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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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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아! 어쩌나: 걱정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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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27 ㅣ No.500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54) 걱정은 왜?

 

 

Q. 저는 걱정이 많아서 탈입니다. 이것도 걱정, 저것도 걱정…. 제 마음 안에서 걱정을 전부 다 없애고 싶은데 어떤 방법을 써도 안 됩니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A. 걱정 때문에 힘드신가 봅니다. 사실 많은 분이 걱정 때문에 힘들게 사시는데, 정작 걱정이 무엇인지 그 본질을 이해하시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걱정은 인생에서 필요없는 것, 즉 없애야 할 것으로 생각하십니다. 걱정이 마음과 몸을 힘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단견입니다. 걱정은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생존 기제입니다.

 

걱정이 갖는 기능이 무엇일까요? 걱정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원’입니다. 다시 말해 걱정이 있어야 문제해결을 하려는 의지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에게 걱정이 하나도 없으면 어떤 일이 생기겠습니까?

 

가장은 돈 벌 생각을 안 할 것이고, 주부들은 저축할 생각을 안 할 것이며, 아이들은 공부하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떻게 되겠지’ 하고 하루하루 편하게 지내려고 할 것입니다. 사람은 걱정해야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걱정이 사람을 부지런하게 하고, 공부하게 하고, 적금을 들게 하는 등 앞날을 준비하도록 합니다.

 

또 걱정은 영성적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걱정은 ‘존재의 불안’이라고도 합니다. 인생이 허망하고 자기가 아무런 존재가 아니란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 걱정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걱정이 어떤 영성적 의미가 있을까요?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고통받는 삶은 내 존재 의미를 알 기회이고, 삶의 의미를 아는 것이 최악의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걱정을 통해 내적 힘과 영적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걱정은 아무 때도 쓸모없는 것이나 없애버려야 할 것이 아닌, 우리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기능을 하는 필수요소입니다. 그럼 해로운 걱정은 어떤 경우일까요?

 

걱정의 양이 지나치게 많은 때입니다. 걱정의 양이 지나치면 몸이 무너지기 시작할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교통체증으로 오도가도 못하는 차들처럼 머릿속의 이성적 판단기능이 마비됩니다. 다른 감정들도 그렇지만 걱정 역시 아주 없어서도, 아주 많아서도 안 되는 요소입니다.

 

왜 사람들이 지나친 걱정에서 손을 놓지를 못하는 것일까요?

 

첫 번째 이유는 앞날에 대해 강박적인 확인을 하려는 심리 때문입니다. 세상사 모든 일이 그러하듯, 인생사도 앞날을 예측은 해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경제학자 갈브레이스가 “우리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설파했는데, 그처럼 인생의 앞날은 변수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미래에 대해 확실한 것을 알고 싶어하는 마음이 마음에서 걱정이 떠나질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걱정하는 동안은 덜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걱정하는 일들은 대부분 실제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걱정을 하는 사람들은 주술적 사고를 갖고 있어서 “내가 그렇게 걱정해서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온종일 걱정을 하면서 살면 온종일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해낸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는 죄를 짓게 됩니다.

 

그래서 영성심리상담에서는 차라리 하루 30분 정도 시간을 정해놓고 실컷 걱정을 하라고 합니다. 우리말에 걱정은 붙들어 매두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처럼 걱정하는 시간은 실컷 걱정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걱정을 어디엔가 붙들어 매두고 살아야 실속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또 앉아서 걱정만 하지 말고 일단 걱정을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좋다고 권장합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일단 문제해결을 위해 움직임을 가지면 걱정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걱정은 적절하게 사용하면 인생살이에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간혹 경직된 신앙관을 가진 분들 가운데 걱정은 믿음이 약해서 생긴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분들이 있어 걱정에 시달리는 분을 더 힘들게 하고, 믿음에 대한 강박증에 걸리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물론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약해 걱정한다는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사람 마음은 그리 강하지도 굳세지도 않기에 그런 식으로 단정적 판단을 하면 상대방에게 정신적으로 상처를 줄 여지가 많습니다. 걱정이 많은 사람을 보면 그런 말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내가 함께 기도해줄게"하는 위로의 말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평화신문, 2010년 5월 23일, 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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