로 증가하는 청소년들의 탈선과 자살 문제 역시 가정의 위기에 한몫을 하고 있다. 좋은 성적을 얻으려고 학원을 전전하느라 맞벌이로 역시 바쁜 부모와 대화할 시간이 없는 자녀들에게 올바른 가치관과 인성을 심어주는 가정교육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1990년대 후반부터 급증하기 시작한 이혼율을 살펴보면, 인구 1,000명당 이혼 건수를 가리키는 조이혼율(粗離婚率)이 1993년 1.3건에서 1998년 2.5건으로 두 배가량 늘었고, 2003년에는 3.5건으로 최고점을 찍었다. 그뒤 2010년 2.3건으로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높은 이혼율은 큰 사회 문제이다.

이혼의 증가는 이혼에 대한 부정적 사회 인식이 감소하고, 여성들의 경제력이 향상되고, 재산 분할에 관한 동등한 권리 보장 등 사회적 변화의 영향이 크다. 이혼 사유에 관한 통계를 보면 ‘성격 차이’가 가장 많고, 배우자의 부정, 가족 간의 불화, 폭력 등의 순서로 나타난다.

‘성격 차이’는 결국 자기중심의 생활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여 하나가 되어야 하는 부부의 소명에 실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각박해져 가는 현실에서 부부간에 더욱 깊은 상호 이해와 위로를 필요로 하지만 많은 경우 혼인에서 약속한 평생 사랑하고 존경하겠다는 서약은 이상에 그치고 있다.

‘사랑과 전쟁’과 같은 불륜과 부부 갈등을 다룬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을 보이는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이혼은 당사자에게 큰 고통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부모의 다툼과 이혼으로 버림받거나 상처받는 자녀들이 겪는 정서적 혼란과 분노는 탈선과 범죄로 이어져 또 다른 사회 문제를 낳기도 한다.

그런데 전체 이혼 가운데 20년 이상 살아온 부부의 이혼, 이른바 ‘황혼이혼’은 1993년 5.3%에서 2006년 19.2%, 2010년 27.3%로 크게 늘고 있는 추세이다. 황혼이혼은 자녀들을 위해 오랫동안 부부 갈등을 덮고 살다가 자녀의 대학입시나 자녀의 혼인 이후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이혼을 결행하게 되는 현상이다. 특히 가정에 충실하지 않고 부인과 자녀들과의 정서적 유대에 소홀했던 남성들에 대해 여성들이 먼저 이혼을 요구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보고되고 있다.


가정의 위기와 혼인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이런 현실을 개선하고자 우리는 교회의 어떤 가르침을 주목해야 할까? 가정의 위기와 관련된 문제는 다만 우리나라의 문제만이 아니다.

가정, 혼인, 그리고 생명과 관련된 주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78년 교황으로 선출된 뒤 교황청 내에 ‘가정평의회’와 ‘혼인과 가정 연구를 위한 요한 바오로 2세 대학’을 설립하였고, 「가정 공동체」(1981년), 「가정권리헌장」(1983년), 「가정교서」(1994년) 등의 공식 문헌을 발표하는 등 현대 가정이 겪는 문제들에 주목하고 그리스도인 가정의 소명에 관한 가르침을 지속적으로 설파해 왔다.

2004년에 발간한 「간추린 사회교리」에서도 제5장을 ‘사회의 기본 세포인 가정’이라는 제목으로 정하고 가정의 중요성과 혼인의 가치, 이혼, 사실혼, 동성애, 낙태와 배아 복제 등 생명윤리 문제, 성교육, 사회 안에서의 가정 등의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한국 주교회의는 2005년 「가정, 사랑과 생명의 터전」이라는 교서를 발표하여 ‘무너져 가는 가정’의 위기를 진단하고 사목적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가정과 관련된 문제를 모두 다루기는 어려우므로 여기서는 가정의 토대를 이루는 혼인과 부부사랑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교회는 가정을 “생명과 사랑의 요람”, “고유한 근본 권리를 지닌 최초의 자연 사회”, “개인과 사회를 위한 인간화의 첫자리”, “사회의 첫째가는 핵심 세포”라고 표현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하는데(「간추린 사회교리」, 209-211항 참조) 무엇보다 그 가정의 토대가 되는 ‘혼인’의 가치와 부부의 소명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사실 오늘날 가정 위기의 근본 요인 가운데 하나는 ‘혼인’의 소명과 부부사랑의 의미에 대한 이해부족과 인격적인 미숙함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혼인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 그 본연의 성질상 부부의 선익과 자녀의 출산 및 교육을 지향하는 평생 공동 운명체를 이루는 것”(교회법 제1055조 1항)이다. 또한 “창조주께서 제정하시고 당신의 법칙으로 안배하신, 생명과 사랑의 내밀한 부부 공동체는 인격적인 합의로 맺은 결코 철회할 수 없는 계약”과 “부부가 자기 자신을 서로 주고받는 인간 행위”(사목헌장, 48항)로 성립된다.

