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토)
(홍)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강론자료

2015-0915.....고통의 성모마리아

스크랩 인쇄

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9-15 ㅣ No.1864

고통의 성모마리아 기념일 [0915]

히브리서 5,7-9 요한 19,25-27

2015. 9. 15. () 이태원

주제 : 고통을 대하는 자세

우리는 십자가를 높이 기리는 이유의 한 가지를 어제 전례에서 기억했습니다. 어제의 전례는 예수님께서 달리셨던 십자가의 일부를 페르시아인들에게서 되찾은 날과 관련하여 만들어진 것이었다고 했는데, 오늘 기억하는 성모님의 고통과 관련된 축일은 어제의 십자가기념과 일체로 만들기 위해 제정되고 다른 날짜에서 이동한 기념일이라고 하고, 역사적인 배경은 따로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삶에서 굳이 고통을 기념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좋게 설명한다고 해도 고통이 사람의 삶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고통이 만들어낼 수도 있는 좋은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는 소리를 무시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각자의 삶에 다가오는 고통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서로 다른 환경과 자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모님께서 겪으신 고통을 기념하는 날도 역사적인 일과 직접적인 관련도 없으니, 오늘은 고통과 그 의미에 대해서 다른 입장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고통을 싫어한다고 말하고, 고통에는 긍정적인 의미는 없다고 제가 말했습니다만, 정말로 세상의 모든 상황과 그 예상치를 제가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 고통과 그 녀석이 만들어내는 것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 사람의 바람에 위배된다는 것이고, 같은 사정이라도 달리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통에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 고통의 너머를 볼 줄 안다는 소리이고, 거기에서 생기는 좋은 결과를 예상할 때 쓸 수 있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님께서 고통을 통해서 순종을 배우셨다고 합니다. 정말로 그런지는 모릅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과연 인간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배워야 할만한 상황이었는지는 모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보다 아주 많이 앞서 살았던 그 편지를 쓴 저자는 예수님의 고통에 대해서, 우리가 알법한 내용과도 아주 다른 내용을 씁니다.

 

고통은 사람을 성장하게 하게 합니다. 결과가 좋은지 어떠한 한지는 모른다고 했습니다만, 그렇게 예상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가오는 고통을 물리치는 것보다 이겨내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에도 그렇게 사는 분이 꽤 많으실 것입니다. 그게 신앙인이 드러내야 할 올바른 자세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받아들이기 싫다고 말한다고 해서 고통이, 우리 삶에 물러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다가오는 그 고통들을 올바로 잘 대하면서 내게 상처를 주지 말라고 협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러면 우리는 어떤 방법을 선택해야 하겠습니까?




805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