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2일 (토)
(녹)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강론자료

연중 17 주일 나해.....2006.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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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6-07-29 ㅣ No.780

 

연중 제 17 주일 (나해)

             2열왕기 4,42-44     에페소서 4,1-6      요한 6,1-15

     2006. 7. 30. 무악재

주제 : 나는 삶에서 하느님을 먼저 생각하는가? - 행동의 원칙...

무더운 여름을 맞이했습니다.

사람이 자연을 파괴하고 오염시킨 일들 때문에 나타나는 자연의 반항이라고 쉽게 말합니다만, 홧김에 하늘에서 양동이로 퍼붓듯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을 보면서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나.....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런 일들을 ‘사람의 탓’이라고 한다면, 긍정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난 세상이 이렇게 되도록 특별히 잘못한 일은 없는데....’하는 소리를 할 것입니다.  사실대로 말하면,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옳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분명한 사실은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연중 17주일입니다. 

무척이나 길었던 장마기간이 대충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산으로, 바다로 향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렇게 가는 모습이야 사람의 여유따라 움직이는 일입니다만, 다른 사람들도 생각할 줄 아는 아량을 보인다면 좀 더 나을 것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사람들이 삶에서 좋은 결과를 얻고 싶다면, 그 삶에서 어떤 자세로 임해야하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보리떡 수므 개로 백명의 사람들이 먹고도 남았다는 것이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와 관련되는 독서의 이야기이고,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이 오천명이나 포함된 많은 사람들이 먹고도 남은 조각이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는 것이 예수님의 기적을 전하는 요한복음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힘이 엘리사예언자보다 더 쎄구만...!’ 한다면, 그것은 알아들어야 할 이야기의 본질은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언자 엘리사와 함께 머물던 사람들 백명,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여러군데에서 모여왔던 수천명의 사람들이 기적을 체험했다는 것의 차이를 우리가 잘 구별해서 알아들어야 할 일입니다.


같은 일이라도, 그 준비자세가 어떠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아는 일입니다.  그러나 아는 것과 달리 실제로 사람들은 그 아는대로 행동하거나 실천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현실의 우리는 여러 가지 사정과 환경을 앞세워 나를 위한 변명의 자리는 다 만들어놓고, 내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하느님은 반드시 이해하셔야 한다고 말하면서, 실제 삶에서 내 주장과는 달리, 그 하느님은 왜 나를 위해서 특별한 기적이나 자비를 베풀어주시지 않으시느냐고 항의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물난리 때문에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삶의 위기에 빠진 사람들이, 현실생활에서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느냐고 묻는다면 속시원한 대답을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정말로 그들이 잘못한 일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왜 그곳에 왜 그 순간에 그 힘겨운 곳에 머물렀느냐는 대답없는 메아리만 가능할 것입니다.  또 다른 말로는 하늘의 조화를 우리가 어떻게 다 이해하고 어떻게 다 감당하겠느냐고 말하는 것뿐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기적을 행하기에 앞서 먼저 필립보에게 요청했다고 요한복음사가는 적습니다.  그러나 필립보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들어 ‘예수님께서 요청하신 그 일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고 그가 하는 대답에서 표현합니다.  그에 비교해서 안드레아는 다른 어린이가 갖고 있었던 보리빵 빵 몇 개와 물고기를 보면서, 그것이 놀라운 기적의 바탕이 될 거라고 받아들이지도 않았던 모습을 드러냅니다.


세상의 변화에는 사람이 갖는 마음자세가 중요하다고 말씀드린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내가 사용하는 첫 자리에 하느님의 것을 먼저 준비하고 사시느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이 어떠할지 저도 모릅니다.  다만 사람이 갖는 자세, 드러내는 삶의 태도에 따라 우리에게 다가오는 하느님의 축복은 우리가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목구멍에 풀칠을 하고 살아가는 일도 빼놓을 수 없는 무지무지하게 중요한 일이지만, 같은 일을 하면서도 그 삶의 첫 자리에 하느님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가 따라가고 그것을 먼저 드러내려고 한다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하느님의 축복은 분명 다를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은 이렇게 자신 있게 합니다만, 그 증거를 여러분의 손에 쥐어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삶의 현실에서 그것을 체험하는 일은 여러분들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첫 자리에서 우리가 하느님을 어떻게 존경하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애쓰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결과는 달라질 것입니다.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그 기회를 찾으시며, 그 첫 번째 마음의 자리를 내어주실 것을 부탁하는 하느님을 서글프게 하지 않도록,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어떤 자세를 드러내는 사람들인지 잠시나마 한번 더 묵상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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