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8일 (화)
(녹)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강론자료

연중 22 주간 화요일.....200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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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6-09-05 ㅣ No.810

 

 

연중 22 주간 화요일 - 짝수 해    

              1코린토 2,10ㄴ-16          루가 4,31-37

      2006. 9. 5. 무악재

주제 : 세상의 기준, 하느님의 기준

세상살이에는 여러 가지 삶의 방법이 있습니다.  이왕이면 많은 돈을 벌고, 이왕이면 편한 일자리를 찾는 것이 기본적인 입장이라고는 합니다만, 모든 사람들이 이런 조건만을 찾아서 움직이지도 못합니다.  저마다 나름대로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각자 처해있는 위치에 따라서 그 삶의 모양도 다릅니다.  시끄러운 곳에서 살고 있다면 자기 목소리가 커져야 다른 사람이 잘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고, 선한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살고 있다면 자신의 생활도 다른 사람을 닮아서 선해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초록(草綠)이 동색’이라는 표현이 좋은 의미로 쓰이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그 말은 사람의 생활을 해석하는 한 가지 진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카파르나움에서 만난 한 부마자는 ‘자기 삶의 터전을 빼앗기 위해서 오신 분’으로 지레짐작하고, 큰소리칩니다.  그렇게 큰소리치면 여러 가지 환경에 의해서 예수님이 물러서실 것이라고 했던 듯 합니다.  허장성세(虛張聲勢,실속은 없으면서 허세만 떠벌림)라는 말이 그것을 설명하는 표현이 될 것입니다.  크게 나는 소리에 그저 상대방이 주저앉을 거라고 생각했던 듯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될 일이 있고, 되지 않을 일도 있습니다.


우리가 큰소리치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사람으로 살기는 생각보다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세상일이라는 것이 말로 되는 것이 있고, 행동으로 해야만 하는 일도 분명 있습니다.  굳이 다른 표현을 들어서 같은 입장을 설명하라면, 우리가 사람의 기준을 갖고 사느냐, 하느님의 기준을 갖고 살아가느냐의 차이입니다.


물론 사람의 기준이라고 해서 무조건 틀리고 잘못됐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나름대로 능력껏 하느님의 뜻을 알아서 실천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이야기를 할 때, 사람은 이러저러한 환경에 의해서 쉽게 삶이 변하는 존재라는 말로 알아듣는다면, 우리가 가져야 할 삶의 자세는 좀 더 다를 수 있습니다. 


세상의 어리석음을 고집하는 인간이라면, 그런 사람들은 하느님의 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자신감으로 말하는 바오로 사도의 표현을 알아듣는다면, 세상의 기준과 지혜에서 내놓으라는 자세로 살았던 코린토교회 공동체가 세상에서 없어진 원인을 찾아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이 항상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비판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하느님의 기준과 뜻을 항상 배우려고 해서, 그렇게 알아들은 뜻을 좀 더 잘 실천하려고 애써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자세는 그리스도의 마음이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잠시 묵상해야할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하느님의 뜻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짝수 해    

              1코린토 2,10ㄴ-16          루가 4,31-37

      2006. 9. 5. 무악재

주제 : 세상의 기준, 하느님의 기준

세상살이에는 여러 가지 삶의 방법이 있습니다.  이왕이면 많은 돈을 벌고, 이왕이면 편한 일자리를 찾는 것이 기본적인 입장이라고는 합니다만, 모든 사람들이 이런 조건만을 찾아서 움직이지도 못합니다.  저마다 나름대로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각자 처해있는 위치에 따라서 그 삶의 모양도 다릅니다.  시끄러운 곳에서 살고 있다면 자기 목소리가 커져야 다른 사람이 잘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고, 선한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살고 있다면 자신의 생활도 다른 사람을 닮아서 선해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초록(草綠)이 동색’이라는 표현이 좋은 의미로 쓰이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그 말은 사람의 생활을 해석하는 한 가지 진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카파르나움에서 만난 한 부마자는 ‘자기 삶의 터전을 빼앗기 위해서 오신 분’으로 지레짐작하고, 큰소리칩니다.  그렇게 큰소리치면 여러 가지 환경에 의해서 예수님이 물러서실 것이라고 했던 듯 합니다.  허장성세(虛張聲勢,실속은 없으면서 허세만 떠벌림)라는 말이 그것을 설명하는 표현이 될 것입니다.  크게 나는 소리에 그저 상대방이 주저앉을 거라고 생각했던 듯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될 일이 있고, 되지 않을 일도 있습니다.


우리가 큰소리치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사람으로 살기는 생각보다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세상일이라는 것이 말로 되는 것이 있고, 행동으로 해야만 하는 일도 분명 있습니다.  굳이 다른 표현을 들어서 같은 입장을 설명하라면, 우리가 사람의 기준을 갖고 사느냐, 하느님의 기준을 갖고 살아가느냐의 차이입니다.


물론 사람의 기준이라고 해서 무조건 틀리고 잘못됐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나름대로 능력껏 하느님의 뜻을 알아서 실천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이야기를 할 때, 사람은 이러저러한 환경에 의해서 쉽게 삶이 변하는 존재라는 말로 알아듣는다면, 우리가 가져야 할 삶의 자세는 좀 더 다를 수 있습니다. 


세상의 어리석음을 고집하는 인간이라면, 그런 사람들은 하느님의 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자신감으로 말하는 바오로 사도의 표현을 알아듣는다면, 세상의 기준과 지혜에서 내놓으라는 자세로 살았던 코린토교회 공동체가 세상에서 없어진 원인을 찾아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이 항상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비판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하느님의 기준과 뜻을 항상 배우려고 해서, 그렇게 알아들은 뜻을 좀 더 잘 실천하려고 애써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자세는 그리스도의 마음이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잠시 묵상해야할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하느님의 뜻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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