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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ㅣ심리ㅣ상담

[상담] 아! 어쩌나: 침묵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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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27 ㅣ No.492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44) 침묵은 왜?

 

 

Q. 잘 아는 수녀님이 계십니다. 남편 때문에 속이 상해 여러 차례 하소연을 하고 상담을 했는데, 지난번에는 저보고 수도원 같은 곳에 가서 피정을 해보라고 해 수녀님이 추천해준 곳에서 피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곳 수도자들은 제 얘기를 아무도 들어주려고 하지 않아 오히려 속병에 걸렸습니다.다시 그 수녀님을 찾았더니 이제 남편 얘기는 그만하고 기도만 하라고 하는데 왠지 그 수녀님이 저를 멀리 하려는 듯해 기분이 좋지 않아 요즘은 친구들에게 제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고 있습니다.

 

왜 그 수녀님이 저를 멀리하는지 이해가 안 가고 이제는 그 수녀님 때문에 마음이 불편합니다. 왜 그러는 걸까요? 저는 상담을 공부해 마음 안의 속상한 것을 묻어두지 말고 사람들에게 털어놓으라고 배워 배운 대로 했을 뿐인데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A. 속상한 마음은 이해가 갑니다. 아마도 자매님에게는 그 수녀님이 마음 안의 어머니 자리를 차지한 분이신가 봅니다. 그래서 그 수녀님에게 응석을 부리고 의지하고 싶었는데, 그런 분에게 거부당하는 느낌을 받으셨으니 아마도 마음이 많이 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수녀님이 내린 처방인 ‘침묵피정’은 올바른 것이었습니다. 왜냐면 자매님처럼 속상한 이야기를 자주 여러 사람에게 하고 다니는 것은 자매님 마음뿐만 아니라 대인관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우선 대인관계면에서 보면 자매님이 아무리 남편 때문에 속상하다고 하더라도 늘 같은 사람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한다면 상대방이 그런 자매님을 보고 기분이 좋을 리 없습니다. 지겨울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힘든 이야기를 하면 상대방이 반드시 들어줘야 한다는 것은 자매님 생각일 뿐이고, 다들 바쁘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인데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그것도 좋은 이야기도 아닌 이야기를 하려고 오는 자매님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보자면 자기감정만 소중하고 다른 사람 입장은 생각지 않는 자매님은 좀 철이 덜 들은 분이 아니신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두 번째로, 자매님이 지금처럼 여기저기 자기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흘리고 다니면서 사신다면 내적 성장을 하기가 어렵다는 조언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내적 성장을 하려면 그 수녀님이 권하신 것처럼 침묵기도를 하셔야 합니다. 침묵과 내적 성장이 무슨 관계일까요?

 

중세 연금술사들은 용기 안에 납을 넣고 열을 가해 납에 변화를 줬습니다. 이것을 ‘헤르메스의 그릇(vas hermetis)’이라고 하는데 만약 그릇에 금이 가 열기가 새나가면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심리학자 융은 이런 현상이 사람 마음 안에도 똑같이 일어난다고 봤습니다. 마음에도 그릇이 있는데 여러 가지 갈등을 이 그릇 안에 집어넣고 밀봉해야 즉, 침묵을 지켜야 내적 성장이 이뤄진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속앓이를 충분히 해야 마음이 성숙해진다는 주장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참지 못하고 사방팔방 다니면서 속풀이를 하고 다니면 우선 마음의 그릇이 깨진 용기처럼 돼 내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에게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지 못하고 감정에 휩싸여, 말하는 게 아니라 ‘말을 토해내는’ 행위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대화를 할 때는 생각을 하고 말을 하기 마련인데, 그릇에 금이 가면 생각보다 말이 먼저 나가는 현상이 생깁니다. 우리가 개를 볼 때 어떤 개는 명견이고, 어떤 개는 잡종견이라고 하는데 그 평가 기준 중 하나가 배설물을 어떻게 처리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정해진 장소에 배변을 보는 개는 명견이고, 아무 데나 질질 싸고 흘리고 다니면 잡종견이란 말을 듣는데 이것은 사람도 마찬가지란 것입니다.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지 못하고 사는 것은 인간이 덜 성숙한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노인이 되면 망령이 든다’고 하는데 망령은 노인만 드는 게 아니라 젊거나 배운 것이 많아도, 말의 절제를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심리적 망령에 걸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금이 가고 깨진 마음 그릇을 어떻게 하면 고칠까요? 답은 하나, 침묵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오랜 시간 침묵을 지켜가면 마음 안의 깨지고 금이 간 부분들이 천천히 아물고 붙어갑니다.

 

그리고 그런 수련을 거친 사람들이 하는 말은 듣는 사람들이 감동하는 말이어서 사람들이 그 사람의 입을 금구(Golden Mouth)라고 부릅니다. 만약 이런 수련이 부족하다면 금구는 커녕 ‘주둥아리’라고 비아냥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평화신문, 2010년 3월 14일, 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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