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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수도 영성: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 - 하느님의 위로를 세상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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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5-21 ㅣ No.127

[수도 영성]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 - 하느님의 위로를 세상에 전한다

 

 

성덕의 정신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 창설자 요셉 알라마노 복자는 자신과 선교사를 위하여 성인이 되고자 하였다. 물론 우리 모두는 교회의 위대한 성인들처럼 그렇게 큰 성인이 될 수는 없다. 알라마노가 말한 성덕은 평범한 생활 속에서 날마다 쌓아가는 것으로, 선이란 특별한 상황에서만 행하는 것이 아니라 늘 행하는 것이다. 성덕은 단지 무언가를 하는 데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고, 무엇보다 먼저 그 일을 하는 태도에서,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성덕은 하느님의 선물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성인이 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신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착하신 하느님의 선물을 향해 마음을 열고 성덕을 쌓기로 결심하는 것, 그리고 예수님과 같은 태도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성덕의 길은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니,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야 한다. 우리의 생활은 마치 펼쳐진 책과도 같아야 하며, 거기서 사람들은 우리가 선포하는 복음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말하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진정한 선교사가 되려면 성인이 되어야 한다. 참된 선교사는 복음을 말로 선포하지 않고 생활로 선포해야 한다. 선교사는 물이 찬 둑에 연결된 수로와도 같다. 물은 밭에 이르러 벼를 익게 하는데, 하느님은 바로 이 둑이며 물은 성덕인 것이다. 수로가 둑까지 잘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결코 논에 물을 댈 수 없다. 그리고 선교사가 먼저 이 물을 마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그 물을 가져다줄 수 없을 것이다.

 

 

가정의 정신

 

100여 년 전, 알라마노 신부는 이탈리아에서 성덕의 정신으로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를 창설하였다. 그리고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를 통해, 이 선교회의 복음선포를 통해 위로자이신 동정녀를 사람들에게 알렸다.

 

알라마노는 이 선교회를 ‘가정’이라고 즐겨 불렀다. ‘가정’이란 단어는 수도회의 참모습을 잘 표현한다. 선교사들에게 아버지처럼 ‘정신’을 불어넣은 알라마노 신부는 이들이 ‘가정의 정신’으로 살아가기를 바랐다. 가정의 정신이란 서로를 환영하고 존경하고 형제적 사랑을 지니며 깊은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 특히 선교지에 가있을 때 진정한 의미에서, 가정에서처럼 생활하는 것을 뜻한다. 사람들은 “꼰솔라따 선교사들은 매우 단순하며 언제나 모두를 환영하며,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깊은 감명을 받는다.”고 말하곤 한다.

 

선교사들은 자기들끼리만 한 가족으로 느끼는 게 아니라, 그들이 만나는 모든 사람을 한 가족으로 느껴야 한다. 선교사는 다른 나라에서 낯선 백성을 만나 자기 문화와는 아주 다른 문화 속에 잠겨 살아가야 하므로, 처음부터 서로 상대편에 대해 따뜻한 환영의 자세를 지녀야 한다.

 

이러한 가정의 핵심은 사랑이다. 구성원 사이에 사랑이 없다면 진정한 공동체나 진정한 가정을 이룰 수 없다. 서로 간의 사랑은 날마다 작은 일 안에서 분명히 드러나야 하는데, 이는 예컨대 집 안 청소 같은 일을 할 때 서로를 도와줌으로써 생활이 더욱 쉬워지게 하는 것이다. 이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용기와 위로의 말을 할 준비가 된 것을 뜻한다. 사람을 동료로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형제로 사랑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날마다 조금씩 생명을 내어주지 않으면서 영웅적인 행위로 생명을 주리라고 꿈을 꾼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마리아의 정신

 

알라마노 신부는 위로자이신 성모님이야말로 꼰솔라따 수도회의 진정한 창설자이시며, 자신은 수도회를 창설하는 데 쓰인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하였다. “우리는 위로자이신 성모님의 사람들, 그분의 자녀들입니다”(요셉 알라마노).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가 찾아왔을 때부터 성령강림의 날에 이르기까지 늘 하느님의 말씀을 신뢰하셨다. 마리아께서는 인간의 역사 속에서 하느님의 계획을 읽을 줄 아셨다. 그분은 항상 귀를 기울이는 자세로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마음에 새기면서 살아가셨다. 알라마노 신부와 아프리카로 떠난 첫 선교사들 역시 성모님께 신뢰하는 법을 배웠다. 실제로 선교사들은 낯선 나라로 떠났다. 어려움이 많고 선교활동은 고되었지만 신앙의 눈으로 역사의 사건을 읽는 법을 성모님에게 배웠다. 그리하여 이 사건들 안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심을 알아보았다.

 

성모님께서 하느님을 신뢰하는 또 다른 모습을 우리는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본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 이 짧은 말은 우리에게 마리아께서 아드님을 신뢰하실 뿐 아니라,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셨음을 알려준다. 마리아는 신앙의 여인이셨기 때문에 그분의 문제를 아드님에게 중재하실 수 있는 분이다. 선교사 역시 형제들의 생활에 마음을 써야 한다. 이 때문에 직접적인 복음화 사업(성사나 교리강의 등)과 인간의 생활향상을 위한 일(병원, 학교, 공장, 보건소 등)을 한다.

 

 

복음화 정신

 

우리가 이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려고 존재하는 것은 바로 복음화 사업으로 표현된다. 이것은 우리 영성의 근본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복음화는 우리 생활의 모든 측면에 활기를 주고 우리 생활 전체의 중심이다.

 

최근(1993년과 1999년)에 연 총회는 수도회의 이 중심 카리스마를 상기시켰다. 우리는 초창기의 정신으로 되돌아가 우리의 존재방식을 정화해야 한다. 또한 우리의 활동은 ‘모든 사람에게’ 다가가야 하는 선교사명과 맞갖은 것이어야 한다.

 

꼰솔라따 수도회의 회원에게 ‘모든 사람에게’라는 표현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바오로 사도는 선교란 유다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사도 13,46 참조). 우리 역시 동족이 아닌 사람들에게, 유일한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한다.

 

꼰솔라따 선교사들은 비그리스도인과 가난 문제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인다. 무엇보다도 모든 대륙의 대도시 주위에는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가난하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기본권을 되찾는 투쟁조차 할 수 없다.

 

또한 우리는 지역교회를 위해 봉사하려고 한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키우며, 교리교육, 선교사 성소를 찾아내고 키우는 것, 그리고 인간의 생활향상을 위해서 말이다. 또한 좋은 뜻을 가진 사람들과 협조하여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하고자 하며 종교간 대화를 위해서도 활동을 한다.

 

이 모든 활동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위로를 전하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그분의 위로를 보내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오로 사도처럼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1고린 9,16)라고 말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을 통해서, 우리의 모든 행동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절이 되려는 것이다.

 

[경향잡지, 2007년 4월호, 글 · 사진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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