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토)
(홍)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강론자료

2015-0823.....연중 제21주일 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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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8-23 ㅣ No.1845

연중 제21주일 (나해)

여호수아 24,1-2.15-17.18ㄴ      에페소 5,21-32      요한 6,60-69

2015. 8. 23. 이태원

주제 : 내 삶의 기준이 되는 일

세상에 사는 그 어떤 사람이든지 자신에게 세상에서 힘든 일은 아무 것도 없고, 그저 모든 것이 다 만사형통(萬事亨通, =모든 일이 뜻대로 잘됨)이라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누구나 삶에서 어려움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비록 내가 보기에, 그 사람의 삶에는 힘든 것이 없어 보인다고 하더라도 삶의 고민과 걱정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세상의 삶에 적용되는 것이라면, 이렇게 보는 모습을 신앙인들에게 적용할 때 드러나는 모양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신앙인이라는 표현은 신앙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저 그렇게,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저 사람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데!!’하는 정도의 그런 의미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삶에 적용할 원칙을 신앙에서 가르치는 일에 근거를 두고, 신앙을 기준으로 삼고 그것에서부터 자신의 삶을 해석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것이 신앙인이라는 낱말의 올바른 뜻이지만, 세상에서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울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말씀에서 지난 4주간 동안 읽고 들었던 생명의 빵에 관한 말씀에 대하여 사람들이 반응한 내용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다르게 삶을 볼 수 있는 생명의 빵, 생명을 주는 하늘의 빵 만나, 세상에 사는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성체에 대한 말씀을 하셨지만,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였습니다. 내 귀에 들려오는 소리에 어떤 자세를 가지면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의 삶에 안타까운 소리는 많습니다. 그 종류와 가짓수는 쉽사리 생각하는 것보다는 월등히 많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안타까운 소리는 내 귀에 들려오는 소리를 그대로받아들이지 않고, 들려오는 소리의 의도와 다른 형태와 다른 뜻으로 해석할 때 생깁니다. 말 그대로 이렇게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니, 누가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세상의 삶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자유를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의 일에 대해서는 개인의 자유를 말하느냐 말하지 않느냐보다는 그렇게 드러내는 인간의 자세가 과연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느냐, 일치하지 않느냐의 판단에 있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뜻은 내가 듣거나 말거나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따라야 하고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타협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실 분이 있나요?


그런 사람이라면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들은 것처럼, ‘하느님의 뜻을 담은 일에 나는 찬성할 수 없어!!’하고 개인의 결정을 던져놓고 뒤돌아서면 되는 일입니다. 애석하게도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 설득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는 설득이라는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고, 교육이라는 과정도 있었겠지만, 결정하고 돌아선 사람들을 향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서글픈 일입니다.


나와 내 집안은 주님을 섬기겠다는 여호수아의 선언에 우리가 다른 것을 말할 수 있는 자유는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개인의 자유에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서 자신이 행동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같은 길로 이끌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스켐에 모였던 히브리백성은 여호수아의 선언에 따르는 행동을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만, 실제로 그렇게 살았는지 그 자세한 내용은 우리가 오늘들은 말씀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내 삶의 기준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드러내는 삶의 기준은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그 기준과 드러내는 모습은 내가 포함된 가정 혹은 공동체에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는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삶의 기준은 여러 가지 표현이 가능하지만, 신앙인이라면 그리스도예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자유도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그것은 개인의 자유입니다. 이런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것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책임을 말하기 전에, 우리가 권리를 먼저 생각하면 더 좋을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단점을 보시고 벌하시려고 째려보는 분이 아니라, 당신의 축복을 나누어주시기 위해서 자비가 가득 담긴 눈길을 보내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내게 어떤 삶의 기준이 되는지 잠시 묵상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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