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8일 (화)
(녹)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강론자료

연중 20 주일 나해.....2006,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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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6-08-19 ㅣ No.797

  연중 제 20 주일 (나해)

             잠언 9,1-6        에페소서 5,15-20         요한 6,51-58

     2006. 8. 20. 무악재.

주제 : 먹는다는 것

사람에게 먹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요즘은 조금 수그러들었습니다만, 미국과 무슨 조약이 체결되면 먹을 것을 생산하는 농민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거라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그 조약을 이야기하기 이전에는 사람들의 입에서는 ‘영어로는 Well-Being이라고하고, 우리말 바꾸면 참살이’라는 표현으로 먹는 것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단체로 식사하는 노동자들에게나 학생들에게는 식중독 사건으로 가슴 놀라게 한 일들이 가끔씩 혹은 자주 일어납니다.  이 모든 것은 ‘먹는 것’과 관련된 사건들입니다.


먹는 것을 가지고 장난치는 인간들은 모조리 엄벌에 처해야한다는 소리가 가끔씩 나오기는 합니다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쉽게 데워지기에  쉽게 식는 냄비’와 같은 성격때문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전례를 통하여 들은 말씀도 역시 먹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성체성사의 의미가 무척이나 중요한 이야기기에, 오늘 연중 20주일까지 네 주간 동안 우리는 요한복음서 6장의 말씀을 나누어 읽고 듣고 여러 가지 방면에서 묵상했습니다.  들었습니다.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않으면 큰일 납니다.  사람이 움직이지 못할 수도 있고, 움직임에 큰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제대로 먹고 제대로 소화시켜야 하는 이유입니다.


미사에 오면서도 미사를 마치고 돌아가면서도 예수님을 우리 각자의 삶에 모시고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지 그 숫자를 세는 것이 중요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런 사람이 많아질수록 세상이 하느님의 뜻을 따라 변화되는 시간은 늦어질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복음에 등장하는 왜곡된 심성을 가진 유다인들처럼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는 일을 거부할 사람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요즘 사람들은 머리가 좋아서 드러내놓고 반대하는 것보다는 그 일에 대하여 아예 무관심으로 등을 돌립니다.  반응이라도 보인다면 이렇게 저렇게 바꾸려고 시도나 할 터인데, 아예 ‘물에 술 탄듯, 술에 물탄듯’하는 태도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나 사화생활에서낙 가정생활에서나 그 과정은 똑같습니다  환경만 다를 뿐이지 그 내용에 있어서는 다른 점이 조금도 없다는 것입니다.


먹는 음식이 중요한 것은 새삼스레 강조하지 않아도 분명한 일입니다.  먹는 것의 종류도 중요합니다만, 같은 음식을 먹어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 역시도 중요합니다.  세상사에서 같은 이슬을 먹어도 ‘뱀은 독을 만들지만 송아지는 우유를 만드는 차이’를 안다면, 삶에서 받아들이는 자세는 매우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삶에서 행복하느냐 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UN의 어떤 기구에서 조사한 내용입니다만,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지수에서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뒤떨어지는 나라의 사람들이 우리들보다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람이 갖는 재산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더 많이 가지려 하고, 재산에 대한 생각이나 욕심도 커지겠지만, 세상 삶에서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방법의 한 가지는 우리 삶을 이끄는 힘을 우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속담과 격언을 쓴 잠언서의 저자는 우리들 삶이 행복해지는데에 하느님의 지혜를 받아들이고 살 것을 이야기하십니다.  그 지혜의 출발점은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지혜를 받아들이려면 바오로 사도는 삶을 헛갈리게 하는 지나친 흥분의 태도들을 조심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생각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아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동으로 표현하는데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술에 취하며 살지 않고, 하느님을 찬송하는 노래와 시를 우리가 자주 기억하고 산다면 그렇게 사는 것은 하느님 앞에 아주 훌륭한 일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우리의 삶이 하느님의 뜻을 기억하고 하느님의 뜻을 이 세상에 이루는 기초를 만들게 합니다.  때로는 커다란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 마음과 그 자세로 성실하게 움직여야 하는 이유를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가운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늘 훌륭한 일만 하고 사는 것이 쉽지는 않다고해도, 사람의 힘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안다면 뭔가 다른 자세와 결심은 필요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사 잔치를 차려놓고 우리를 초대하는 일에 여러분들은 그 초대를 어떻게 받아들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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