곧 혼인은 “자신을 다른 한 사람에게만 온전히 내어주겠다는, 쌍방의 취소할 수 없는 공개적인 동의로 표현되는 결정적인 약속을 내포한 부부사랑의 본질”을 전제로 이루어진다(「간추린 사회교리」, 215항). 혼인의 바탕이 되는 부부사랑은 본성상 생명을 받아들이도록 열려있으며, 출산을 통해 하느님을 닮은 존엄한 인간 생명을 이 세상에 전달하고 양육하는 소명이 주어진다.


가정을 지키고 위기를 극복하려면

교회는, 혼인의 제정자는 하느님이시므로 혼인 유대는 신성하며 부부는 평생 공동의 운명으로 살아가기로 약속하는 것이므로 혼인이 인간의 마음에 따라 쉽게 좌우되는 인간의 제도가 아니라고 천명한다. 요즘은 부부가 함께 살다가 서로 마음이 맞지 않으면 이혼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쉽게 하는 세태이다. 그런데도 교회는, 혼인 유대는 죽을 때까지 갈라질 수 없다는 것과 혼인에는 자신을 상대방에게 온전히 내어주는 일치와 헌신, 부부사랑의 열매인 자녀의 출산과 자녀 교육에 대한 책임이 요구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젊은이들이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준이 다만 외모나 경제력, 학력 등과 같은 외적인 조건만이 아니라 혼인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고 배우자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자신을 기꺼이 내어놓을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인지를 잘 따져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많은 부부들이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하면서도 서로 일치하지 못하고 결국 이혼을 선택하는 것은 처음부터 진정한 사랑이 아닌데 사랑이라고 착각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랑이란 타인의 선을 위해 자신을 자유롭게 내어주는 것이다. 평생 공동운명체를 형성하는 혼인에서 요구되는 사랑은 그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조건을 갖추고 자신에게 성적인 매력과 즐거움을 주는 사람과 같이 살고 싶다는 수준 그 이상의 것이다.

사목자들은 오랜 시간 연애를 하고 나서 결혼한 부부가 헤어지면서 서로 “남편이(아내가) 그런 사람인 줄 몰랐어요.”라고 대답하는 것을 보고 도대체 연애하는 동안 무엇을 했는지 답답한 마음을 갖게 된다.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서로를 깊이 알고 이해하고 평생 동반자로 받아들일 준비와 노력이 남의 이목을 의식하는 결혼식 준비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또 미리 ‘동거’를 통해 배우자가 될 상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어떤 조건을 걸고 상대방을 평가하는 ‘동거’가 평생 신의와 헌신을 약속하는 ‘혼인’과 동등한 위치에 있을 수는 없다. 부부에게 요구되는 혼인 서약의 소명은 다만 같은 공간에서 같은 침대를 쓰는 것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온전히 내어줌으로써 완성되는 사랑에 대한 인식과 실천을 요구한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부부의 일치와 사랑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부부의 성이라는 특별한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남자와 여자가 부부에게만 국한된 정당한 행동을 통하여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성(性)은, 결코 순전히 생물학적인 것만은 아니고 인간의 가장 깊은 존재와 관련됩니다. 성은 남자와 여자가 죽을 때까지 서로에게 자신을 완전히 바치는 사랑의 일부일 경우에만 진정으로 인간적입니다”(「가정 공동체」, 11항).

부부들은 자신이 혼인의 의미를 어느 정도 알고 있고 부부사랑의 소명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를 성찰해 보자. 이러한 소명을 실천하고자 하는 부부의 노력에서부터 생명과 사랑의 터전인 가정을 지키고 가정의 위기를 극복하는 힘과 지혜가 모아질 것이다.

* 박정우 후고 - 서울대교구 신부.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종교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다.

[경향잡지, 2012년 4월호, 박정우 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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