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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아! 어쩌나: 꿈에 보이는 아버지의 흉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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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27 ㅣ No.495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48) 꿈에 보이는 아버지의 흉한 모습

 

 

Q. 얼마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꿈에 자주 보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모습이 아주 흉하고 무서워서 꿈을 깰 때마다 내가 아버지에게 무엇을 못 해 드려서 원혼이 나타나시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저는 주위에서 부러워할 만큼 사이가 좋았는데 왜 저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요? 제 동생은 아버지와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한 번도 아버지에 대한 꿈을 꾼 적이 없다고 합니다. 제가 아버지에게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요?

 

 

A. 우리나라에서 몇 해를 산 외국인이 우리나라 장례문화가 이상하다고 하더군요. 부모님께서 돌아가셨을 때는 외국인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애통해하고 서러워하는데, 막상 부모님 묘지는 집에서 아주 먼 산골짜기에 있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유럽을 가보면 공동묘지가 시내 한복판에 있기도 하고 가까운 일본만 해도 집 근처에 묘지를 해놓는데 왜 한국인들은 부모님에게 효도한다면서 묘지는 그렇게 먼 곳에 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합니다.

 

이 외국인의 의문은 자매님 흉몽과 연관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모 말에 순종하라고 아이들을 가르쳐왔습니다. 그래서 부모님 말을 잘 듣고 성격이 착한 아이를 두면 자식 농사를 잘 지었다고 기뻐하지만, 자식이 말 안 듣고 말대꾸를 하며 속을 썩이면 불효자식이란 낙인을 찍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효자, 효녀는 부모님에게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것을 가장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다 보니 부모와 자식 간 진솔한 대화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특히 유별나게 가족 간에 관계가 좋을수록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집니다. 이런 현상을 일컬어 ‘융합현상’이라고 합니다. 일명 ‘일심동체현상’이라고도 하지요. 네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고 네가 불행하면 나도 불행하다는 삼류 연애 드라마 대사 같은 현상입니다.

 

이런 관계에 있는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 지극히 위해주고 보살펴주는 사이인 듯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서로 독립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의존관계에 빠진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서로 필요로 하기에 매달려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상태로 오래 살게 되면 서로 길든 관계가 익숙해져 그런 균형 상태를 깨뜨리는 행동을 금기시하게 됩니다. 즉, 각자 개성과 자유를 포기하고 그 대가로 얻은 안정을 깨뜨리려는 행위에 대해 분노하고 질책한다는 것입니다.

 

드라마에서 자식이 아버지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데 가족들이 쉬쉬하면서 말을 못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균형을 깨뜨리지 않으려는 노력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얻은 안정은 내적 불편함을 감수한 것이기에 거짓 안정감입니다. 이런 관계 속에서 살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무의식 안에는 부모님께 표현하지 못한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들이 죄책감과 더불어 어지럽게 올라오는데, 마치 돌아가신 분이 원혼이 돼 나타난 것처럼 꿈으로 형상화되는 것입니다.

 

즉, 착한 딸이었던 자매님은 아버지에게 하고싶은 말을 다하지 못한 것이 꿈에서 나타나는 것이고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동생은 평소에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살았기에 가슴 속에 묻어두지 않아 그런 꿈을 꾸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사는 편이어서 죽은 사람에 대해 무의식적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돌아가신 분을 집에서 먼 곳에 매장해 거리를 두려고 한다고 합니다.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난 뒤에도 내 안에 살아계십니다. 그분들 기억이 내 안에서 부모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능하면 부모님에 대해 좋은 기억만 하려고 하고, 좋지 않은 기억은 억압해버리는 습관이 있습니다. 아무리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님이라 할지라도 그분들에 대해 안 좋게 기억한다는 것은 그분들을 비난하는 꼴이 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즉, 죄책감에 시달리느니 차라리 묻어버리고 사는 편을 선택하는 것인데 문제는 그렇게 해서는 돌아가신 부모님과 나 사이에 얽힌 복잡하고 불편한 줄을 끊을 수가 없습니다.

 

이미 돌아가신 분들이지만 그분들과 진솔한 내적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모님 사진을 보면서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있었던 여러 가지 기억들에 대한 하나하나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는 대화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분노를 털어버리거나 혹은 오랫동안 감춰 두었던 눈물을 마음껏 펑펑 쏟아내야 합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마치고 나면 내 감정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부모님의 자아가 보이고 그 부모님과 진정한 내적 관계, 대화하는 관계를 갖게 되면서 쓸데없이 죄책감에 시달리는 일이 줄어들 것입니다.

 

[평화신문, 2010년 4월 11일, 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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